문재인 대통령과 부산지역 상임선대위원장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왼쪽). ⓒphoto 김종호 조선일보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부산지역 상임선대위원장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왼쪽). ⓒphoto 김종호 조선일보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해양수산부가 새 정부 조직개편의 핵(核)으로 부상했다. 해수부는 지난 5월 9일 대선을 앞두고부터 심하게 요동쳤다.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지난 5월 2일에는 SBS가 익명의 해수부 공무원 말을 인용해 “문재인 후보가 약속했던 제2차관 신설을 위해 세월호를 문재인 후보한테 갖다바친 것”이란 단독보도를 내보내며 대선정국의 막판 쟁점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SBS는 보도 다음 날인 5월 3일, 김성준 보도본부장(메인 앵커)이 5분30초 길이의 사과방송을 내보내는 식으로 이례적으로 대응했다. 해수부 역시 5월 4일, 송상근 대변인이 아닌 김영석 장관이 직접 나서 “세월호 인양에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있을 수 없다”고 해명하고 나서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해양수산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문재인 정부 출범에 해수부 안팎에서 적지 않은 기대를 걸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수부 장관을 지냈고, 민주당내 경선 때부터 문재인 캠프의 부산지역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오거돈씨가 노무현 정부 해수부 장관을 역임해서다. 오거돈 전 장관은 지난 4월 17일, 문재인 캠프의 부산지역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으로 있는 김영춘 민주당 의원(부산진갑) 주최로 연 ‘차기정부의 해양수산기후부 신설과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 정책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양수산부의 기능을 획기적으로 보강하겠다고 몇 번에 걸쳐서 약속한 바 있다. 수산 관련 차관을 신설하는 문제도 거의 확정 단계에 있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고, 우리가 염려하는 해양경찰도 다시 해양수산부로 가져오는 문제, 또 해양산업과 조선산업 육성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해수부에서 갖도록 하는 문제도 지금 긍정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수부 장관과 한국해양대 총장을 지내 해양수산계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오거돈 전 장관의 발언에 해수부에서는 반색했다. 수산 담당 제2차관 신설과 해양경찰청 부활, 조선산업 해수부 관할은 해수부로서는 줄곧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었다. 2014년 세월호 사고로 산하 외청(外廳)으로 있던 해양경찰청이 폐지돼 해양경비안전본부로 격하돼 국민안전처 아래로 떨어져 나갔다. 세월호 이후 부처 전체가 ‘해피아(해수부+마피아)’로 지목돼 각종 산하기관의 낙하산 입성도 차단된 상태다. 이 마당에 수산담당 2차관 신설을 통한 조직 확대는 인사적체를 해소할 절호의 기회였다. 특히 해수부 내에서도 적자(嫡子)인 ‘해운항만’에 밀려 서자(庶子) 취급을 받는 ‘수산’ 부서의 기대가 높았다. ‘해운항만’ 부서 역시 원래 관할인 해운항만에 덧붙여 산업통상자원부 관할의 조선까지 해수부 아래로 가져올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심지어 부산에서는 ‘해경 부활과 동시에 해경 본청 부산 이전’이란 희망 섞인 기대까지 흘러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 지역구(사상갑) 의원을 지냈다. 오거돈 부산선대위원장은 토박이 부산 공무원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안상영 부산시장이 자살하자 시장권한대행까지 지냈다. 부산 지역 시민단체들과 지역언론들은 1953년 내무부 산하 해양경비대로 창설된 해양경찰청이 부산에서 출범했다는 역사적 근거까지 앞세웠다. 부산의 이 같은 움직임에 당초 해경 본청이 있었던 인천에서마저 견제구가 나올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에서 득표율 37.5%로 홍준표(33.7%)·안철수(16.8%) 후보를 꺾을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기대가 적지 않게 반영된 셈이다.

