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23일 청와대에서 민주당 원내지도부와 오찬을 했다. (우) 홍준표 대표가 지난 1월 12일 창원서 열린 자유한국당 경남도당 신년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23일 청와대에서 민주당 원내지도부와 오찬을 했다. (우) 홍준표 대표가 지난 1월 12일 창원서 열린 자유한국당 경남도당 신년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23일 “경남 동부 쪽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져 지방선거를 앞둔 부산경남(PK) 지역에 파장이 일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우원식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겸한 간담회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경남의 정치 동향을 거론한 민주당 일부 의원의 발언에 이렇게 화답했다. ‘동부’ 경남에 지역구를 둔 김경수(김해을)·서형수(양산을) 의원과 지난 1월 18일 경남 사천·남해·하동 지역위원장에 임명된 제윤경 의원(비례대표) 등이 이날 오찬 참석자 명단에 올랐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PK지역이 오는 6월 13일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최대 격전지로 부상한 까닭에 더 주목받았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경우 홍준표 대표가 직전 경남지사를 맡았던 경남도를 반드시 수성해야 할 입장이다. 홍 대표가 경남을 지키지 못한다면 대표직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경남지사 후보로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 격인 김경수 의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까지 보태지면서 이번 경남지사 선거가 자칫 ‘문재인 대 홍준표’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러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경남지사와 인근 부산시장 선거는 여야 모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대결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경남지사는 문재인 대 홍준표 대리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는 바람에 도지사 공백 상태에 놓인 경남도는 역대 지방선거에서 줄곧 보수정당, 즉 지금의 한국당이 우세했던 지역이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 이래로 무소속 김두관 경남지사(재임기간 2010~2012년)가 당선됐던 때를 제외하면 모두 보수당 후보가 승리했던 곳이다.

현재 경남지사 출마를 선언한 인사 가운데 가장 앞서가는 인물은 민주당 소속 공민배 전 창원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맞설 당내 중량급 인사로는 민홍철 의원(김해갑)과 권민호 거제시장 등이 거론된다. 지난해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권 시장은 최근 민주당에 입당했다. 김경수 의원은 한국당에서 경쟁력 있는 경남지사 후보를 내보낼 경우 민주당 후보로 차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의원은 최근 실시한 경남지사 다자대결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당에서는 윤한홍 의원(창원 마산회원구)을 비롯 안홍준·김영선 전 의원, 강민국 도의원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윤한홍 의원은 홍준표 대표의 최측근 인사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와 하영제 전 농림수산식품부 차관도 최근 후보군에 가세했다. 당내에서 가장 경쟁력 있다는 평가를 받은 박완수 의원(창원 의창구)은 최근 불출마 선언에도 불구하고 차출 가능성이 남아 있다. 양당 경남지사 후보로, 민주당 김경수 의원과 한국당 박완수 의원이 주목받는 것은 양측 모두 최상의 카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경남지사 출마에 관한 의사 표명을 뒤로 미뤄둔 상태다.

연초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경남지사 선거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경남과 대구·경북에서 보수층 결집이 두드러지면서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 하락 폭이 커졌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한 이유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대한 정책혼선,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 부동산 양극화 문제,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 등이 손꼽힌다.

경남지역에서 민주당 지지율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드러내지 않던 보수진영이 꿈틀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월 26일 발표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부산·경남·울산 지역의 민주당 지지율은 46%, 한국당은 24%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율은 최근 50% 선이 무너졌고 한국당은 20%대 중반까지 올랐다.

경남지역을 동부·중부·서부 등 권역별로 나눠 보면 동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보수층 결집이 재연되고 있다고 한다. 경남 동부를 대표하는 김해시와 양산시 지역은 민주당세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김해는 시장(허성곤)과 두 명의 국회의원이 모두 민주당이다. 양산은 두 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한 명만 민주당이지만 부산과 인접한 공단지역 특성이 반영돼 민주당 지지세가 한국당보다 높게 나타난다. 양산에는 문 대통령의 자택이 있다. 김해(53만명)와 양산(33만명)의 인구를 합치면 90만명에 육박한다.

경남 중부로 오면 양상이 조금 바뀐다. 경남 중부에는 창원·거제·통영·밀양·고성·창녕·함안·의령 등이 포함된다. 마산과 창원 그리고 진해가 합쳐진 통합 창원시의 경우 민주당 지지세가 조금 높게 나타나지만 나머지 시군에서는 한국당을 선호하는 기류가 여전히 강하다. 대우조선 등 대형 조선소가 있는 거제의 경우 창원과 마찬가지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경향도 상당하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성산구)의 지역구 역시 창원시에 있다.

