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네소타주의 지역신문 스타트리뷴에 실린 김정은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풍자한 삽화.
미국 미네소타주의 지역신문 스타트리뷴에 실린 김정은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풍자한 삽화.

‘트로이 목마(Trojan Horse)’는 고대 그리스가 트로이와의 전쟁 때 사용했던 기만전술을 말한다. 당시 그리스는 10여년간 트로이와 전쟁을 벌였지만 성을 함락하지 못하자 30여명의 정예 병사를 매복시킨 거대한 목마(木馬)를 만들어 트로이 해안에 남겨놓고 본국으로 철수하는 척한다. 트로이 백성들은 목마를 승리의 상징으로 생각해 성 안으로 들여놓았다. 목마 속의 병사들은 밤중에 성문을 열었다. 결국 그리스는 승리했고 트로이는 멸망했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이용해 트로이목마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의 동북아 전문가인 고든 창 변호사는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 자체가 하나의 큰 트로이목마 전술의 일환”이라면서 “북한이 평화적인 제스처를 보이고 있는 것은 철저한 기만전술”이라고 지적했다. 창 변호사는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한국 내의 대북 적대적 감정 완화 및 친북 분위기 연출, 서울로부터 재정 지원과 제재 완화, 한·미 동맹 와해 및 이간 등을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도 “북한이 남북대화에 나선 것은 핵무기를 갖고 있더라도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목적 때문”이라면서 “북한이 한국에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미국엔 강경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한·미 동맹 관계를 갈라놓으려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민족이 틀어쥔 ‘核 보검’”

미국에서 이런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북한의 속셈이 벌써부터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1월 24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정당·단체연합회의’ 명의로 발표한 ‘국내외의 전체 조선민족에게 보내는 호소문’에서 “올해 공화국 창건 제70주년과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맞아 북과 남은 한 핏줄을 나눈 동족으로서 민족의 존엄과 위상을 내외에 힘 있게 떨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또 “우리 민족이 틀어쥔 ‘핵 보검’은 미국의 핵전쟁 도발책동을 제압하고, 북·남 관계를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밝은 전망을 열어주고 있다”면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영구 중단을 요구했다.

북한은 또 평창 동계올림픽 전날인 2월 8일 건군절을 맞아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각종 탄도미사일 등을 동원해 대대적인 열병식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과거 정규군을 만든 2월 8일을 건군절로 기념하다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조직했다는 4월 25일로 변경했는데, 이번에 2월 8일로 복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맞춰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군사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한 손에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라는 올리브 가지를, 다른 손엔 핵폭탄이라는 몽둥이를 들고 있는 셈이다.

미국 민간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수미 테리 수석연구원은 “평창 동계올림픽은 아름답게 잘 치러지겠지만, 패럴림픽까지 끝난 3월 말과 4월 이후가 문제”라면서 “그 시기에도 김정은이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테리 연구원은 “김정은이 완성도가 95%인 상황에서 핵무기를 지금 포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북한이 멈췄던 도발을 재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같은 연구소의 마이클 그린 부소장도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가 북한의 행동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북한은 과거부터 대화 후에 다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는 등 도발을 되풀이해왔다”고 지적했다.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수석 연구원은 “표범이 갑자기 무늬를 바꿨다고 표범이 아니라는 생각은 위험하다”면서 “북한은 2000년 시드니 하계올림픽에 한국과 공동 입장하는 등 몇 차례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핵 정책의 변화로 결코 이어지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전례를 볼 때 북한이 선의로 협상에 임하거나 새로운 협상에 맞춰 생각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것”이라며 “김정은은 제재를 풀기 위해 취약한 고리인 한국을 이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북한은 과거부터 기만전술로 악명이 높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북·미가 처음으로 맺은 1994년의 제네바합의를 들 수 있다. 당시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개발 동결대가로 1000MW급 경수로 2기를 제공하고 대체에너지로 연간 중유 50만t을 제공하기로 했고,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완전 복귀와 모든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허용, 핵 활동의 전면 동결 및 기존 핵시설의 궁극적인 해체를 약속했다. 또 북·미는 쌍방의 수도에 연락사무소 설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이행과 남북 대화의 재개에도 합의했다. 하지만 북한은 제네바합의가 플루토늄 핵 개발 중지만을 언급하고 있는 점을 악용해 비밀리에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했다. 이런 사실이 미국에 발각되면서 제네바합의는 2002년 깨졌다. 2005년의 9·19 공동성명도 마찬가지다. 당시 북한은 6자회담에서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고 NPT, IAEA로 복귀한다고 합의했다. 미국은 이에 대한 대가로 평화협정 체결과 핵무기 불사용 등을 북한에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은 2006년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와 제1차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9·19 공동성명을 파기했다. 북한은 핵개발을 진행할 시간을 벌기 위해 철저하게 6자 회담을 이용했다.

