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 9일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인사를 통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photo 임현찬 조선일보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 9일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인사를 통한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photo 임현찬 조선일보 기자

“최근 어느 기자가 ‘검찰의 봄날은 갔다’고 했지만, 제 기억엔 검찰에 봄날은 없었습니다. 검찰의 진정한 봄날을 만드는 데 제대로 기여하지 못한 것이 죄송할 뿐입니다.”

김영종(51) 수원지검 안양지청장은 8월 초 검찰 내부 통신망에 사의를 표명하며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는 “대한민국 검사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다가 이제 물러간다”고 했다. 김 지청장은 2009년 대검 첨단범죄수사과장, 2010년 대검 범죄정보 1담당관, 2013년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검사장 승진 인사를 코앞에 둔 지난 6월 말 갑자기 구설수에 휘말렸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업가의 아파트를 시세보다 싸게 월세를 얻어 살고 이 사업가에게 아들 유학비를 빌리는 등 특혜를 받은 의혹이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난 것이다. 대검 측은 이미 문제 없는 것으로 결론 내린 사안이라고 했다. 검찰 내부에선 “김 지청장을 찍어내려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결국 그는 지난 7월 말 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탈락했다. 사법연수원(23기) 동기생 9명은 승진했다.

김 지청장은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2주 만에 가진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던 검사다. 노 대통령과 토론을 벌인 검사 10명 중 가장 주목을 받았다. 노 대통령이 “검찰에 간섭 안 하겠다”는 취지로 말하자 김 지청장은 “대통령께서는 취임 전에 부산동부지청장에게 청탁 전화를 하신 적이 있다. 그것은 뇌물사건 관련해 잘 좀 처리해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때는 왜 검찰에 전화하셨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때 노 대통령의 입에서 그 유명한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노 대통령은 “청탁 전화 아니었다. 그 검사 입회시켜서 토론하라면 하겠다”고 했다. 또 “(지구당) 위원장이 억울하다고 호소를 하니 못 들은 얘기가 있다면 들어달라고 했다. 검사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변명 같은 해명을 해야 했다. 이런 모습은 공중파TV 3사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10명 중 7명 검찰 떠나

문재인 대통령은 훗날 자신의 책 ‘운명’에서 이날 검사들의 모습을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며 “인사 불만 외에, 검찰 개혁을 준비해 와 말한 검사는 없었다. 오죽했으면 ‘검사스럽다’는 말까지 나왔을까”라고 썼다.

‘검사와의 대화’는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9일 오후 2시부터 세종로 정부청사 대회의실에서 약 3시간 동안 진행됐다. 토론은 보는 내내 아슬아슬할 만큼 긴장감이 흘렀다. 현직 대통령에게 대들다시피 열띤 토론을 벌였던 젊은 검사 10명. 그중 7명은 14년이 지난 지금 검찰을 떠났다.

김 지청장의 ‘사건 청탁’ 폭로를 이끌어낸 사람은 당시 대검 연구관이던 이완규 인천지검 부천지청장(56·사법연수원 23기)이다. 그는 노 대통령이 “검찰 인사권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검찰총장에게 이관하라고 하는데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일이 없다”고 하자 “우리나라는 법무부 장관이 가지고 있는 제청권, 즉 실질적인 인사권을 가지고 정치권의 영향력이 수없이 검찰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맞받았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당시 민정수석인 문재인 대통령 등을 일으켜세워 “이 사람들을 의심하느냐. 문재인씨는 제가 신뢰하고, 부산의 많은 시민이 신뢰하는 사람이라서 민정수석으로 뒀다”며 “이 사람들을 앞으로 검찰 인사위원으로 임명해서 (인사를)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젊은 검사들 눈에는 말로만 ‘검찰 개혁’이지 결국 인사권으로 검찰을 통제하려는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김 지청장도 이 대목에서 욱하는 마음이 들어 ‘사건 청탁’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이 지청장도 최근 사직(辭職)의 글을 올리고 검찰을 떠났다. 그는 “청와대가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하면 외부적으로 검찰이 청와대 편이라는 인상을 주므로 그 자체가 부적절하다”며 “공정한 검찰 인사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검사와의 대화’ 참석자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했다. 또 “그때 그런 장치가 도입됐다면 검찰이 현재와 같이 비난받는 모습으로 추락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 지청장은 “정권 교체기의 혼란기이고 검찰의 인적쇄신이 필요한 시기라는 이유로 청와대 주도로 전례 없는 인사도 몇 차례 행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5월 문재인 정부의 파격 인사였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에 대한 절차적 문제를 제기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공석인데 법 절차를 지켜 인사를 했느냐는 것이다. 또 ‘돈봉투 만찬’ 사건과 관련해 부산고검 차장으로 좌천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해서도 “감찰 조사도 하기 전에 직위 강등 인사가 있어 그 절차나 과정이 궁금하다”며 설명을 요구했다. 그는 검찰 내에서 소문난 이론가다. 2005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검사의 지위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검찰청법·형사법 관련 저서와 논문을 여러 편 썼다.