경남 서부는 아직까지 한국당의 텃밭이라 할 만한 지역이다. 남해·하동·사천·거창·함양·산청·합천 등 주로 규모가 작은 시군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지난해 5월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36.7%)가 홍준표 후보(37.2%)에 0.5% 포인트 차로 경남에서 패배한 것도 중서부 경남의 보수표 때문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직후 치러진 선거에서 경남 유권자들이 문재인 후보 대신 홍준표 후보를 선택했다는 건 이 지역 유권자 가운데 보수층이 얼마다 두꺼운지 알 수 있다. 올해 지방선거도 당초 민주당 압승이 예상됐던 분위기와 달리 보수당이 승리했던 과거 선거공식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각 당의 후보 선출이 4월 말 매듭지어질 것이라고 보면 후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100일가량이다. 후보들 간 기싸움도 점차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지난 1월 26일 창원에서 출판기념회를 연 공민배 전 시장은 행사에 앞서 김경수 의원에게 “불출마 선언을 해줄 수 있느냐”는 의사타진을 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공 전 시장은 문 대통령의 경남고-경희대 1년 후배다. 문 대통령이 군(軍)입대 전날 공 시장의 집에서 묵었을 정도로 두 사람은 가깝다. 대학 재학 시절에는 같은 하숙집에 살았다. 이런 인연을 잘 알고 있음에도 김 의원이 선뜻 공 전 시장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은 끝까지 경남지사 출마카드를 쥐고 있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공 전 시장이 지역에서 열심히 뛰고 있음에도 지지도가 야당 후보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어 중앙당 차원에서 김 의원 카드를 살려놓을 필요성도 제기된다.

박완수 의원이 경남지사 불출마 의향을 밝히게 된 배경도 본인 의지와 크게 관련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월 12일 자유한국당 경남도당 신년회에 앞서 홍준표 대표는 박완수 의원 등 10여명의 지역 정치인과 오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홍 대표는 박 의원에게 “경남지사 경쟁력이 있으니 열심히 뛰어보시라”라고 말했고 당황한 박 의원은 “아직 뜻이 없다”며 점잖게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나 식사가 끝나고 난 직후 박 의원 측에 전화가 쇄도했다. “그런 말을 한 게 사실이냐” “불출마 선언으로 봐도 되느냐”는 언론의 문의였다. 박 의원 측 관계자의 말이다. “홍 대표가 긴밀히 논의해야 할 출마 문제를 10여명의 지역 정치인이 있는 자리에서 꺼냈고 박 의원은 점잖게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아직 선거일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고 상대당도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유보적 답변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분들을 통해 두 사람의 대화가 외부로 알려졌고 일단 불출마 의향을 밝힌 것으로 매듭지었다.”

그럼에도 한국당 일각에서는 민주당 공민배 전 시장을 이길 후보가 마땅치 않을 경우 박 의원이 출마해야 한다는 기류가 여전하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경남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가장 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내야 한다. 만약 박 의원이 차출된다면 민주당도 결국 김경수 의원을 내보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기에 달아올랐다 식은 선거전

1월 말 현재 부산시장 선거 판세는 여당인 민주당이 다소 유리한 구도다. 여야 양자 대결을 가상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당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이 한국당 소속의 현역 서병수 시장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여당 후보로는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등이 거론된다. 지난해 12월 28일 국제신문이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양자 가상대결에서 오거돈 전 장관이 55.9%를 얻어 서병수 시장(27.5%)을 압도했다. 김영춘 장관과 대결에서도 52.9% 대 28.5%(서병수)로 서 시장이 뒤졌다. 이호철 전 수석과 서 시장의 가상대결도 45.1% 대 31.3%로 이 전 수석이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자 한국당에서는 서 시장 교체론이 조기에 불붙었고 홍 대표와 서 시장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당에서 서병수 시장 교체론이 사그라든 대신 흥행이 유력했던 민주당 쪽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이호철 전 수석이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친노와 친문 진영의 기대감이 위축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전 수석과 가까운 인사의 말을 들어보자. “이 수석은 스스로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한다면 경남지사 후보로 김경수 의원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부산시장에 자신이 출마하면 PK지역에서 친노·친문 진영에 대한 반발 또는 역풍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한국당의 경우 현역인 서 시장이 재선 도전을 선언함에 따라 유력 경쟁자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상황이다. 최근 바른정당에서 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긴 김세연 의원(부산 금정) 정도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그래서 부산시장 선거전은 예상과 달리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가상 다자대결 구도에서 여론조사 1위에 오른 오거돈 전 장관은 경선 대신 전략공천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올해 70세가 된다. 상대적으로 젊은층 지지가 높은 김영춘 장관은 불출마 의향을 피력하면서도 출마 여지를 남겨두고 저울질 중이다. 부산 정가의 한 소식통은 “여론조사상 민주당이 유리하게 나온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경쟁력 있는 후보들이 나와 유권자의 관심을 모아야 선거를 이길 수 있는데, 최근 후보군이 좁혀지면서 열기가 식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부산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38.3%를 얻어 31.8%에 그친 홍준표 후보를 이긴 지역이다. 문 대통령이 PK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청와대와 민주당이 필승카드를 내기 위해 고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의 70%대 지지율이 조정 국면에 돌입하면서 부산 출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유승민 의원과 추진하는 통합신당에 대한 기대감도 나타나고 있다. 통합신당에서 유력 인사를 부산시장 후보로 내보낸다면 민주당과 한국당 표를 일정 부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럴 경우 부산시장 승패의 열쇠는 통합신당이 쥐게 된다. PK지역 선거구도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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