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데베셀루 기지에 실전배치된 미국의 이지스 어쇼어의 모습. ⓒphoto 미해군사이트
루마니아 데베셀루 기지에 실전배치된 미국의 이지스 어쇼어의 모습. ⓒphoto 미해군사이트

루마니아 남부 올트주의 자그마한 마을 데베셀루에 있는 공군기지.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남서쪽으로 180㎞, 흑해로부터는 300㎞ 떨어져 있는 이 기지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중 하나인 이지스 어쇼어(Aegis Ashore) 포대가 2016년 5월 12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했다. 미국이 2013년부터 8억달러를 투입해 1.7㎢ 규모인 이 기지에 이지스 어쇼어를 배치할 수 있는 시설을 건설해왔다. 옛 소련의 공군기지였던 이 기지에 배치된 이지스 어쇼어 포대는 요격미사일 24기, MK41 수직 발사대, AN/SPY-1 위상배열 레이더, 지휘통제 장비 등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은 병력 200명을 포함한 요격미사일 부대를 이 기지에 배치했다. 미국이 동유럽에 MD 체계를 가동한 것은 루마니아가 사상 처음이다. 미국이 이 기지에 이지스 어쇼어 포대를 배치한 것은 이란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것이다. 이지스 어쇼어는 해상의 이지스 구축함에서 운용하는 미사일 요격 체계를 지상 배치형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이 기지에 설치된 SM-3 블록(Block) 1B 요격미사일의 사거리는 700㎞이고, 요격고도는 500㎞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요격미사일의 사거리(200㎞)와 요격고도(40~150㎞)에 비해 3배 이상이다. 특히 SM-3 블록 1B 요격미사일은 적의 탄도미사일을 직접 타격(hit-to-kill)하는 방식이어서 탄두 부분에 폭약이 없다. 때문에 공격용 무기가 아니라 방어용 무기라고 볼 수 있다. AN/SPY-1 위상배열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1000㎞에 달한다.

루마니아, 미국과 군사협력

루마니아 정부는 그동안 러시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지스 어쇼어 포대 배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왔다. 루마니아 정치권도 여야의 구분 없이 이지스 어쇼어 포대가 자국 안보에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실제로 루마니아 상원은 미국 정부와 자국 정부 간에 체결된 이지스 어쇼어 배치 협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으며, 하원에선 반대 2표, 기권 1표만 나왔다. 이지스 어쇼어 배치 협정의 내용은 미국이 기지 시설구축 비용을 부담하되, 기지 밖의 전기와 가스, 수도, 통신 등 각종 기반시설 건설과 관련 비용 등은 양국이 분담하는 것으로 돼 있다. 루마니아 국민들도 그동안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왔다. 데베셀루의 주민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주민들은 오히려 미군이 주둔한 만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 기지 인근 5㎞ 이내에 주택과 농장들이 있지만 현재까지 인체와 환경에 영향을 미쳤다고 루마니아 언론들이 보도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유럽 남동부에 위치한 루마니아는 국토 면적은 23만7000㎢, 인구는 2300만명밖에 되지 않는 자그마한 국가다. 로마제국, 헝가리, 오스만 터키, 오스트리아 등에 차례로 지배를 받았지만 1881년 왕정 국가로 독립했던 루마니아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독일에 가담했다가 1944년 소련에 항복했다. 당시 루마니아는 전쟁에 대한 배상으로 베사라비아와 부코비나 지방을 소련에 할양해야만 했다. 이후 루마니아에선 왕정이 무너지고 1947년 공산 정권이 수립됐다. 루마니아 국민들은 독재자인 니콜라에 차우셰스쿠(1918~1989)의 폭정으로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차우셰스쿠는 1965년 3월 루마니아 공산당 서기장인 게오르게 게오르기우 데지의 사망 이후 정권을 차지했다. 특히 차우셰스쿠는 북한의 김일성을 모방해 자신을 우상화하고 반체제 인사들을 살해하는 등 철권통치를 했다. 1989년 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 민주화 운동의 바람이 불면서 루마니아에서도 민중봉기가 발생하자 차우셰스쿠는 해외로 도망하려다 체포돼 재판을 받고 부인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시민혁명으로 독재 청산과 체제 전환에 성공한 루마니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민주국가로 변신했다. 루마니아는 GDP 성장률이 2015년 3.7%, 2016년 4.8%를 기록하는 등 EU 회원국 중에서 잘나가는 국가 중 하나이다. 소린 그린데아누 총리는 2020년까지 루마니아 경제를 EU 회원국 중 13위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루마니아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안보 문제이다. 러시아가 2014년 3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함으로써 루마니아는 물론 과거 소련의 침공이나 지배를 받아왔던 중·동유럽 국가들과 발트 3국은 러시아의 침략을 우려해왔다. 트라이안 바세스쿠 전 루마니아 대통령은 “러시아가 루마니아 동부 국경에까지 영토 야심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바세스쿠 전 대통령은 미국의 이지스 어쇼어 포대를 자국 땅에 배치하는 것을 결정한 인물이다. 당시 바세스쿠 대통령은 미국이 이란의 탄도 미사일을 견제하기 위해 MD체계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루마니아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미국과 군사협력 관계를 맺었다. 바세스쿠 전 대통령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판단했다. 루마니아 정치권과 국민들도 바세스쿠 전 대통령의 이런 전략을 지지했다.

