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9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바른정당 탈당파 재입당 국회의원 간담회. 홍준표 대표(왼쪽)가 재입당한 김무성 의원 옆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9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바른정당 탈당파 재입당 국회의원 간담회. 홍준표 대표(왼쪽)가 재입당한 김무성 의원 옆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photo 뉴시스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에 복당한 의원들의 공식 입당식이 열렸던 지난 11월 9일, 서울 여의도의 자유한국당 당사 회의실. 당초 입당식이 예정됐던 오전 10시30분이 지났지만, 홍준표 대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홍 대표가 입당식에 나타난 건 15분이 지난 10시45분이었다. 입당식에 지각한 홍 대표의 첫마디는 “와 자리를 바꿔놨노. 내 자리가 연데(여긴데)…”였다. 평소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에 복당한 김무성 의원이 앉아 있자 한 얘기다. 홍 대표는 이렇게 말한 뒤 김 의원의 옆자리에 앉았다. 한국당 관계자는 “복당 신청자가 많다 보니 심의가 늦어져서 회의 참석이 늦어진 것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홍준표 대표와 김무성 의원의 미묘한 관계가 드러났던 재회 장면”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사카모토 료마가 앙숙들 힘 모았듯 총결집”

복당파와의 재회엔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지만, 이후 한국당의 분위기는 대체로 화기애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을 계기로 홍 대표와 친박(親朴)계의 갈등이 격화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큰 충돌은 없었다. 친박계가 김무성 의원 등의 복당에 반발해 소집을 요구했던 지난 11월 13일 의원총회에서도 돌출된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이날 의총은 복당 의원들을 환영하는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홍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정부 여당이 망나니 칼춤 추듯 보수우파 진영을 궤멸시키려 하는데, 우리가 한마음이 돼서 대응해야 할 때”라며 “여기서 적전분열(敵前分裂)하면 더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탈당했다 돌아온 분들에 대해 정치적 앙금이 있을 것으로 보지만, 앙금을 풀어주는 ‘사내다움’을 꼭 보여달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 출당에 반대했고, 홍 대표와 각종 사안에 이견을 보여왔던 정우택 원내대표도 복당 의원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의원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이어진 비공개 의총에서 “민주적 절차로 복당을 시켜야 했다”는 일부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한 친박계 의원은 “복당이 기정사실화돼 어쩔 수 없으니 강하게 비판하는 의원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홍 대표는 이와 같은 여세를 몰아 현 여권(與圈)의 ‘적폐 청산’ 드라이브에 맞서 “구(舊) 여권이 총결집해 맞서 싸우자”고 했다.

현재 한국당은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복당으로 크게 3개의 계파인 친홍(親洪)계와 친박, 김무성계가 형성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홍 대표는 문재인 정부라는 큰 적에 맞서 화학적 결합을 통해 현 국면을 뚫고 나가자고 했다. 홍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부 정비부터 하고 단합된 힘으로 대여 투쟁에 나서야 한다면 기꺼이 그 길을 통해 내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홍 대표는 “막부 체제를 종식시키고 대정봉환(大政奉還·1867년 도쿠가와 막부가 일왕에게 통치권을 돌려준 사건)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도 있는데, 나는 23년을 정치하고도 아직도 좌우 대결의 한 축에 서서 갈 길을 헤매고 있다”고도 했다. 사카모토가 앙숙처럼 대립했던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長州藩) 동맹을 이끌어낸 것처럼 구여권 세력의 결집을 통해 현 여권에 대항하겠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이에 더해 “당에 계파는 없어졌다”고 선언했다. 그는 “더 이상 계파 활동을 하면 당원과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정치 활동 23년 동안 반대당과 정치 투쟁의 선봉에 서서 온갖 상처를 입으면서 커온 사람으로, 단 한 번도 당내 투쟁이나 분란에 가담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최근 복당파의 합류로 당내 김무성계의 덩치가 커진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자 “김무성계가 누가 있나, 새누리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했던 김학용 의원 정도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홍 대표의 ‘탈계파’ 선언이 당내 화학적 결합으로 실현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회의론이 나왔다. 당장 홍 대표는 “김무성계는 없다”고 했지만, 정작 김 의원과 가까운 의원들은 “우리의 관계는 끈끈하다”고 하고 있다. 현재 당내 인사들의 계파색이 옅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 관계자들은 대체로 김무성계로 분류될 수 있는 의원이 20~30명, 여전히 친박 색채가 강한 의원이 20명 안팎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무성계 의원들은 바른정당 분당 사태로 계파가 한국당과 바른정당에 나뉘어 있을 때도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져왔다. 김 의원이 바른정당 소속이었던 지난 9월, 생일 만찬에 김성태·김학용 의원 등 당시 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참석한 게 대표적인 예다. 당장 김 의원 측은 오는 9월 21일 한·미 FTA 5주년 관련 세미나 개최를 예고했다. 이날 세미나를 김무성계 의원들이 대거 참석하는 장(場)으로 만들어 세(勢)를 과시하겠다는 의도다.

김무성계의 결집과 침묵하는 친박계

여기에 당내 최대 계파였던 친박계의 동향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당 관계자는 “현재 침묵하는 의원들 중 상당수는 친박 몫 공천을 받은 사람”이라며 “이들이 모두 홍 대표의 당 운영에 동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당내 다수를 차지하는 70여명의 초·재선 의원들 상당수는 아직 특별한 선호를 표출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당내 이질성이 오는 12월로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에서 분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현재 나경원·유기준·조경태·한선교·홍문종 의원(이상 4선)과 김성태 의원(3선)이 출마를 준비 중이다. 이 중 김성태 의원은 김무성 의원의 측근이면서도 홍 대표 체제에서 정치보복대책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고, 유기준·홍문종 의원은 친박계다. 홍 대표와 김 의원의 연합 전선과 친박계가 원내대표 선거에서 첫 번째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당 관계자는 “적어도 원내대표 선거까지 홍 대표와 김 의원은 한 배에 탈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지방선거 이후다. 당 안팎에서는 “김 의원이 결국 홍 대표와 함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지방선거 전까지는 그 갈등이 드러나지 않겠지만, 지방선거 이후엔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는 얘기가 많다.

홍 대표와 김 의원은 모두 김영삼 전 대통령(YS) 시절인 1996년 15대 총선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동기이지만, 정치적으로 부딪친 적은 거의 없었다. 김 의원의 한 측근은 “둘이 공교롭게도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겹치는 순간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충돌이 없었다고 둘의 성향이 비슷했다는 건 아니다. 한국당 관계자는 “김 의원은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고, 복당했지만 어쨌든 바른정당에서 개혁보수의 깃발을 들었던 사람이고, 홍 대표는 류석춘 혁신위를 내세워 ‘우파 가치 정립’에 앞장섰던 사람”이라며 “결국은 서로 갈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의 홍 대표와 김 의원의 연합은 문재인 정부라는 공통의 적 때문에 결성된 시한부 동맹이며, 두 사람의 관계는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홍 대표가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며 김 의원이 비대위원장직을 맡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홍 대표 측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패배하면 홍 대표는 물론이고, 한 배를 탔던 김 의원도 당연히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며 “김 의원 비대위원장설은 한 치 앞을 모르는 이야기”라고 했다.

양승식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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