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5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홍준표 대표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640만달러 뇌물사건 재수사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25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홍준표 대표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640만달러 뇌물사건 재수사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자유한국당 정치보복대책특별위원회가 지난 10월 15일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달러 수수 의혹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장남 노건호씨 등 5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전 정권은 물론 전전(前前) 정권까지 겨냥한 현 정부의 이른바 ‘적폐청산’에 대한 대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선 패배 이후 현 정부의 강공(强攻)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던 보수진영이 역량을 총동원해 반격에 나선 모양새다.

정치보복대책특위가 첫 타깃으로 삼은 노 전 대통령 일가 640만달러 의혹은 2009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정·관계 로비’ 수사 과정에서 나온 얘기다. 한국당은 “이들은 노 전 대통령과 공모해 박 회장으로부터 2007년 7월에서 2008년 2월까지 3차례에 걸쳐 640만달러 규모의 뇌물을 수수했고, 박 회장은 이 뇌물을 공여했다”며 “640만달러를 주고받은 것은 지난 검찰 수사에서 적시된 팩트”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지만, 뇌물수수 사실은 검찰이 수사를 통해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시인한 사안”이라며 “재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당은 “아직까지 청산되지 못한 원조 적폐를 청산하는 차원에서 이 사건이 갖는 상징성은 대단히 크다”며 “권력의 정점에 섰던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음습한 뇌물 공모 혐의에 대한 규명과 단죄, 환수 없이 적폐청산은 공허한 말장난이고 정치보복일 뿐”이라고 했다.

정치보복특위는 그러면서 이 사건을 노 전 대통령 유족으로부터 고소당한 정진석 의원의 사자(死者) 명예훼손 사건과 병행 심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정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와 아들이 박연차씨로부터 수백만달러의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 싸움 끝에 권씨는 가출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표현해 유족들로부터 고소당한 상태다.

의원 29명 동원… 2개의 특위로 역공

현 정권의 적폐청산에 맞서 한국당은 최근 두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노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달러 수수 의혹을 검찰에 고발한 정치보복특위와 신적폐저지특별위원회다. 김성태 의원이 위원장인 정치보복특위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원조 적폐’를 주로 다루는 곳이라면, 김광림 의원이 위원장인 신적폐특위는 문재인 정부에서 새로 발생하는 ‘신적폐’를 다루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국당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담당을 나눠놓은 모양새지만, 실제 활동은 두 특위에서 영역을 가리지 않고 할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형태의 두 특위가 전·현 정권의 의혹을 저인망식으로 캐내겠다는 의도다. 정치보복특위에는 16명, 신적폐특위에는 13명이 참석해 29명의 한국당 의원이 투입됐다. 전체 소속 의원의 30%가량으로 사실상 총력전인 셈이다. 특히 정치보복특위는 검찰 출신의 곽상도·김도읍·주광덕 의원과 법원 출신의 여상규 의원, 경찰 출신 김한표·이철규 의원, 국가정보원 출신의 이철우 의원까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정(司正)에는 사정으로 맞대응하겠다는 의지로, 당의 가용 자원이 총동원됐다.

정치보복특위 대변인인 장제원 의원은 “특위가 출범(11일)한 지 갓 일주일이 됐지만 이미 7개 정도의 중점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고발로 시작된 공세는 청와대의 잇따른 전 정권 문서 공개에 대한 법적 대응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장 의원은 “최근 이른바 ‘청와대 발견 문서’에 대해서 취득의 적법성과 진위 여부를 따질 것”이라며 “또 그 문서 관련 브리핑을 한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을 지난 7월 검찰에 고발해놨는데 피고발인 조사도 안 하고 3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 또한 적극 거론하겠다”고 했다.

지난 10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정책위회의실에서 열린 신적폐 저지특별위원회 회의.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정책위회의실에서 열린 신적폐 저지특별위원회 회의. ⓒphoto 뉴시스

적폐위원회 적법성 여부도 따진다

최근 청와대 지시로 각 부처에 만들어지고 있는 ‘적폐청산위원회’의 적법성 여부도 정치보복특위의 의제다. 정치보복특위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위원회’를 법적 근거 없이 만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제기된 ‘바다이야기’ 등 각종 의혹에 대해서도 재조사를 촉구하는 등 추가 대응을 준비 중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법적 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말로만 떠들지 않겠다”고 했다. 홍준표 대표의 한 측근은 “검찰이 저쪽 편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법적 조치에 나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며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했다.

