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오전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이 열린 청와대 충무실에서 진급자들의 경례를 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오전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이 열린 청와대 충무실에서 진급자들의 경례를 받고 있다. ⓒphoto 뉴시스

“육사 출신들이 섭섭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군의 중심이 육군이고 육사가 육군의 근간이라는 것은 국민께서 다 아는 사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에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다소 뜻밖으로 받아들여졌다. 전날 단행된 문재인 정부 첫 군 수뇌부 물갈이 인사에서 육사 출신들이 상당수 배제돼 육사 출신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대통령이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방장관부터 군 지휘부 인사까지 육·해·공군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다”며 “이기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우리 군의 다양한 구성과 인력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군 수뇌부 대장 8명 중 부임 1년이 안 된 엄현성 해군 참모총장을 제외한 7명의 대장을 교체했다. 이번 인사는 그 규모는 물론 육군·육사 배제, 기수 건너뛰기 등에서 ‘역대 최강의 태풍급’으로 불릴 만하다.

이번 인사에서 군 서열 1위인 합동참모의장(합참의장)에 정경두(57·공사 30기) 공군 참모총장이 내정됐다. 정 총장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합참의장에 공식 임명되면 이양호 전 합참의장 이후 23년 만의 첫 공군 출신 합참의장이 되는 것이다. 특히 정 총장이 합참의장에 임명되면 해군 출신인 송영무 국방장관과 함께 창군 이래 처음으로 우리나라 국방 최고 ‘투톱(Two Top)’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을 모두 비육군이 맡게 된다.

또 육군 참모총장에는 김용우 합참 전략기획본부장(56·육사 39기)이, 공군 참모총장에는 이왕근 합참 군사지원본부장(56·공사 31기·이상 중장)이 각각 임명됐다. 한·미연합사부사령관에는 김병주 3군단장(55·육사 40기)이, 1군사령관에는 박종진 3군사령부 부사령관(60·3사 17기)이, 제2작전사령관에는 박한기 8군단장(57·학군 21기)이, 3군사령관에는 김운용 2군단장(56·육사 40기·이상 중장)이 각각 임명됐다.

이번 인사는 국방개혁을 명분으로 그동안 군의 주류였던 육군, 육사 출신들을 가급적 배제하려는 기조를 보여줬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문회 과정에서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해군 출신인 송영무 장관 임명을 고수한 데서 어느 정도 예측됐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 민정수석 등으로 근무했던 문 대통령은 노정부 초기에 육군·육사 출신을 중용한 것이 당시 국방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요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사에서 합참의장과 함께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육군 참모총장에 1969년 이래 처음으로 비육사가 임명되느냐는 것이었다. 합참의장에 비육군이 임명되면 육군 총장까지 비육사를 임명하기 어렵겠지만 합참의장에 육사 출신 육군이 임명되면 육군 총장에는 비육사가 임명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한 소식통은 “육군, 특히 육사 출신들이 육사 배제 흐름에 대해 내놓고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지만 속으로 부글부글하면서 이번 인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다”며 “공군 출신 합참의장에 이어 육군 총장도 비육사가 임명됐다면 어떤 형태로든 불만이 표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육군 수뇌부 인사도 육군 참모총장은 육사 출신이 임명됐지만 학군·3사 등 비육사 출신 2명이 야전군사령관에 임명된 것도 이례적이다. 과거 정부에선 비육사 출신이 1명가량 야전군사령관에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선 ‘육사 독식’ 경향이 강해져 논란이 일었었다.

이번 인사를 통해 육사 37~38기가 모두 전역하고 육사 40기 군사령관 시대를 맞게 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와 동기로 널리 알려진 육사 37기들은 3개 군사령관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도 육사 37기다.

통상적인 인사라면 육사 37기는 합참의장으로, 38기는 참모총장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 사실상 2개 기수를 건너뛰어 40기 군사령관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육사 37기들은 물론 중장들의 주력인 육사 38기와 39기들이 줄줄이 전역하게 됐다. 이 중 특히 38기는 비운의 기수로 통한다. 역대 가장 인원이 많은 육사 기수 중의 하나지만 대장은 임호영 전 한·미연합사부사령관 한 명만 배출됐다. 1978년 당시 최고로 높았던 13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지만 사관학교 출신 대위를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이른바 ‘유신 사무관’ 제도도 이들이 혜택을 보기 직전 폐지됐다.

전역하는 육사 38·39기 가운데엔 군내 사조직인 ‘알자회’ 출신들과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장관 등 전 정부 군수뇌부 인맥으로 분류된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군 일각에선 이번 인사가 세대교체를 통해 적체된 인사의 숨통을 틔워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정통 작전통 등 유능한 장성들이 일찍 옷을 벗게 되는 부작용도 생겼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 의혹도 인사 막판에 큰 변수로 등장했다. 새로 임명된 군 수뇌부에 대해서도 박 전 사령관처럼 전·현직 공관병들이 갑질 의혹을 제기한다면 부실 검증 논란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갑질 의혹이 있는 후보자는 철저히 배제한다는 원칙 아래 인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한 육사 출신 중장이 합참의장 후보에 올랐지만 막판에 공관병 갑질 의혹이 제기돼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공관병 갑질 의혹은 기존 인사검증 시스템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어서 청와대 민정에서도 고민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를 출신지별로 보면 충청 지역이 3명으로 가장 많고 경남 2명, 경북 1명, 전남 1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는 군단장 등 중장급 이하 인사는 오는 8월 21일 시작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이 끝난 뒤 단행할 계획이다. 군내에선 중·소장 인사에서 현 정부의 색채가 더 강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후속 인사에서 송영무 국방장관의 영향력이 얼마나 발휘될지도 관심사다. 한 소식통은 “이번 인사는 송 장관보다는 청와대 측의 의중이 많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며 “중·소장급 인사는 송 장관의 군 장악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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