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티에잉 전 사회과학원장(왼쪽) 부부와 그의 모친 김유영의 동상.
리티에잉 전 사회과학원장(왼쪽) 부부와 그의 모친 김유영의 동상.

우리는 15년 전인 2002년 중국이 뜬금없이 들고나온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괴물 때문에 민족의 자존심을 손상당하고 가슴 아파했다. 동북공정이란 ‘동북변강(邊疆) 역사와 현상계열 연구공정’을 줄인 말로 ‘열강에 의해 침탈당한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3개 성의 고대사와 이웃 나라들과의 국경선 획정 문제 등에 관한 총정리 사업’을 뜻하는 학술 프로젝트였다.

중국 정부는 동북공정을 진행하면서 이전까지 ‘조선반도 역사의 일부’로 인정해오던 고구려사를 “중국 동북의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서 각종 학술서적과 중·고 교과서, 비학술 서적에 기재하도록 강력한 행정력을 동원했다. 그러면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역사 왜곡작업을 강행했다. 동북공정의 결과 중국은 “고구려와 조선반도에 있던 고려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만들어냈고, “고구려와 현재의 조선(북한) 정권 사이에도 아무런 필연적 관계가 없으며, 고구려와 현재의 한반도 남부 한국 정권 사이에도 아무런 필연적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북공정의 결과 지린성 지안(集安)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에는 유리 덮개가 씌워지고 중국식 기와지붕이 얹혔다. 비문의 유래를 설명하는 안내판에는 ‘고구려는 고대 중국의 지방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으로…’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시절에만 해도 중국과 북한이 공동으로 고구려 유적을 조사하면 유물들은 모두 북한에 넘겨줬다. 그런 이웃나라 사이의 역사연구 사업은 사라졌다. 마오쩌둥(毛澤東) 시대 최고로 추앙받던 문인 궈모뤄(郭沫若)가 자신의 저작 곳곳에 ‘고구려는 조선반도에 있던 고대 정권’이라고 쓴 표현들도 모두 부정됐다.

동북공정이 진행되던 기간 중국 지식인들은 묘한 귀띔을 해주었다. “동북공정을 시작한 사회과학원 원장 리티에잉(李鐵映)이란 인물은 중국공산당 혁명 원로 리웨이한(李維漢)과 조선족 여성 김유영(金維映) 사이에 태어난 사람으로, 김유영은 원래 지하공작을 하던 덩샤오핑(鄧小平)의 내연의 처였으나, 중국공산당 최초의 해방구 루이진(瑞金)에서 공작을 하던 리웨이한과 덩샤오핑 사이의 연락업무를 담당하다가 리웨이한의 처가 된 사람이었다.” “조선족 여인의 혈육이었던 리티에잉은 실제로는 덩샤오핑의 아들로, 덩샤오핑 시대에 승승장구 출세를 하다가 사회과학원장의 자리에까지 올라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중국 동북지방의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동북공정을 시작하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동북공정은 2002년 시작할 당시 국가부주석이던 후진타오(胡錦濤)의 서명날인과 사업에 대한 지지를 바탕으로 국가적 사업으로 강력히 추진됐다. 동북공정은 후진타오가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권좌에 오른 2002년 말 이후 5년간 강력히 추진됐고, 그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이렇다 할 항의나 이 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적 행동 한 번 제대로 못 했다. 일본 제국주의마저 부인하지 않았던 것이 고구려·신라·백제 3국의 한반도 정립(鼎立)의 역사다. 그 삼발이 솥에서 한 개의 발을 빼내감으로써 3국 정립이라는 솥은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지고 만 것이다.

후진타오가 2012년 11월 권좌에서 내려오면서 동북공정이 “종결됐다” “흐지부지 됐다”는 말을 중국 지식인들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슴앓이를 안겨주던 동북공정의 역할을 다른 것이 차지했다. 소문으로 떠돌기 시작한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 사드(THAAD)에 대한 중국의 반대가 그것이다. 사드의 한국 배치 소문과 중국 측의 반대 의사 표시는 17세기에 확립된 유럽의 베스트팔렌 체제를 기반으로 한 현대의 주권국가 체제를 부인하고 한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행동으로 자리를 잡았다.

중국의 사드 반대는 지난해 7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이 그때까지의 NCND 방침과는 달리 “신속한 배치”를 돌연 발표함으로써 한·중 사이에 대표적인 갈등으로 떠올랐다. 1992년 8월에 한·중 수교가 체결된 이후 한 번도 전례가 없던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경제활동에 대한 제재도 시작됐다. 중국 젊은이들을 사로잡던 한류(韓流)의 중국 내 유통도 금지됐다. 한국이 베스트팔렌 체제에 따른 주권국가임을 깔아뭉개면서 진행되는 중국의 사드 반대와 대응 공격 경고로 중국 내 현대차 판매는 반토막이 났고, 중국 전역에 진출해 있던 롯데 유통업은 전면적인 브레이크가 걸려 수많은 매장이 문을 닫게 됐다. 한류의 TV 공연도 일제히 중단됐다.

중국인들의 사드 배치 반대가 확산된 데는 다분히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시진핑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중국 지식인들의 말이다. 일반적으로 당과 국가의 전략적인 문제나 거시적인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관례였던 시진핑 당 총서기가 사드라는 특정 무기에 대한 반대 발언을 함으로써 사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중국인들도 덩달아 사드 반대를 외치는 흐름을 형성하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의 사드 반대는 과연 언제까지 가야 사라지거나 흐지부지될 수 있을까. 중국 지식인들의 예상은 “중국 정치의 현실상 시진핑 주석이 사드 반대를 철회하거나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 확산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들의 말이 맞다면 중국의 사드 반대는 올해 말 5년의 재임 기간을 새로 시작하는 시진핑 당 총서기의 임기 시간표에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시진핑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 말 제20차 당 대회 무렵에 가서야 사드에 대한 반대가 중국에서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들이다.

중국의 사드 반대가 만약 성공해서 우리가 사드를 철수한다든지 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중국은 한걸음 더 깊숙이 우리의 자존심을 파고들 제2의 동북공정이나 제2의 사드 사태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그런 사태가 진전된다면 그 귀결은 베이징대학의 원로 국제정치학자 천펑쥔(陳峰君)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반도에 통일 국가 형성을 조장해서 한반도 전체를 미국과의 완충지대로 만들자”는 말로 나타날 것이고, 그에 앞서 “이제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나가야 할 때”라는 주장이 나올 것이 틀림없다. 중국의 사드 배치 반대에 우리가 결연히 대처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에 벌어질 일들을 예상하는 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