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16일 경기도 이천 도하훈련장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 소부대 도하훈련에서 한국 7공병여단과 미국 2전투항공여단 공병대대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photo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3월 16일 경기도 이천 도하훈련장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 소부대 도하훈련에서 한국 7공병여단과 미국 2전투항공여단 공병대대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photo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아무 문제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한·미 관계가 북한의 핵도발로 야기된 한반도 위기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며 공고한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사드 배치라는 대단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지엽적인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제정치적인 관점이 한·미 동맹을 더욱 강조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 자산처럼 유지,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느냐는 문제 때문이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동맹을 얼마나 애틋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느냐도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취임 당일인 5월 10일 밤 트럼프 대통령이 걸어온 축하 전화를 받고 문 대통령은 “한반도와 주변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 핵 문제는 어렵지만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과의 동맹관계는 단순히 좋은 관계가 아니라 위대한 동맹 관계(not just good ally but great ally)”라며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치켜세웠다.

이처럼 양국 모두가 한·미 동맹의 중요성에 대해 의문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일부에서는 사드 문제는 한·미 동맹을 파탄 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극히 일부분일 것으로 사료되는 종북적인 인사들조차 한·미 동맹이 대한민국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종북 인사들도 한·미 동맹이 존재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지 않는 한 북한이 원하는 적화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즉 그들도 한·미 동맹은 대한민국의 생존을 보장하는 안전장치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한·미 동맹은 왜 생존의 관건인가

한·미 동맹이 한국의 생존에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흔히 ‘대미 사대주의자’라고 비하당하고 민족주의적이지 못하다고 비난받고 있지만 국제정치 현실상 한국은 혼자 힘으로 생존과 독립과 주권을 유지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있는 나라라고 보기 힘들다.

한국은 전신인 조선이 멸망할 무렵이던 20세기 초반과 주변 상황이 별로 달라지지 않은 동북아 국제 체제 속에서 살고 있는 ‘상대적인 약소국’이다. 100여년 전의 조선은 지금처럼 ‘적대적’으로 분단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 상태가 오히려 더욱 나쁠 수도 있다. 다만 100여년 전과 지금을 판이하게 만든 중요한 요소가 있다. 현재 한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과의 동맹국이라는 사실이다. 1953년 10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조인되고 1954년 11월 18일부터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한 한·미 동맹은 60년 넘게 지속되며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공적인 동맹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거의 대부분은 한·미 동맹 속에서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기에 한·미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심각하게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나라의 운명을 초조해 했던 고종은 미국의 특사가 조선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할 정도로 기뻐했다. 주변 열강이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 미국은 조선의 독립을 보장해줄 것 같은 나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이라는 안전장치가 있기에 한국은 세계 최악의 지정학적 우범지대(虞犯地帶)인 동북아시아에서 안정을 유지하고, 심지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하며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공기와 물은 평소에 그 중요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기와 물의 중요성은 “그것들이 없어진다면?”이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통해서 쉽게 설명될 수 있다. 한·미 동맹도 그것과 비슷하다. “한·미 동맹이 종료된다면 어떻게 될까?” 가능성이 그다지 큰 것은 아니지만, 현 시점은 ‘한·미 동맹이 종식될지도 모를 가능성’이 한·미 동맹의 과거 역사에서 비추어 볼 경우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는 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한·미 동맹을 사활적으로 중요한 것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어보면 곧 알 수 있는 문제다.

그렇다면 한·미 동맹이 오늘 종료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필자는 수년 전 대학 학기가 끝나갈 무렵 ‘미국의 외교정책’이라는 필자의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에게 약간 맥락이 다르지만 유사한 질문을 했었다. 필자의 질문은 “만약 오늘 지구상에서 미국이란 나라의 존재가 없어진다면 동북아시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였다. 학생들의 대답이 너무나도 정확해서 놀랐다. “대만은 그날로 중국에 항복하거나 점령당하겠지요.” “중국이 한국을 윽박지를 거예요.” “북한이 위협하거나 전쟁을 일으킬지도 몰라요.” “일본이 독도를 점령해 버릴지도 모르죠.”

학생들의 대답은 모두 한·미 동맹이 없어질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중국은 본시 한국을 자신과 대등한 차원의 주권국으로 인정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중국은 미국과의 동맹체제 아래서 중국에 복속당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한국이 눈엣가시일 것이다. 한·미 동맹의 해체는 중국이 언제라도 한국을 마치 명나라가 조선 다루듯 ‘아랫것’으로 다룰 수 있는 상황의 재(再)도래를 의미한다.

북한 역시 드디어 자신이 주도할 수 있는 통일의 날이 다가왔다고 생각하고 한국을 윽박지를 것이다.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중국에 불리한 점들을 계산하는 중국의 반대가 있을지 모르지만 북한은 ‘핵전략’을 통해 한·미 동맹마저 종료시킨 상황이다. 북한은 핵미사일을 중국의 대도시들을 향해 겨냥하고 한반도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고 큰소리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현재 수준의 상황에서 한·미 동맹이 종료된다면, 북한은 직접 무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대한민국을 핵으로 위협해 ‘평화적으로’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일본 역시 기회가 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난 10년만 본다 해도 한국과 일본은 사실상의 ‘적국’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일본을 우방국으로 대했는지 사실 의문이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한·일 양국이 파탄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 한·미, 미·일 동맹으로 연계된 3각 관계 때문이었다. 한·미 동맹의 고리가 끊어지는 날 한·일 관계는 거의 즉각적으로 적대(敵對)관계가 될 것이다.