태생적 한계 외풍에 흔들

하지만 정작 해수부로서는 대선 직전 새삼스레 여론의 집중 관심을 받은 탓에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기정사실화됐던 조직 확대가 당초 기대에 못 미칠 공산이 커졌다. 이는 해수부 자체가 정치적 고려에 따라 출범해 정치적 외풍(外風)에 심하게 흔들리는 태생적 한계 탓도 있다. 해수부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 해운항만청과 수산청을 합쳐 출범했다. 출범 초부터 부산 지역 민심을 고려해 초대 해수부 장관 자리는 YS의 측근이자 부산 지역 거물 정치인인 신상우 전 의원(7선)에게 주어졌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에도 해수부 장관 자리는 DJP(김대중+김종필) 공동정권의 한 축인 자민련 측에 떼어주는 몫이었다. 김대중 정부 초대 해수부 장관인 김선길 전 장관을 비롯해 정상천·이항규·정우택 전 장관(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후 해수부는 장관을 지낸 노무현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나름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전까지는 대표적인 단명(短命) 장관 부서였지만 노무현 정부 때는 장승우·오거돈·김성진 등 임기 1년 이상의 장관도 여럿 배출을 했다.

해수부는 이명박 정부 때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로 분리재편됐다가 박근혜 정부 때 부활해서도 정치적 외풍 탓에 덜컹거렸다. 박근혜 정부 초대 윤진숙 해수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때부터 함량미달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신정권에 부담을 줬다. 2014년 세월호 사고로 박근혜 정부를 만성 레임덕에 빠뜨린 것도 해수부였다. 해수부 산하 외청인 해경은 사고 수습 과정에서 여러 문제를 노출했다. 선박 관리감독 부처인 해수부 역시 ‘해피아’로 지목돼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됐다. 현직 의원으로 세월호 사고 한 달 전 해수부 장관에 취임한 이주영 전 장관(현 의원)이 사고 수습 과정에서 머리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 언론의 과도한 주목을 끌며 해난사고를 지나치게 정치화시켰다.

정치인들이 해수부를 좌우하는 사이 중심을 잡아야 할 해수부 관료들도 타 부처 관료들에 비해 역량 부족을 드러냈다. 한진해운 구조조정 때 금융위원회의 파산 결정에 아무 소리도 못 내고 국내 최대 해운선사가 수십 년간 구축해둔 국제해운 네트워크를 와해시킨 일이 대표적이다. 바다모래 채취 허가를 둘러싸고는 건설업계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국토교통부와 파워게임에서 완패한 일도 있었다. 이 같은 결정에 항의해 전국 항포구에서 어선 4만3000여척이 일제히 해상시위에 나서 국토부와 해수부를 싸잡아 성토하기도 했다.

정부 조직개편 때마다 떼었다 붙였다가 반복되면서 해수부 관료들은 타 부처에 비해 뿌리가 가늘고 응집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명박 정부 때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 아래로 각각 찢어져 있던 해운항만과 수산을 한데 결합해 놓은 지금은 해운과 수산 사이의 내부 알력다툼마저 있다.

해양수산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해운과 수산은 바다란 공통점 외에는 상호 간에 알력충돌을 벌일 소지가 다분하다”며 “항만 개발을 우선해야 하는 해운이나 수산자원 보호를 해야 하는 수산은 서로 상충되는 정책을 세울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가령 상선(商船)과 어선(漁船)이 충돌하는 해난사고가 발생해도 미묘한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는 것이 해양수산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장·차관을 줄곧 해운항만 쪽이 도맡아온 반면, 수산 쪽은 수산정책실장(1급)이 최고위직이라 푸대접을 받는다는 불만이 나왔다. 실제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해수부 장·차관인 김영석 장관과 윤학배 차관 모두 옛 해운항만청 출신이다. 수산담당 제2차관 신설은 이런 배경 탓에 나온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와 함께 부활한 해수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다시 조직개편의 기로(岐路)에 섰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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