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톈푸무역이 북한과 합작운영하는 평양고려관. ⓒphoto 바이두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톈푸무역이 북한과 합작운영하는 평양고려관. ⓒphoto 바이두

지난 8월 22일(현지시각)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관여한 10개 기관과 개인 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하고 미국의 대북(對北)제재를 무력화하려 한 혐의다. 미 재무부는 앞서 지난 6월 1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관여한 3개 기관과 개인 10명을 제재대상에 올렸다. 지난 6월 29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식 환영만찬 4시간 전, 중국의 단둥(丹東)은행 등 중국 기업 2곳과 개인 2명을 제재대상에 올렸다. 그로부터 2달이 채 안 돼 또다시 신규 제재대상을 발표한 것이다.

이번 제재대상에 포함돼 눈길을 끄는 기업은 북한의 석유와 석탄 수출입에 관여한 중국 랴오닝성 단둥 소재 ‘톈푸(天富)무역’이란 회사다. 주간조선은 지난해 10월 10일자(2427호)에서 중국 내 최대 규모의 북한 식당을 운영하는 톈푸무역이 북한의 석탄 수출에 긴밀히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단둥에 본사를 둔 훙샹(鴻祥)실업의 마샤오훙(馬曉紅) 회장이 북한에 알루미늄과 텅스텐 등 핵물자를 공급한 혐의로 미국의 첫 번째 ‘세컨더리 보이콧(제3국 제재)’ 리스트에 오른 직후였다. 첫 보도가 나온 지 1년이 안 돼 미국 재무부가 이 회사를 신규 대북 제재대상에 올리며 북한과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공식 확인해준 것이다.

미 재무부는 “북한이 연간 석탄 수출로만 벌어들이는 돈이 연간 10억달러”라며 “톈푸무역을 비롯한 ‘즈청(至誠)금속’ ‘진허우(金猴)국제’란 3개 회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명시했다. 이 중 톈푸무역과 진허우국제는 북한 내에서 광산업도 직접 운영한다고 적시했다. 톈푸무역과 즈청금속은 랴오닝성 단둥, 진허우국제는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에 본사를 둔 회사다. 2016년 11월 채택한 ‘유엔 결의안 2321호’는 북한의 석탄 수출에 상한선을 걸었고, 지난 8월 5일 채택한 ‘유엔 결의안 2371호’는 북한의 석탄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북한의 석탄 수출에 관여한 것은 유엔 결의안을 위배하는 것으로, 미 재무부 대북제재의 근거가 됐다.

톈푸무역은 연간 2억달러(약 2200억원) 규모의 북·중 간 교역을 처리해왔다. 이 회사의 ‘톈다(天達)국제화운’이라는 관계사를 통해 화물트럭 30여대로 단둥에서 신의주 간 연간 수백만t에 달하는 육운(陸運)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밖에 단둥 내항인 랑터우항(浪頭港)과 외항인 다둥항(大東港)에 사무소를 두고 북한산 석탄을 비롯해 양곡(糧穀)·강재 등 중량이 무거운 대형 화물을 취급하는 해운 서비스도 제공해왔다. 또 톈푸무역은 단둥 스웨이루(十緯路)의 본사 건물 1층에서 북한산 수출입상품 거래처를 운영해왔다.

장링 톈푸무역 회장(가운데). ⓒphoto 톈푸무역
장링 톈푸무역 회장(가운데). ⓒphoto 톈푸무역

북·중 무역의 큰손 장링 회장

톈푸무역은 북한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여러 사업을 벌여왔다. 미 재무부가 적시한 북한산 석탄 거래는 물론 북한의 묘향무역회사와 함께 단둥에서 셴샹(鮮香)복장회사라는 의류가공업체도 운영해왔다. 묘향무역회사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산하의 무역회사다. 노동당 39호실은 김정은의 통치자금 창구다. 톈푸무역은 2013년에는 “북한 조선강성(强盛)무역과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강성무역은 2001년 북한 인민무력부 산하 13개 회사를 통합해 출범한 외화벌이 업체다.

이번 제재조치로 북·중 간 무역의 큰손으로 군림해온 톈푸무역의 여회장 장링(張玲) 회장도 운신의 폭이 좁아지게 됐다. 장링 회장은 북한 ‘고난의 행군’ 직후인 2001년 단둥에서 톈푸무역을 세웠다. ‘고난의 행군’(1995~1998) 여파로 북한에서 중국산 물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것을 호기로, 일약 거물급 북·중 무역상으로 성장한 여걸(女傑)이다. 지난해 미국의 제재대상에 오른 뒤 행적이 묘연한 훙샹실업의 마샤오훙 회장과 함께 중국의 무역협회에 해당하는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CPIT) 단둥시 부회장을 비롯해 랴오닝성 대외무역기업협회, 심지어 랴오닝성 한·중(韓中)우호협회 이사직에도 동시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북한 최고 명문대인 김일성종합대학교 기금위원회에 따르면, 장링 회장은 2015년 11월 학교발전기금 2만위안을 납부하기도 했다. 비록 이번 제재대상에서는 법인만 이름을 올렸지만, 언제든지 개인 제재대상에 추가될 수도 있다.

톈푸무역을 비롯한 단둥 소재 기업들이 대거 미 재무부의 신규 제재대상에 오르면서 단둥의 북·중 무역상들도 당분간 숨을 죽일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미 재무부 제재대상에 오른 단둥 소재 기업은 톈푸무역을 비롯해 푸디(富地)무역, 즈청금속 등 세 곳에 달한다. 이 중 푸디무역은 북한 조선금산(金山)무역과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바나듐광’을 직접 거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선금산무역은 조선원자력총국에 핵물자를 조달하는 군수무역업체다. 조선원자력총국은 2009년 유엔 안보리 제재대상에, 금산무역과 이 회사 대표 김철남은 지난 6월 유럽연합(EU)의 독자 제재대상에 각각 오른 바 있다. 즈청금속은 회사는 물론 실소유주이자 대표인 츠위펑(遲玉鵬)도 개인 제재대상에 등재됐다. 즈청금속의 츠위펑 대표는 대북제재로 운신의 폭이 좁은 북한을 대신해 그간 물자구매와 외화송금 등의 편의를 봐준 혐의를 받고 있다.

단둥에 있는 중국 최대 규모의 북한 식당 ‘평양고려관’도 된서리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평양고려관은 톈푸무역이 2012년부터 평양 고려호텔을 운영하는 ‘조선고려총국’과 합작투자해 운영해온 연면적 8000㎡에 달하는 대형 북한 식당이다. 베이징 최대 북한 식당인 대동강회관(2000㎡)보다도 4배가량 크다. 단둥의 평양고려관은 6·25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진 단둥 최대 관광명소 ‘압록강단교(斷橋)’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어 한국인 관광객과 사업가들도 많이 찾았다. 북한의 단둥 공작거점인 주중 북한선양총영사관 산하 단둥영사지부도 이곳에서 멀지 않다. 북·중 교역 최대 창구 단둥에 때이른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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