마지막이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남는다. 즉 한·미 동맹의 종식은 한·미 관계가 아무것도 아닌 관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적대관계’로 진행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이다. 현재 동북아시아는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한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 준(準)전시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각 국가들은 적과 친구를 아주 단순하게 분류한다. 같은 편이 아니면 적이 되는 논리다. 미국은 한·미 동맹이 종료되는 순간 한국을 잠재적 적성국으로 분류할 것이다. 그게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즉 한·미 동맹이 종식되는 상황은 미국과 일본이 한국의 적성국이 되는 걸 뜻한다. 중국은 이를 대단히 환영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을 대등한 주권국가로 대우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오매불망 그리던, 노동당 규약에 나와 있듯이 ‘주체사상을 온 사회에 전파’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미 동맹이 소멸된 후 대한민국이 당면하게 될 위협은 ‘실존의 위협(Existential Threat)’들이다.

국가 안보의 위협은 즉각적으로 ‘국가 경제의 파탄’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한·미 동맹과 이에 따라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존재는 외국의 투자자들로 하여금 한국을 투자 적격 국가로 인식하게 만든 핵심적 요인이었다. 한국의 국가 안보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에 투자되었던 외국 자본들이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경제학자들은 한·미 동맹이 종료될 경우 외국의 자본은 물론 한국의 대기업들도 불안하다며 본사를 외국으로 옮기는 ‘자본이탈(Capital Flight)’ 상황이 근심스럽다고 말한다.

위에서 말한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 국가 경제에 대한 위협이 발생할 가능성이 단 1%라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정책의 실패요, 파탄이다. 한·미 동맹은 60년 이상 이 같은 일들의 발생을 막아왔다. 그래서 한·미 동맹의 존재를 우리나라 생존의 관건이라 말하는 것이다.

(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밤 서울 홍은동 자택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우) 통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photo 연합
(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밤 서울 홍은동 자택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우) 통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photo 연합

미국은 한·미 동맹을 여전히 소중히 여기나

소련과 심각한 냉전을 벌이는 동안, 미국 국민의 ‘다수’는 한국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군사력 측면에서 미국과 맞먹는 막강한 소련과 혈전을 벌이고 있었던 미국은 한반도의 작은 나라 하나라도 소련 진영으로 편입되는 것을 방치하면 안 될 절박한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그런 냉전 시대에도 적지 않은 수의 미국인들은 한국이 없더라도 미국에 사활적으로 중요한 일본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 사람들은 일본이 공산권의 수중에 들어가면 아시아에서 미국이 설 자리는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사람들은 아시아에서는 일본, 유럽에서는 독일을 미국에 ‘사활적인 이익(vital interest)’이 걸린 국가라고 생각했다. 냉전 시대 동안 ‘주일미군’ ‘주독미군’ 철수 운운 이야기는 결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미국은 자신의 지위에 도전할 만한 나라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막강하다지만 과거 소련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미국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는 중국을 다루기 위해서 더 좋은 것은 경제적인 수단들이다. 2016년 여름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 교수는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 7~8월호 기고문에서 ‘주독미군을 철수시킬 것’을 제안했을 정도다. 그는 앞으로 아시아 주둔 미군도 철수하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의 국제정세는 미국이 굳이 다른 나라 영토에 군대를 직접 파견해서 세력균형을 유지하지 않더라도 균형유지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다.

독일·일본조차도 더 이상 사활적 이익이 아니라고 보는 국제정치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평가가 냉전 시대와 같을 수 없다. 미국에는 여유가 생긴 현 국제체제는 우리나라에는 더욱 불안하고 불확실한 국제체제라는 점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핵무장을 포함한 완전한 자주국방의 길을 택하거나 보다 적극적으로 한·미 동맹을 강화하도록 노력해야 할 시점임을 말해준다. 오랫동안 세계 제1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할 것이 확실해진 미국은 냉전 시대처럼 세계 문제에 적극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소 200년을 쓸 수 있는 석유를 확보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조차 지켜줄 필요가 있을지 회의할 수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날 미국의 신조(credo)는 세계주의(Globalism)가 아니라 미국 제일주의(Americanism)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국제기후협약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미국 제일주의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이 결정을 미국이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관심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사건은 ‘세계의 이익과 미국이 이익이 불일치하는 경우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적나라한 현실을 말해준 일이라 보아야 한다.

모든 나라들에 있어 국가 안보란 가장 중요한 국가이익이다. 죽고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이 우리나라 국가 안보의 핵심축인 이상 우리는 한·미 동맹을 잘 유지하고 발전시키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가 부담해야 할 부분을 늘리는 것은 우리의 독립성을 제고할 뿐 아니라 한·미 동맹의 유지에도 긍정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자주국방과 한·미 동맹이 상치되는 개념은 아닌 것이다. 북한의 도발로 인해 한국의 국가 안보가 어려워진 오늘, 한·미 동맹을 통한 국가 안보의 확보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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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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