러시아의 반발

러시아는 루마니아의 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는 루마니아의 MD체계를 제거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도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대응할 경우 미국의 MD체계가 배치된 국가가 최우선 목표가 될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루마니아에 이지스 어쇼어를 배치한 것이 ‘중·단거리 핵미사일 폐기조약(INF)’을 직접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조약은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양국이 보유한 핵탄두 장착용 중거리와 단거리 지상발사 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합의한 핵무기 감축 협정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5월 INF를 위반하면서 대(對)서방 전초기지이자 서부지역의 영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사거리 500㎞의 이스칸데르-M 미사일 포대를 배치했다.

반면 루마니아 정부는 러시아의 이런 위협이나 경고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아드리안 투투이아누 루마니아 국방장관은 지난 7월 루마니아가 미국으로부터 39억달러 상당의 패트리엇 미사일(PAC-3 MSE) 7개 포대를 구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PAC-3 MSE는 기존 PAC-3보다 사거리가 늘었고 높은 고도에서 적 미사일 타격이 가능하며 정밀도도 30% 정도 향상됐다. 루마니아는 PAC-3 MSE 7대 포대를 오는 2022년까지 실전배치할 예정이다.

폴란드도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러시아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MD체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폴란드는 그동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병합하고 동부지역의 분리독립 세력을 지원하자 자칫하면 다음 차례가 자국이 될 것이라고 우려해왔다. 폴란드는 칼리닌그라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안토니 마체레비치 폴란드 국방장관은 지난 7월 루마니아와 마찬가지로 PAC-3 MSE 8개 포대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폴란드는 오는 2025년까지 PAC-3 MSE 8개 포대를 실전 배치할 예정이다.

