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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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은 역사적 경험과 세계적 추세에 역주행하고 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을 거대한 포퓰리즘 실험장으로 만들려 한다. 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문재인 정권의 포퓰리즘적 정책과 예산을 저지해야 한다.”

바른정당 김용태 의원(서울 양천을)이 지난 8월 22일 ‘문재인 포퓰리즘’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고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 임금 감소 없는 근로시간 단축, 법인세 및 고소득층 소득세 인상, 탈(脫)원전과 통신기본료 폐지 등을 현 정부의 대표적 포퓰리즘 사례로 뽑았다.

지난 8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그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를 장악한 핵심 인사들이 포퓰리즘 정책과 예산을 남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 정부가 대의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를 뒤로하고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추구함으로써 국회, 행정조직, 언론, 전문가 집단 등 자유민주주의 중요 시스템을 흔들고 있다고도 했다.

특히 그는 문 정부가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배경으로 청와대 요직을 장악한 1980년대 운동권 세력을 지목했다. 김 의원은 1980년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청와대에 대거 포진한 것을 두고 “운동권 동문회관이 있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자칭 정의로운 정부가 모든 일에 직접 개입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일종의 집단적 신념은 운동권 출신들로부터 나온다”고 봤다. 김 의원은 책에서 “동류집단은 ‘집단사고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생각의 근친교배가 되풀이되어 새로운 발상을 가로막고 혁신을 저해한다. 선후배로 똘똘 뭉쳐 외부를 향해 배타적 장막을 드리우기 마련”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책에서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관·경제관·안보관·역사관 등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목표로 하는 혁신주도성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이 책 말미에 국가개혁의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과 사회안전망 재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문재인 포퓰리즘’은 누구를 위한 책인가. “일반 국민 그리고 야권 정치인들을 위한 책이다. 일반 가정도 들어올 수입을 감안해 돈을 쓴다. 가정 대소사를 염두에 두고 저축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국가 수입이 얼마인지, 미래 세대를 염두에 두고는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과도한 예산을 짠다. 더 늦기 전에 이 문제의 절박함을 인식하고 대대적인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 포퓰리즘은 왜 문제인가. “포퓰리즘이란 대중영합적인 정책을 지렛대로 대중을 동원해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하는 정치 행태다. 대의기구를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독재로 흐를 수밖에 없다. 1980년대 운동권은 ‘시장은 사악하고 믿을 수 없다’고 여긴다. 정의로운 국가가 나서 시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이럴 때 시장에서는 저항이 발생하는데, 이 저항세력을 포퓰리즘으로 누른다면 그건 독재다.”

- 문재인 정부 정책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림없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단기처방이 아니다. 수요창출을 위한 케인스식 처방도 아니다. 복지확대, 노동시장 경직성 강화, 최저임금 인상 등은 돌이킬 수 없는 사안들이다. 한번 정규직이 된 사람들을 비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그렇게는 못한다. 나는 공공부문의 시대착오적인 고임금과 호봉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1980년대 운동권 세력도 이후 경험을 통해 진화하지 않았겠나. “현 정부가 마련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을 읽고 난 뒤 ‘설마 보고서 내용대로 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9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잡았으니, 결과로 승부를 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내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보수가 1970년대에 머물러 있듯 운동권은 1980년대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세계적 흐름에 부합하는 얘기들은 이들에 의해 완벽하게 차단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7월 19일 국가비전, 국정목표와 전략, 100대 국정과제 등을 담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5대 국정 목표에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등에 관한 세부안이 담겨 있다.

