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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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간부들이 진행 중인 업무 전면 거부’ ‘신규 특집·기획 프로그램 제작 불응, 반드시 제작해야 할 경우 비대위가 결정’….

파업을 끝내고 1월 24일 업무 복귀한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KBS 본부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노조원에게 내린 지침이다. 고대영 KBS 사장 해임 직후 파업에선 복귀했지만 ‘투쟁’은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지난 1월 22일 이인호 KBS 이사장은 “MBC에 이어 KBS도 권력 놀이를 하는 과격한 노조의 자유 무대가 된 셈”이라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지 8개월 만에 KBS·MBC 양대 공영방송의 사장이 교체됐다. 교체 과정은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에서 만든 이른바 ‘방송장악 문건’ 시나리오 그대로 진행됐다. 해당 문건은 ‘방송사 구성원 중심의 사장 퇴진운동 전개’ ‘야당 추천 이사진 퇴출’ ‘감사원 국민감사 청구’ ‘방송통신위원회 활용한 경영비리 조사’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언론노조, 감사원, 방통위는 문건 시나리오와 맥을 같이해 움직였다.

집권 여당과 언론노조의 KBS 이사직 사퇴 압박에 맞서 싸워온 인물이 있다. 지난해 12월 23일 KBS 이사에서 강제 해임된 강규형(53) 명지대 교수다. 강 교수는 이에 굴하지 않고 지난 1월 3일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지난 1월 29일 서울 이태원의 한 커피숍에서 강 교수를 만났다. 그간의 어려움을 보여주듯 강 교수의 모습은 수척해 보였다. 그는 “현 정부의 방송장악은 구시대적이고 5공화국 시절보다 더 교활하고 좋지 못한 방법을 썼다”며 말문을 열었다.

- 공영방송 경영진 교체, 민주당 ‘방송장악 문건’대로 됐다고 했는데. “민주당에선 공식문건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결과가 말을 해준다. 문건에 나온 대로 직접 손을 대기보다 언론노조, 감사원, 방통위 등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처리했다. 논란이 일었으면 조심이라도 할 텐데 지나칠 정도로 똑같이 진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송장악 안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식언(食言)을 한 것 아닌가. 국민을 속인 것이라 본다.”

- 현 상황을 정권의 방송장악이라 보나. “KBS, MBC, SBS, EBS 4대 공중파 방송이 다 장악됐다. 친정부 노영(勞營)방송이 된 것이다. KBS는 현 이사 임기가 종료되는 8월이면 자동으로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리를 한 배경에는 불순한 동기가 있다고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 불순한 동기가 뭔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방송을 장악해 여론을 주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공중파에서 문재인 정부나 좌파 세력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가 나오기 힘들다. 반면 친북적인 메시지가 많이 나올 거다. 또 정권 초기에 중요 정책들을 추진해야 하는데 몇 개 정책에 있어 참담한 실패가 이어지고 있다. 정권 뜻대로 되면 무너질 정권이 어디 있겠나. 이해찬 의원은 민주당이 20년 이상 집권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러려면 방송장악이 필요한 거다.”

강 교수는 무리수를 둔 정권의 방송장악은 ‘양날의 칼’과 같다며 책임을 지게 될 날이 올 거라고 했다.

“정권 입장에서 방송을 장악한 것처럼 신나는 게 어딨겠나. 무리수를 둬서라도 얻는 이득이 있으니 실행한 거다. 그런데 법적·절차적 정당성을 어긴 것, 방송사 사장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린 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나중에 국정조사 안 할 것 같은가. 정권이 계속되고, 언론을 억누를 수 있을 거로 생각하니 무리수를 두는 거다.”

- 법적·절차적 정당성을 어겼다는 게 뭔가. “방송법에는 방통위에서 KBS 이사의 해임을 결의할 권한이 없다. 방통위에선 KBS 이사 임명제청권도 아니고 추천권만 가지고 있다. 감사원은 해임에 관해서 임명권자나 임명제청권자에게만 건의할 수 있다. 감사원이 방통위에 해임을 건의한 것부터 위법이다.”

- 문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 처분 취소 소송을 냈는데. “소송 내용, 법적·절차적 정당성 등을 검토할 때 정부 쪽이 이길 수가 없다. 그런데 칼자루를 쥔 쪽이 상대편이라 재판은 최대한 연기될 것으로 본다. 내가 이겨서 복귀하면 방송장악 계획이 전부 엉망이 될 텐데 허용하겠나.”

- 해임 사유인 ‘업무추진비 부당사용’은 문제없다고 자신하나. “KBS 내부규정에 저촉되지 않게 썼고 애매한 것은 사전에 확인해서 사용했다. 감사원에서는 KBS 이사진 전체가 업무추진비를 부당사용했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감사원이 올바른 기준을 적용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집 근처, 학교 근처, 애견카페 등에서 업무차 사용한 걸 전부 ‘부당사용’으로 처리했다. 애견카페에서 애견용품을 샀느니, 개를 샀느니 별소리를 다 하는데 카페 가서 커피를 마신 것뿐이다. 또 KBS 교향악단 음악회에 참석한 걸 ‘사적사용 의심’으로 처리했다. 감사원에선 KBS 교향악단이 독립법인이기 때문에 KBS와 업무관련성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KBS 교향악단은 엄연히 KBS 산하기관으로 KBS 이사회가 조언할 수 있는 단체다.”

감사원은 KBS 이사진 전원에 대한 인사조치 방안을 마련하라고 방통위 측에 통보했다. 그런데 강 교수만 해임한 것에 대해 ‘표적 해임’ 논란이 일었다.

- ‘표적 감사’ ‘표적 해임’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표적 해임이 맞다. 내가 교수였기 때문에 타깃으로 잡은 거다. 교수들은 보통 노조가 학교에 와서 데모하고 가족까지 괴롭히면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다. 그런데 나는 끝까지 버티니까 더 심하게 공격을 받은 거다. 청문회는 원래 이인호 이사장, 차기환 변호사를 포함해 세 사람이 받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청문회 직전에 방통위원장이 직권으로 두 사람을 빼버렸다. 한 사람만 해임해도 사장 교체가 가능하니 쉬워 보이는 상대로 나만 남긴 거다.”

- 청문회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고 하던데. “코미디 프로그램 ‘봉숭아학당’ 그 자체였다. 청문회 주재자였던 김경근 고려대 교수는 ‘방송은 힘센 놈이 먹는 것’ ‘예쁜 여자 보고 총각이 집적거리듯 정권이 방송을 탐하는 건 당연한 것’ ‘만만한 게 교수라서 찍힌 것’ 등 막말을 늘어놨다. 방통위의 속내를 김경근 교수가 오히려 잘 표현해준 거다. 방통위 직원이 뒤에서 펄쩍펄쩍 뛰더니 쉬는 시간에 김 교수에게 청문을 빨리 마무리하라고 요구했다.”

- 지칠 법도 한데 물러서지 않고 싸우고 있다. “현재 소송이 11개나 걸려 있고 지치는 게 사실이다. 나는 원칙을 벗어나는 걸 참지 못한다. 지금까지 견뎌낸 건 자칭 민주화 세력이라고 하는 이들의 위선, 언론노조의 폭력성과 독선을 밝혀내기 위한 것이었다. 조금이나마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본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문제이기에 바로잡힐 때까지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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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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