북한과 미국은 2012년에도 2·29 합의를 도출한 적이 있다. 당시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포함한 영변에서의 핵 활동 중지와 IAEA 사찰단 복귀 등을 약속했다. 미국은 6자회담 재개와 제재 해제 검토 및 24만t의 영양지원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북한은 합의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같은 해 4월 13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지구 관측위성 광명성-3호를 발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가 우주개발 목적의 로켓 발사와는 관련이 없다면서 합의서를 교묘하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북한은 애초부터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강성대국을 선포하고 축포용으로 ‘위성’을 쏘아 올릴 계획을 추진해왔다. 미국이 북한의 술책에 속아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북한은 2008년 영변 핵 시설의 냉각탑 폭파를 통해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얻어냈다. 북한은 2007년에는 6자회담 복귀를 카드로 삼아 미국이 동결했던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 자금 2500만달러를 회수했다. 북한은 지난 25년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통해 적절한 이득을 얻어낸 후 합의를 파기하는 수법을 써왔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통하고 남한은 봉쇄한다)’에서부터 ‘벼랑 끝 전술’ ‘살라미 전술’ 등 온갖 전술을 구사해왔다.

“비핵화 위해 최대의 압박과 제재”

또 김정은이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내놓은 대남·대미 메시지도 북한이 과거 즐겨 사용해온 ‘이간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이간계의 목적에는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고 남남갈등을 유발하려는 속셈이 들어 있다. 북한은 대가(代價) 없이 무언가를 내놓은 적이 없다. 대화 의지를 피력하면서 그 대가로 엄청난 양보를 요구해왔다. 테리 연구원은 “한국이 햇볕정책으로 북한에 80억달러를 줬지만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면서 “김정은이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제재 완화를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정부는 과거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 언급했던 “우리는 같은 말을 두 번 사지 않을 것(We won’t buy the same horse twice)”이라는 교훈을 되새기고 있다. 북한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5일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역사적 선언을 하기 몇 시간 전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은 또 같은 해 5월 제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당시 북한과 대화를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오바마 정부는 상당한 좌절감을 느껴야만 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 발탁돼 오바마 전 대통령 때도 공화당원임에도 국방장관직을 계속 수행해온 게이츠 장관은 북한의 기만전술을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면서 미국의 이런 격언을 강조했다. 이후 미국의 조야에서 게이츠 전 장관의 발언이 일종의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돼왔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북한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갖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해온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조차도 “우리는 25년간 실패한 접근을 했다. 이는 미국이 북한이 다른 길을 가도록 독려하기 위해 13억5000만달러를 제공한 기간을 포함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틸러슨 장관의 이런 발언은 북한과의 어정쩡한 미봉성 합의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대통령부터 북한의 비핵화가 절대적인 목표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취임 후 첫 연두교서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최대의 압박과 제재를 가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6일 경제 문제를 다룬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다보스포럼) 폐막 연설에서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북한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고 비판해왔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제재에 동참할 것을 압박해왔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12월 18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북한은 인간에 대한 존엄이 없는 잔인한 독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면서 “북한은 25년 이상 모든 약속을 무시하고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추구해왔으며 이러한 미사일과 무기는 오늘날 미국과 우리의 동맹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면서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강제할 옵션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무대서 진실 얘기할 계획”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지난 1월 26일 송영무 국방장관과의 회담에서 “남북한 간의 올림픽 대화가 북한 비핵화라는 국제사회의 일치된 목표를 흐트러뜨려선 안 된다”고 밝혔다. 매티스 장관의 이런 언급은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이용해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점을 문재인 정부에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도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과거에도 대화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심어주려 했다”고 경고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지난 1월 13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NSC) 국장 및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대화에 임하도록 최대한의 압력을 가하기로 했다. 이들은 북한이 재개한 남북 대화가 일종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우회로이고 북한의 단호한 핵무기 추구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현역 육군 3성 장군인 맥매스터 보좌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대화나 외교를 통해 풀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온 강경파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면 국제적인 핵무기 확산을 차단할 수 없으며, 북한의 핵 공격 위협을 상호 억지력만으로 통제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이간계에 대한 대응으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단장으로 하는 미국 고위급 대표단을 평창 동계올림픽에 파견한다. 펜스 부통령은 “김정은이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메시지를 가로채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면서 “평창 동계올림픽이 북한이 2주간 벌이는 선전장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은 과거부터 ‘마스터 조종자(master manipulators)’였다”면서 “세계무대에서 진실을 이야기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펜스 부통령은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 이유는 펜스 부통령의 부친인 에드워드 펜스 당시 소위가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기 때문이다. 당시 펜스 소위는 1953년 한국 폭찹힐(Pork Chop Hill)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워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폭찹힐은 경기도 연천 DMZ에 있는 천덕산 일대의 300m 고지를 말한다. 유명배우 그레고리 펙이 주연을 맡은 영화의 소재가 됐던 폭찹힐전투는 펀치볼전투, 단장의능선전투 등과 함께 6·25전쟁 때 벌어진 고지전들 중 하나다. 미군은 중공군과 공방전 끝에 고지를 사수했는데, 미군 347명, 중공군 1500명이 전사할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다. 부친이 훈장을 받는 사진을 집무실 탁자에 올려놓고 매일 볼 정도인 펜스 부통령은 지난해 4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부친이 전투를 벌였던 장소를 돌아보기도 했다.

6·25전쟁 종전회담에 유엔군 수석대표로 참석했던 터너 조이 전 미 해군 제독은 1970년 저서 ‘공산주의자들은 어떻게 협상하는가’에서 “공산주의자들과의 약속은 믿지 마라. 공산주의자들의 행동만 믿어라”라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물론 한국 정부도 이 말을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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