- 문재인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대의민주제를 무시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선택했다. 탈원전 정책의 경우 공론화하고 배심원단 판단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인기영합주의에 의지함으로써 견제가 사라지고 전문성도 무시됐다. 통신업체에 요금을 낮추라고 강요하는 건 시장주의 원리를 무시한 처사다. 언젠가 그 부담은 다시 개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 정치권, 행정조직, 언론, 전문가 집단 등이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한 결과는 아닐까. “만약 그렇다 해도 자유민주주의하에서는 이 시스템에 대한 자정과 개혁이 우선이지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건 더 큰 독재를 낳을 수 있다. 역사가 그걸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 포기할 수 없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지켜야 한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와 현 여당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 이 책을 쓸 때 김병준·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조언을 받았나. “그분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두 분의 철학은 이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됐다. 문 대통령이 두 분의 전직 정책실장과 노무현 정부에서 함께 일했는데, 현 정부는 두 분의 생각과 너무나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변 실장은 항간에 알려진 대로 이 정권에 영향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현 정권은 변 실장의 경제철학과 반대로 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참여정부 주요 정책을 설계한 김병준 실장의 생각과도 정반대로 가고 있다.”

국민대 교수인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04년 6월부터 2년간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총괄했다. 그 뒤를 이어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이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았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정책의 뼈대를 만들고 실행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책에 김동연 경제부총리에 대해 실망하는 대목이 나오던데 그 이유가 뭔가. “사실 처음에는 기대를 좀 했다. 문재인 정권을 만든 공신들이야 어차피 청와대에 포진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행정, 특히 예산통인 김 부총리를 발탁해 경쟁하게 만들면 합리적 방향을 도출해낼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증세 문제는 물론이고 건강보험 보장 확대 방안에 대해서도 전혀 자기 소신을 펴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실행계획을 짜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 의원은 사회발전에 따른 복지 확대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그러나 인구 추계상 향후 5년 후 건보 재정이 고갈되는 구조는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노령화 지속으로 건보 재정이 고갈되는 걸 최대한 완화하고자 그동안 쓰고 남은 돈을 모아놨다. 그런데 현 정부가 이 돈을 지금부터 쓰겠다고 한다. 기재부가 정치 논리에 굴복한 것 같다.”

- 증세는 필요한가. “현 정권이 추진하는 법인세 인상도 증세다. 조금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증세에도 순서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하에 국민 모두가 세금을 내야 한다. 이를 국민개세주의라 한다. 그럼에도 중복지로 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 소비세 인상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다음 법인세 인상을 마지막에 논의하는 게 맞다. 법인세는 인상 후 1~2년은 더 걷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시장원리에 따라 원점으로 회귀한다.”

현재 1700만명의 근로소득자 가운데 800만명(46%)이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현행 소득세법에는 다양한 세액공제 제도가 있다.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자가 생긴다. 바른정당 이종구 의원은 연간 2000만원 이상의 근로소득자는 최소 12만원의 세금을 내게끔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더불어민주당에서 저소득층 증세라며 반대하고 있다.

- 결국 중부담·중복지로 갈 수밖에 없나. “복지를 확대한다면 장애인이나 저소득층 등 이른바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집중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보편복지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에게 복지를 확대하는 건 재정이 버틸 수 없다. 중부담·중복지로 가야 한다면 성장을 통해 재원을 추가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깨는 게 필요하다. 고용불안을 해소하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요구된다.”

- 현 정부의 안보관은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정권의 안보관은 이념적 반미(反美)주의, 낭만적 자주주의, 감성적 친중(親中)주의로 규정한다. 북한에 대한 우호적 태도에 뿌리를 둔 낭만적 자주주의로 인해 현 정권 핵심 세력은 핵과 미사일 위협 앞에서도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실천배치를 막지 못한다면 우리도 핵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

- 이 책을 읽고 보수 진영 내지 야당이 함께 대응방안을 모색하기를 희망하고 있나. “정권은 전광석화처럼 행동하고 야권은 속수무책으로 있다. 야당이 무기력함을 극복하고 지리멸렬한 상태를 끝내야 한다. 당장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한다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보수가 전열을 정비해 다시 포퓰리즘에 맞설 힘을 재건해야 한다. 다만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뼈를 깎는 반성과 쇄신을 국민께 보여줘야 한다.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준비는 되어 있는지, 마부작침(磨斧作針)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5년형이 선고됐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재벌개혁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판결에 대한 법리 문제를 얘기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헌법과 양심에 따라 법관이 판결을 내릴 때 나라의 장래와 우리 공동체가 처한 현실에 대해 깊은 고민도 해야 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국민은 정권의 입맛에 부합하는 사법부를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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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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