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4일 미국에서 귀국해 인천공항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홍준표 전 경남지사. ⓒphoto 뉴시스
지난 6월 4일 미국에서 귀국해 인천공항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홍준표 전 경남지사.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이 지난 6월 9일로 대선에 패배한 지 한 달을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 이후 9년간 집권해온 한국당은 대선 패배로 야당이 됐다. 의석 수 107석의 제1야당으로 자리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새 리더십을 세우지 못한 채 침체에 빠져 있다. 이런 가운데 대선 패배 후 미국에 체류하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지난 6월 4일 귀국하면서 한국당의 당권(黨權) 경쟁이 본격화됐다. 오는 7월 3일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 홍준표 전 지사가 출마할 것이 유력해지면서 한국당의 차기 당권 싸움은 ‘홍준표냐 아니냐’의 구도로 진행될 공산이 커졌다.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뒤 이정현 당시 대표(현 무소속 의원)가 물러나면서 여섯 달째 비상대책위 체제가 계속되고 있다. 당시 이 대표에 이어 비대위원장에 취임한 인명진 목사가 지난 3월 사퇴하면서 현재는 정우택 원내대표가 당대표 권한을 대행하고 있다. 그 사이 한국당은 대선에서 홍준표 전 지사를 후보로 내세웠으나 패배했다. 한국당이 7·3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선출하면 반년 만에 정상 체제로 돌아가게 되는 셈이다.

홍준표 조기 정치 재개 왜?

애당초 홍 전 지사가 대선 이후 곧바로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홍 전 지사가 탄핵 사태로 한국당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추락한 상황에서 보수 지지층을 결집해 24%를 득표한 것은 그의 개인 능력이란 평가가 많다. 하지만 과거 ‘제왕적 총재’로 불린 이회창씨도 1997년 김대중 후보에 패한 이후 당 총재로 복귀하는 데 9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홍 전 지사는 지난 5월 12일 미국으로 출국한 지 23일 만에 귀국했다. 당권 도전을 위해 조기에 귀국한 것이란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실제 홍 전 지사는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거의 매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귀국하면 신(新)보수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당을 새롭게 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당내 일부 친박 인사들을 겨냥해 ‘바퀴벌레’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대선에서 ‘보수 적자(嫡子)’ 경쟁을 벌였던 바른정당 일부 인사들을 겨냥해서는 ‘패션 좌파’ ‘금수저’ ‘강남 좌파’라며 비난도 퍼부었다.

홍 전 지사의 이런 움직임은 당권 도전을 위한 포석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홍 전 지사는 지난 6월 4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길에도 당권 도전 의지를 거듭 내비쳤다. 그는 당시 마중 나온 수백 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자유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는 데 함께 가겠다”고 했다. 그는 귀국한 뒤 측근들을 만난 자리에서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내리기 어려운 운명이 될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당권 도전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홍 전 지사는 조만간 지역을 돌며 지난 대선 때 자신을 도왔던 지지그룹을 만날 예정이다. 전당대회를 겨냥한 세(勢) 규합 차원으로 보인다. 홍 전 지사는 또 한국당 의원들도 지역·선수별로 연쇄적으로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홍 전 지사의 측근은 “당내 초·재선 그룹 의원과 대선 직전 홍 전 지사가 복당 조치한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당원들이 홍 전 지사의 지지그룹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 초·재선 의원은 전체 107명 가운데 74명이다. 이들 중 상당수와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 13명을 규합해 원내(院內) 지지세력으로 삼고, 여기에 원외(院外) 당협위원장 일부와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당원들을 규합해 전당대회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당 관계자는 “홍 전 지사가 난파 상태에 처한 보수 세력을 결집해 24%를 득표한 게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당내에선 홍 전 지사가 정치 복귀를 서두르는 배경으로 그의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을 꼽고 있다. 그는 2011년 4개월 정도 한나라당 대표를 지냈지만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중앙 정치에서 멀어졌다. 그로부터 8개월 만인 그해 12월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재기했지만 중앙 정치와는 거리가 있었다. 한국당 관계자는 “홍 전 지사는 당내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정치 일선에서 한동안 벗어나 있을 경우 복귀가 어려울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했다.

현재 한국당에 홍 전 지사를 대체할 리더십이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그로선 당권 도전의 호기(好機)라 판단했을 수 있다. 한국당의 주류(主流)였던 친박계는 탄핵 사태 이후 당내에서 ‘2선 후퇴’ 압박을 받고 있다. 계파 결속력도 예전보다 약해진 게 사실이다. 홍 전 지사 측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본격적인 ‘적폐 청산’ 드라이브에 나설 경우 친박계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더 어려워질 것이란 점에서 홍 전 지사가 ‘강한 야당’ 재건과 당 주류 교체를 내걸고 당권에 도전할 명분이 커졌다”고 했다.

5選 원유철 도전 검토 중

한국당 내에선 홍 전 지사의 당권 도전을 반기지 않는 흐름도 상당하다. 우선 친박계 일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노골적인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홍문종, 유기준 등 친박계 중진 의원들과 대구·경북 지역의 일부 친박 의원들이 대표적이다. 또 수도권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도 “홍 전 지사로는 내년 지방선거 때 수도권 지역의 승리를 자신할 수 없다”며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흐름도 상당하다. 5선(選)의 원유철 의원이 이런 차원에서 당대표 도전을 검토 중이다. 특히 원 의원은 홍 전 지사가 귀국한 지난 6월 4일 페이스북에 “젊고 강한 야당으로 문재인 정부를 강력히 견제함은 물론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새로운 범국민 정치운동을 통해 국민에게 강한 한국당을 만들어내야 한다”며 “이제 새로운 기치와 깃발이 한국당에 필요한 시점”이라는 글을 올렸다. 60대인 홍 전 지사에 맞서 세대 교체를 들고 나온 것이다.

당권 도전을 저울질하던 친박 중진 의원들은 이번엔 안 나서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친박 핵심 의원은 “대선 패배 책임론이 아무래도 부담스럽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실제 일부 초·재선 의원들은 친박 중진들이 전당대회에 나설 경우 정풍(整風) 운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벼르고 있다. 이들은 대선 이후 몇 차례 모임을 갖고 “당 중진들은 애당심을 발휘해달라”며 사실상 친박 중진들의 불출마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 당권을 잡더라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패할 경우 곧바로 퇴진 요구에 내몰릴 수 있다는 점도 이들에겐 부담일 것이란 얘기도 있다.

오히려 친박계 중진 의원들은 당대표보다 원내대표 자리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우택 현(現) 원내대표의 임기는 12월까지다. 하지만 당내에선 대선 이후 “대선에 졌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며 정 원내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 중진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조각(組閣) 인사청문회 정국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정 원내대표 퇴진론이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고 했다. 부적격 인사란 평가를 받는 고위직 후보자들을 한 명도 낙마시키지 못할 경우 원내(院內) 전략 부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당원들이 홍 전 지사가 대선에서 득표한 24%를 당 재건의 가능성으로 보느냐 한계로 보느냐에 따라 7·3 전당대회의 승부가 갈릴 것”이라고 했다.

최경운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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