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의당 후보자 합동연설회. 왼쪽부터 천정배·정동영·이언주·안철수 후보. ⓒphoto 뉴시스
지난 8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의당 후보자 합동연설회. 왼쪽부터 천정배·정동영·이언주·안철수 후보. ⓒphoto 뉴시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당대표 경선에 출마하기로 하면서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에서 패배한 지 3개월여 만에 다시 전면에 나서 당을 이끌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대선 패배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 취업특혜 의혹 제보조작 파문으로 당 안팎의 책임론은 더욱 거세진 상황이었지만 안 전 대표는 정면돌파를 택했다. 당대표 경선의 상대자가 호남에 기반을 둔 천정배(광주 서구을)·정동영(전북 전주병) 의원이라는 점에서 안 전 대표의 부담은 더 크다. 국민의당 의원 40명 중 23명은 호남이 지역구다. 호남 민심의 선택이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재기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호남 출신 중량급 정치인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친안(親安) 성향 의원이었던 이언주 의원(경기 광명을)까지 당 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안 전 대표는 더욱 힘겨운 싸움을 벌이게 됐다.

안철수 집중 공격하는 세 후보

8월 27일 치러지는 국민의당 당대표 경선은 안 전 대표에 대한 나머지 세 후보의 집중 공세로 달궈지고 있다. 지난 8월 14일 시작된 첫 TV토론에서 정동영 의원은 “안 후보가 ‘당이 소멸 위기라서 나왔다’는 말을 하는데 이를 뒤집어 보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갇혀 있는 것”이라며 “출마하려 할 때 당내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는데, 좀 더 열어놓고 듣고 결정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정 의원은 “그동안 이 당이 시스템으로 움직인 게 아니라 소수 측근에 의해 움직여졌다”고도 했다.

천정배 의원은 “지난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가 중도 하차했고, 이번 선거는 그 대표의 남은 임기를 채우는 보궐선거”라며 “그 자리를 패배의 장본인일 뿐 아니라 패배의 책임이 더 큰 안 전 대표가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겠냐”고 했다. 천 의원은 “안 전 대표가 할 일은 지난 대선 때 자신을 당선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뛴 천정배, 정동영, 이언주를 꺾고 명분 없는 당대표가 되는 게 아니다”라고도 했다.

이언주 의원도 “본인만이 당을 살리겠다는 생각은 마음에 안 들지만 존중했다”며 “이분들이 다 반대하고 뒤돌아 서 있는 상황에서 저 같으면 삼고초려,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밤늦게 집 앞에 찾아가서라도 울면서 설득할 텐데 안 전 대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의원은 “안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에도 토론 과정에서 햇볕정책 등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 지지자들이 헷갈린 적이 있다”고 했다.

이날 후보들은 호남 민심을 겨냥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관련 논란을 거듭하기도 했다. 천 의원이 “안 전 대표가 대선 당시 ‘햇볕정책에 공과 과가 모두 있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 진보와 보수 모두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하자, 안 전 대표는 “그 발언은 한계 또는 아쉬움에 대한 표현이었다”며 “햇볕정책이란 아시다시피 정말 튼튼한 안보와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전쟁을 방지하고 북한과 교류를 통해 평화를 지키는 게 아니냐”고 했다. 정 의원이 다시 “햇볕정책에 공과 과가 있다고 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라고 하자, 안 전 대표는 “정책은 선택하는 거지 그 사람 자체가 아니다”라며 “정책이 발전적으로 계승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안 전 대표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서도 “옳지 않았던,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던 부분”이라고 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국민의당 대표 경선의 지속적인 화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안 전 대표는 중도층을 겨냥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입장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북한의 위협이 가중되는 현 상황에서 대북 유화정책을 적극 옹호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국민의당의 지역적 기반인 호남 민심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중시하기 때문에 안 전 대표로서는 이에 대해서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천정배·정동영 의원은 대북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 대화파인 데다가 호남 출신이기 때문에 햇볕정책을 통해 안 전 대표에 대한 비판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며 “안 전 대표가 어떤 방식으로 균형을 잡으면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당원 24만 중 호남이 절반 넘어

안 전 대표가 당 안팎의 비판을 감수하면서 출마했지만 여전히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핵심은 호남 민심의 선택이다. 이번 당대표 경선에는 국민의당 당원 24만여명이 참여한다. 이 중 전남의 당원이 가장 많다. 5만여명이다. 전북은 4만3000여명, 광주는 3만여명이다. 세 지역을 합하면 국민의당 전체 당원의 50%를 넘는다. 서울은 3만3000여명, 경기는 3만여명이고 다른 지역은 1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영남 지역은 다 합쳐도 2만명이 되지 않는다. 부산 출신 안 전 대표가 영남 지역에서 몰표를 얻는다고 해도 호남 표심을 잡지 못하면 당대표가 될 수 없는 구조다. 안 전 대표 측은 “서울, 경기 등 수도권과 영남 지역 등에서 상당히 유리한 구도”라고 하면서도 “역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호남 당원들의 표심”이라고 했다.

호남의 당심에는 해당 지역구 의원들이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이 안 전 대표의 출마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상당수 의원들은 안 전 대표의 출마를 반대하는 성명에 앞장서기도 했다. 또 현실적 영향력은 제한적이라고 해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직계로 여겨지는 동교동계 인사들도 안 전 대표의 출마에 ‘탈당’ ‘출당’까지 언급하며 격렬하게 반발했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안 전 대표가 막상 출마를 선언하고 적극적으로 당원들을 만나면서 반안(反安) 정서는 점차 누그러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자숙해야 할 시점에 갑자기 당대표 경선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당혹스러워하던 당원들 중 일부가 인지도나 전국적 지지율을 생각하면 안 전 대표에게 한 번 더 정치적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며 “문제는 안 전 대표가 그런 기대에 부응할 만한 비전과 감동을 경선 기간 중에 보여줄 수 있느냐에 있다”고 했다.

양날의 검 서울시장 출마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여부도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지난 8월 16일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천정배 의원이 거론한 자신의 서울시장 출마론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겠다”고 했다. “당이 신뢰를 회복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치를 여건이 될 때 제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될지 그 당시 기준으로 판단하겠다”고도 했다. 안 전 대표는 8월 14일 TV토론회에서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일은 뭐든지 하겠다는 각오다. 당과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했었다.

당내에서는 안 전 대표가 당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뒤,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해 차기 대권 도전을 향한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당대표로서 지방선거를 총지휘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울시장 선거에도 도전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당대표 경선에서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론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최승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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