폴란드의 親서방 노선

폴란드는 옛 소련과는 악연을 맺어왔다. 폴란드는 1932년과 1934년 소련 및 나치독일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했었다. 하지만 소련과 독일은 1939년 6월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서 폴란드와 발트 3국 등을 각각 분할해 통치한다는 비밀의정서(몰로토프-리벤트로프조약)를 맺었다. 이에 따라 나치독일은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서부지역 국경을 넘었고, 2주 후에는 소련이 폴란드 동부를 침략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나치독일에 선전포고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나치독일은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깨고 폴란드의 소련 점령지역까지 모두 차지했으며, 소련으로 진격했다. 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8월 폴란드 저항세력이 수도 바르샤바에서 나치독일의 점령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 소련군은 바르샤바 인근까지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저항세력을 지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나치독일의 무자비한 보복으로 폴란드인 20만명이 학살당하고 바르샤바는 잿더미가 됐다. 전쟁이 끝난 뒤 폴란드에 공산당 정부를 세울 속셈으로 수수방관한 것이었다. 소련군은 1945년 1월 바르샤바에 해방군으로 입성했으며, 1947년 폴란드에 공산정권을 세우고 사실상 간접적으로 통치해왔다. 폴란드가 냉전시절 소련이 지배하던 동구권에서 공산당의 일당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폴란드 국민들은 옛 소련이 자행한 카틴숲 학살사건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소련 비밀경찰은 1940년 4월 서부 스몰렌스크 인근 카틴숲에서 포로로 잡힌 폴란드군 장교와 지식인 등 2만2000여명을 비밀리에 처형하고 시체를 암매장했다. 카틴숲 학살사건은 1990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진상을 밝히면서 국제사회에 알려졌다. 당시 공개된 비밀문서에 따르면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폴란드가 다시는 독립하지 못하도록 폴란드 엘리트들의 씨를 말려야 한다”면서 비밀경찰에게 폴란드 주요 인사들을 비밀리에 살해할 것을 지시했다. 카틴숲 학살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러시아와 폴란드 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폴란드는 유럽 남서부와 북동부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데다가 전 국토의 75%가 해발 200m 이하의 대평원이어서 역사적으로 볼 때 끊임없이 주변 열강의 침탈을 받아왔다. 2차 대전 때 나치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폴란드는 러시아와는 언어와 혈통에선 같은 슬라브 계통이지만 사회·문화적 정체성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폴란드의 국교는 슬라브 국가들과는 달리 가톨릭이고, 문자도 라틴 알파벳을 사용한다. 특히 폴란드는 러시아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선 친서방 노선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과 러시아 간의 신냉전체제가 본격화되면서 ‘양다리 전략’을 쓰기에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소련과 나치독일 사이에서 양다리 전략을 쓰다 실패한 만큼 이번에는 분명하게 어느 한쪽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유럽의 안보 구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와 러시아가 충돌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폴란드는 안보 문제를 서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두 세력의 중간에 위치한 폴란드로선 미국과 나토가 자국의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6일 폴란드를 방문해 바르샤바 크라신스키광장에서 연설을 통해 나치독일의 점령과 소련의 지배 등 폴란드의 오랜 고난의 역사를 들면서 “폴란드는 언제나 승리할 것”이라면서 미국과 폴란드의 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크라신스키광장에는 1944년 바르샤바 봉기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나토조약 제5조에 대한 준수 의지를 강조했다. 나토조약 제5조는 개별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집단 방위 조항으로 폴란드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는 나토 회원국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당시 폴란드 국민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 함부르크의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폴란드를 먼저 방문한 것에 크게 고무됐었다.

지난해 5월 13일 미국과 폴란드 고위 인사들이 폴란드 레드지코보 기지에서 이지스 어쇼어 설치 착공식을 갖고 있다.
지난해 5월 13일 미국과 폴란드 고위 인사들이 폴란드 레드지코보 기지에서 이지스 어쇼어 설치 착공식을 갖고 있다.

한반도와 닮은꼴 동유럽의 선택은

루마니아와 폴란드가 구매할 계획인 미국의 PAC-3 MSE. ⓒphoto 록히드마틴사
루마니아와 폴란드가 구매할 계획인 미국의 PAC-3 MSE. ⓒphoto 록히드마틴사

미국은 루마니아와 마찬가지로 폴란드 북부에 있는 레드지코보 공군기지에서 이지스 어쇼어 포대를 배치하기 위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옛 소련이 사용했던 레드지코보 공군기지는 인근에 발트해가 있다. 이 기지 주변에 살고 있는 400여명의 주민들은 미국의 이지스 어쇼어 포대 배치에 반대하지 않고 있다. 폴란드 정부와 미국 정부 관리들은 지난해 5월 13일 이 기지의 착공식을 갖고 오는 2018년까지 가동을 목표로 공사를 완공하기로 했다. 당시 착공식에는 안드레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참석하기도 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폴란드 정치권은 이지스 어쇼어 배치를 지지하고 있다. 폴란드 정부도 그동안 이지스 어쇼어 포대 배치를 철회하라는 러시아의 강력한 경고를 거부해왔다.

중·동유럽과 한반도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이지스 어쇼어 배치를 놓고 폴란드와 루마니아를 겁박하듯 중국이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가 미국의 이지스 어쇼어 폴란드·루마니아 배치에 반발하는 이유는 자국의 핵 억지력을 무력화하려 한다는 의심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의 사드 한국 배치에 반대하는 이유는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미국의 이런 조치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약소국인 폴란드와 루마니아만을 협박하면서 비난해왔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미국에 사드 배치를 철회하라면서 무력 사용을 운운한 적은 없다. 러시아와 중국의 이런 태도에서 다른 점이 있다. 러시아는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정치·외교적인 압박만을 가해왔지만 중국은 한국에 경제 보복조치를 해왔다. 폴란드·루마니아와 한국의 태도에서도 다른 점이 있다. 폴란드·루마니아의 정치권과 국민들은 안보 문제에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한국 정치권과 국민들은 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무튼 분단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폴란드·루마니아의 안보를 위한 선택은 주권국가의 올바른 결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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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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