대통령 형님 거론한 검사

서울지검 검사였던 이정만 변호사(55·사법연수원 21기)는 대통령의 ‘형님’을 거론했다가 토론회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말하던 도중 “대통령을 네 번째 모시고 있는데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은 분이 없었다”며 “최근 형님에 대한 해프닝을 포함해서 주위에서 생길 수 있는 것들이다”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형님 이야기를 이런 자리에서 꺼내서 굳이 대통령 낯을 깎을 이유가 있을까요? 정말 이런 식으로 토론하겠다는 겁니까”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즈음 노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국세청장 인사에 개입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있었다. 이 변호사는 2015년 검찰을 떠나 20대 총선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현재 법무법인 ‘윈앤윈’ 대표 변호사다.

노 대통령에게 ‘학번’ 이야기를 했던 박경춘(51·사법연수원 21기) 당시 서울지검 검사는 2014년 수원지검 평택지청장을 끝으로 변호사 개업을 해 법무법인 ‘일호’ 대표변호사로 있다. 박 변호사가 “83학번이라는 보도를 봤다”고 하자 노 대통령은 “80학번쯤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고졸(高卒)인 대통령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서울지검 검사였던 이옥 변호사(53·사법연수원 21기)는 토론회에 참석했던 10명의 검사 중 유일한 여검사로 관심을 모았다. 2010년 검찰을 떠나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토론 당시에는 “사실 저희 검사들 열심히 일하고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 않느냐”며 “대통령이 되셨으니 따뜻한 가슴으로 보듬어 안아달라”고 했다. 여성 특유의 감성에 호소하는 발언이었다.

‘채동욱 호위무사’는 지금

“노무현한테도 개기고 박근혜한테는 사표 던지고 나왔지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니다. 나도 현직에 있을 때 총장, 장관, 고검장, 검사장, 검찰국장, 법무실장, 차장검사, 부장검사로부터 격려금을 많이 받았다. (이런 식이라면) 전국 검찰을 통째로 감찰해야 하지 않느냐. 총칼만 안 들었지 권위주의 정부와 뭐가 다른가….”

혼외자 논란으로 임기 도중 물러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호위무사’로 불리는 김윤상 변호사(48·사법연수원 24기)가 지난 5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청와대가 ‘돈봉투 만찬’ 사건을 감찰하라고 지시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도 검사 경력 6년 차 때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로 토론회에 참석했다. 김 변호사는 대검 감찰1과장으로 있던 2013년 9월 법무부가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의혹을 감찰하자 내부 통신망에 “전설 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낫다. 아들딸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물러난다”는 글을 올리고 사표를 냈다. 이후 변호사 개업을 했다.

부산지검 소속이었던 윤장석 검사(47·사법연수원 25기)는 지난해 1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검찰을 떠났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직속 부하로 검찰 내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돼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특검과 검찰에서 수차례 참고인 조사도 받았다. 노 대통령과의 토론회에선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못 얻었던 것은 바로 정치적인 사건, 큰 사건, 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칼을 정확히 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윤 전 비서관은 아직까지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환 청주지검장(53·사법연수원 21기)은 토론회 당시 인천지검 SK 분식회계 수사팀에 있었다. 최태원 회장을 구속하면서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김영종 검사의 ‘수사 청탁’ 폭로에 노 대통령이 발끈하자 “(수사 과정에) 외부인으로부터 외압이 있다”며 “여당 중진인사도 있고, 정부의 고위 인사도 있다. 혹자는 다칠 수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그렇게 다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을 제게 고발해주실 수 없느냐. 이런 사람 검찰 떠나게 해달라”고 했다. 6년 뒤인 2009년 이 지검장은 노 대통령을 수사했다. 대검 중수부 2과장 때 검사와 피의자로 다시 만났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 대검 과학수사기획관 등을 거쳐 2015년 검사장으로 승진해 제주지검장을 지냈다.

서울지검 검사였던 허상구 서울고검 검사(57·사법연수원 21기)는 첫 토론자였다. 의사 진행 관련 건의할 게 있다며 “대통령은 토론의 달인이니까 검사들을 토론으로 제압하려 하지 말고, 많이 들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참여정부라면서 이번 인사는 검사들 참여가 전혀 없는 정치권의 일방적인 밀실 인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상당히 모욕감을 느끼지만, 이 자리에서 모욕 안 느끼기로 하고 토론에 지장 없이 서로 웃으며 넘어가자”고 했다. 허 검사는 법무부 관찰과장,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청주지검 차장 등을 지냈지만 더 올라가진 못했다. 2009년 용산 참사 수사에 참여했다.

토론회 당시 울산지검 검사였던 김병현 검사(52·사법연수원 25기)는 당시 노 대통령이 사건과 관련해 전화를 걸었다던 부산동부지청장으로 최근 발령받았다. 노조와 회사 사이에서 중재를 돕는 공안검사로 소문났다. 노사분규가 많은 울산지검에 근무할 때는 노조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2015년 서울지검 공안2부장일 때는 ‘종북콘서트’ 논란을 일으킨 재미동포 신은미씨를 조사해 강제출국하도록 조치했다. 토론회에서 김 검사는 강금실 장관을 향해 “검찰이 바라는 것은 검찰을 통제하는 장관이 아니고 검찰을 위해서 외풍을 막아주고 정치인들로부터 보호해주는 장관”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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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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