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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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한반도 긴장이 계속되면서 핵보유국 북한에 맞서 국내에도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박휘락(61)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대표적인 전술핵 재배치론자다. 육사 34기로 육군 대령 출신인 박 원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국방부에서 대북정책과장을 지냈다.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핵전략 전문가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방안 및 군사 전략에 대한 책을 여러 권 냈고 핵전략 관련 논문도 매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국방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2009년 3월 전역했다. 현재는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으로 군 간부를 대상으로 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9월 25일 서울 성북구 국민대 본관 정치대학원장실에서 박 원장을 만났다. 다음은 50여분 가진 인터뷰의 일문일답이다.

- 핵전략 분야의 전문가로서 현 안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나. “심각하다. 현재 상태로 가면 적화통일이 되지 않을까 한다.”

- 무슨 의미인가. “북한은 핵이 있고 우린 핵이 없으니 방법이 있겠나. 지금은 미국하고 북한이 저러고 있지만, ‘극적인 타협’이 이뤄져 미국이 한반도에서 떠나면 어떻게 되겠나.”

- 미국이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북한이 수소폭탄과 ICBM을 가진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미 본토를 쏘겠다’고 하면 미국은 견딜 수가 없다. 왜 미국이 한국을 위해 핵폭탄을 본토에 맞는 위협을 감수하겠나. 김정은이 대화 카드를 내밀면 미국이 바로 쫓아갈 것이다. 타협의 종착역은 결국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파기, 그리고 북한은 한국을 침범하지 않고, 미국도 공격하지 않는다는 조건일 것이다. 1973년 월맹(베트남)이 미국에 한 것과 같은 수법이다.”

- 북한이 핵을 없앤다고 하고 한국을 공격할 핵은 유지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남한은 핵무기만 있으면 제압 가능하니까.”

- 그렇게까지 되겠나. “바로 그게 문제지. ‘그렇게까지 될까요.’ 그게 문제라는 거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대비해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에는 역사적 뿌리가 있다.”

- 어떤 역사적 뿌리인가. “임진왜란 이전 황윤길과 김성일이 일본에 1년 동안 체류하면서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봤다. 잘못은 일본이 쳐들어오지 않을 거라 말한 김성일이 아니다.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은 조정 대신들이 잘못이다. 6·25 때는 어땠나. 국방장관은 북한이 못 쳐들어온다면서 쳐들어오기만 하면 바로 평양에서 점심 먹고 신의주까지 올라간다고 했다. 다들 그 말만 믿고 싶어했던 거지. 그게 문제다. 우리 핏줄에 맥맥이 서린 안보 불감증. 지금 우리 국민들도 막연히 불안해하긴 한다. 그러나 북한이 쳐들어와 적화통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얼마 없다.”

- 우리가 의도적으로 현실을 회피하려는 것이란 뜻인가. “그러니까 자꾸 ‘팀스피릿’ 훈련만 안 했으면 핵실험을 안 했겠네, 9·9절이니까 재미로 쐈네, 3·10절 맞아서 쏴봤겠네, 하는 거다. 지금까지 북한은 자기 나름대로의 스케줄을 짜서 핵실험을 한 거다. 우리가 날짜 맞힌 게 지난 9·9절밖에 없다. 우리만 자꾸 북한의 핵실험을 어떤 이벤트에 맞춰서 보려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3년 주기로 실험한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기가 차서 정말.”

- 최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주한미군의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기 위해 미국을 찾았다. 핵전략 전문가로서 어떻게 보나. “병에 비유해 보면, 처음에 조금 아플 땐 약 하나 지으면 낫고, 조금 심하면 주사 맞으면 낫지만 심해지면 수술을 해야 한다. 병이 심화됨에 따라 동원해야 하는 수단은 점점 늘어난다. 마찬가지로 북한 핵 문제가 점점 위기가 될수록 우린 더 많은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핵은 핵으로밖에 막을 수가 없다.”

- 국방부의 계획인 대량응징보복(KMPR·핵 사용 시 적 지휘부 타격 계획)은 어떻게 보나. “기가 차는 얘기다. 세계 어느 나라도 타국의 핵에 대해서 재래식 무기로 응징보복한다는 나라가 없다. 우리만 유일하게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거다. 비유하자면 핵이란 건 총인데, 총 맞는 데 대항해 주먹으로 더 센 보복을 하겠다는 얘기다. 이게 말이 되나.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Hans J. Morgenthau)의 유명한 말도 있지 않나. 핵 보유국에 대해 비핵국이 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길이 전부라고. 완전히 굴복하든지, 아니면 핵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든지.”

-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얘긴가. “북한이 핵을 저렇게 쏘고 있는데 우리가 막을 수 있겠나. 미국이 재배치해준다고 하면 문제가 없다. 근데 미국이 자기 일처럼 해줄 수 있겠나. 미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략핵에 비해 전술핵은 작다는 것도 장점이다. 전략핵무기는 사용했을 때 닥칠 영향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전술핵은 가능하다.”

- 늘 나오는 얘기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이나 주변국 반발이 문제되지 않겠나. “늘 나오는 얘긴데, 늘 나오는 얘기 하는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논문이나 글 읽어 보고 하는 얘긴지 의심스럽다. 누가 전술핵 분야를 공부했나. NPT는 말이 안 된다. 미국이 소유권을 가지는 미국 핵이니 NPT 위배가 아니다.”

- 한반도비핵화선언도 걸림돌 아닌가. “그건 우리가 일방적으로 한 거니까 깨면 된다. 어차피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전술핵 재배치 반대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얘기 말고. 핵이 있으면 쏜다고 가정했을 때 우릴 지킬 수 있는 다른 방도가 뭐가 있나. 외교적 방법? 여태까지 해서 안 되지 않았나. 서로 싸우다 한쪽이 총 들고 덤비는 상황인데 무슨 말을 하자는 건가.”

- 현실적으로 재배치가 가능한가. “그래서 전술핵무기 배치는 미국이 해줄지가 가장 문제다. 배치를 하도록 끈질기게 요구해야 한다. 유럽엔 전술핵을 배치하고 우리한텐 왜 안 하느냐는 식으로 말이다. 반대론자들은 말한다. ‘에이, 미국이 배치하겠습니까?’ 그럼 묻고 싶다. 요구는 해봤나. 미국이 지금까지 세 번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닉슨 때, 카터 때, 그리고 아버지 부시 때. 아버지 부시 때는 법으로도 만들었다. 그 세 번 할 때마다 우리가 가서 철수 안 된다고 주장한 거다. 미국은 큰 나라이므로 작은 나라가 와서 끈질기게 요구하면 웬만하면 들어주게 돼 있다. 자꾸 자기가 미국 같은 큰 나라를 손바닥 보듯 다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이 그렇게 똑똑하면 북한 문제 해결해 보라고.”

대화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박 원장은 조그마한 책자를 하나 건넸다. 2015년 펴낸 ‘핵전쟁에서도 살아야 한다. 생존상식 10단계’였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지하주차장을 공동대피소로 삼고, 단독주택 등에 산다면 지하실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등의 ‘핵전쟁 시 행동요령’이 담긴 책자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건물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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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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