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과 통합을 추진해온 김무성 의원(왼쪽)과 주호영 원내대표 사이에서 ‘자강론자’인 유승민 의원이 물을 마시고 있다.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과 통합을 추진해온 김무성 의원(왼쪽)과 주호영 원내대표 사이에서 ‘자강론자’인 유승민 의원이 물을 마시고 있다. ⓒphoto 뉴시스

“바른정당을 출발한 보수통합 열차의 현재 탑승인원은 9명, ‘데드라인’은 10월 28일이다.”

자유한국당과의 합당을 추진해온 바른정당 내 통합파가 집단탈당을 예고하며 신(新)보수를 표방해온 당내 자강파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김무성·주호영·김영우·김용태·황영철·이종구·정양석·홍철호 의원 등 바른정당 내 통합파 국회의원들은 한국당과의 ‘당 대 당’ 통합이 최종 불발될 경우 오는 10월 28일 이전 집단행동을 감행할 것으로 점쳐진다. 통합파가 언급한 ‘데드라인’은 바른정당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 등록일에 맞추어져 있다.

지난 10월 10일 한국당 홍문표 사무총장을 만난 바른정당 한 중진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추석 연휴를 거치며 확인한 결과 적어도 9명의 국회의원이 통합열차에 합류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양당이 조건 없이 통합에 나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홍문표 사무총장은 한국당 내에서 바른정당 등과의 보수대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10월 11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바른정당뿐만 아니라 늘푸른한국당까지 포함하는 보수대통합에 나서라는 요구가 많았다. 홍문표 사무총장이 바른정당 전당대회 전에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보수대통합을 공식적으로 추진해달라”고 주문했다.

바른정당의 선택지는 두 가지로 좁혀졌다. 자유한국당과의 당 대 당 통합이냐, 아니면 통합을 추진해온 당내 절반가량의 국회의원이 탈당 후 한국당에 합류하느냐다. 이를 두고 ‘데드라인’까지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 통합파는 그동안 한국당과의 당 대 당 통합을 성사시키는 데 주력해왔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도 “당 대 당 통합은 없다”던 기존 입장을 버리고 조건 없는 통합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문제는 바른정당 자강파의 핵심인 유승민 의원이 “한국당과의 통합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 의원은 지난 10월 9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1월 13일 전당대회는 일부 의원의 이탈이 있더라도 반드시 치러져야 한다”면서 “아직은 한국당과의 통합 명분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자강파 유승민이 버티는 이유

유 의원의 자강론에 동의하는 당내 의원은 김세연·이혜훈·하태경·박인숙·지상욱 의원 등 10여명 안팎이다. 유 의원은 최근 통합파 소속 국회의원들과 잇따라 접촉했으나 이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유 의원은 지난 9월 29일 “위기에 처한 당을 살리겠다”면서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11월 13일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돼 바른정당이 추구해온 새로운 보수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지난 5·9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5개월도 지나지 않아 당권에 도전하는 게 과연 적절하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당내 일각에서는 “한국당과 통합할 경우 비주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보수대통합의 흐름을 막고 있는 게 아니냐”는 뒷말도 나온다.

바른정당 통합파가 당내 자강파를 끝내 설득하지 못할 경우 바른정당은 쪼개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 1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로 인해 태동한 바른정당이 창당 9개월 만에 존립의 기로에 선 셈이다.

최근 유 의원을 만난 3선의 한 국회의원은 “유 의원과 1시간을 만났는데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면서 “이제 와서 통합 명분이 없다거나 한국당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통합하지 않겠다는 얘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대로 10여명의 통합파가 바른정당 탈당을 감행한다면 바른정당은 원내교섭단체의 지위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전당대회도 성사되기 힘든 상황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김무성 의원 등 통합파 인사들이 당내 최대지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탈당할 경우 전국단위 행사인 전당대회 개최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통합파는 그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출당조치와 친박 핵심인사에 대한 징계를 한국당과의 합당 명분으로 내세워왔다. 한국당은 최근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 친박계 핵심 인사에 대해 자진탈당을 권유한 상태다. 한국당 혁신위원회(류석춘 위원장)는 지난 9월 13일 친박 청산이 담긴 혁신안을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 박 전 대통령 등이 자진 탈당을 거부할 경우 한국당은 제명 등의 강경조치를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파 핵심인사인 김무성 의원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출당조치는 통합의 명분이 된다. 친박 청산도 어느 정도 수용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당과 바른정당 통합 추진 세력은 지난 10월 12일 2차 통합추진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통합 움직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바른정당 친유승민계 의원 주변에서조차 “전당대회는 물 건너 간 게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유 의원은 이혜훈 대표가 지난 9월 초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져 사퇴한 직후 당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져가고자 했으나 불발된 바 있다. 유 의원 본인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을 이끌어가고 싶었지만 당헌 의결기구 등 당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통합파의 반대로 물거품이 됐다.

바른정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의 말이다. “유승민 의원이 당을 주도할 힘이 있었다면 지난번에 자기 뜻대로 비대위원장을 꿰찼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당은 통합파 세력의 힘이 더 세다. 바닥 민심도 보수통합을 바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은 우선 집권여당을 견제할 동력이 커진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의 이해에 부합한다. 보수대통합이 성공할 경우 보수야당은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제치고 원내 1당이 된다. 이를 딛고 참패(慘敗)가 예상됐던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에서 보수재결집이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70%의 국정운영 지지도를 바탕으로 독주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동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경기도와 제주도 등 야당 소속 광역단체장이 선전한다면 정권심판론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홍준표 대표 입장에서도 보수 분열에 종지부를 찍고 지방선거에서 선전할 수 있다면 보수통합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김무성 의원 등 통합파는 통합 이후 당내 주류세력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양당제로 회귀하나

보수진영 전략가로 알려진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보수 진영은 여당의 독주에 속수무책이다.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며 일종의 ‘다수의 전제 정치’을 펴는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려면 더 이상 보수통합을 늦출 수 없다. 선거 전략상 총선과 차기 대선을 위한 전초기지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내년 지방선거 결과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어떤 식으로든 다시 뭉친다면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지방선거 전에 연합정부 수준의 변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보수통합으로 촉발될 정치적 지각변동이 궁극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양당제 구도로 재편될지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양당제로의 회귀는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 선거제도를 개편하려는 개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을 바라보는 정치권 안팎의 시선이 복잡하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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