신적폐특위도 각 부처 적폐청산위원회의 적법성 문제를 주로 공략할 예정이다. 김광림 의원은 “총리가 이런 조직을 만들라고 했으면 몰라도, 청와대 하명식으로 절차도 없이 이런 조직을 만들라고 한 것 자체가 전례 없던 일”이라고 했다. 신적폐특위는 현 정권의 경제, 노동, 복지 등 모든 정책적 차원의 문제를 국회 내 상임위 활동 등을 통해 공격할 계획이다. 탈원전 문제, 공무원 증원,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을 지속적으로 다룬다는 전략이다. 신적폐특위 관계자는 “현 정권이 지금 적폐청산이라는 명분하에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사실상의 정치보복”이라며 “전력을 다해 막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두 특위 활동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발언을 통해 여론에 호소하는 것 말고는 실질적으로 현 정권의 정치보복을 막을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보복특위에서 검찰에 고소·고발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지만 검찰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실제로 검찰은 일부 시민단체가 노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달러 의혹을 고발했지만 ‘각하’시킨 바 있다. 야권 관계자는 “사실상 떠드는 것 말고는 무슨 실효성이 있겠나”라며 “그래도 이런 활동들이 누적되고 기록돼 언젠가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여론이 현 정권에 호의적인 상황에서 시기적으로 섣불렀다는 의견도 있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아직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현 정부가 하는 일이 정말 문제라는 공감대가 없다”며 “무르익지 않았는데 너무 빨리 포문을 열었다”고 했다. 현 정부의 적폐청산을 명분 삼은 정치보복이 전방위적이어서 이를 모두 맞대응하기엔 역량이 못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야권 관계자는 “결국 칼자루를 쥔 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현 정권”이라며 “단순히 상대를 위협만 하는 ‘나무칼’로 뭔가를 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해야 공격의 강도가 약해지고, 이명박·박근혜를 향한 공격도 완충하는 효과가 있다”며 “현 정권은 국민들이 질리기 전에, 올해 안에 적폐청산이라는 것을 결론 내려 하고 있고, 우리도 이 때문에 급히 특위를 출범한 것”이라고 했다. 올해 안에 벌어질 정치보복의 칼날을 일종의 ‘물타기’로 약화시키겠다는 뜻이다. 정치보복특위 위원장 김성태 의원은 “무능한 권력이 칼춤만 추는 상황을 당장에라도 멈추도록 하겠다”고 했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보복’ 법정 발언도 현 정권의 ‘적폐청산’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16일 서울중앙지법 심리로 열린 80번째 공판에서 자신의 구속 기간 연장에 대해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며 “모든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다”고 선언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이 6개월간 수사하고 법원은 6개월간 재판했는데, 다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저로 인해 법정(法廷)에 선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에게는 관용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해외 법정대리인을 내세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옥중(獄中)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홍준표 대표는 “정치보복 재판이란 입장에 공감한다”며 “정치적 책임을 지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출당 작업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일부 보수층의 동정 여론을 좌시하지 않으면서, 당을 뭉치게 하는 추동력을 얻겠다는 취지다. 한국당은 당론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연장을 반대해왔다. 한국당 고위관계자는 “현 정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는데, 이 전 대통령을 지우면 다음은 박정희 대통령 지우기에 나설 것”이라며 “혁명군이 완장을 차고 인민재판을 하는 그런 형태로 정국을 운영하려고 하는데 그게 과연 계속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최근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필로 쓴 충남 아산 현충사의 현관과 관련해 “이런 것이 적폐”라며 교체를 요구했다. 안 의원은 김종진 문화재청장이 “나름의 의미가 있어서”라고 답하자 “문화계 적폐를 청산하라고 (문재인 정부가) 청장을 만들어 드린 것이 아니겠느냐. 조선시대 임금 숙종이 직접 사액한 현판이 여기 현충사 본전에 걸려야 한다”고 했다.

양승식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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