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7일 아침. 감사원 직원들은 청사 입구로 걸어 들어오는 최재형(62) 감사원장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최 원장은 관용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했다. 이날 서울시는 고농도 미세먼지로 인한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했다. 감사원을 포함한 공공기관은 이 조치에 따라 차량 2부제를 실시해야 하는데, 마침 최 원장 차량이 2부제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감사원 직원들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다.

차량 2부제와 같은 조치를 피하기 위해 감사원이 그동안 두 대의 원장용 차량을 운영해온 사실을 직원들은 알고 있었다. 1호차가 2부제에 걸리면 원장은 2호차를 타고 출근한다고 알고 있던 직원들은 그래서 더 의아했을 것이다. 사정은 이랬다. 이틀 전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을 때 직원들이 1호차 대신 2호차를 원장의 출퇴근용으로 배치했다고 한다. 그러나 차량이 바뀐 걸 알게 된 최 원장은 비서실 직원들에게 불호령을 내렸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회피하기 위해 예비 차량을 운행하는 건 “원칙에 맞지 않는다”면서 바로잡을 것을 지시했다.

다른 부처와 공공기관도 차량 5부제나 2부제 시행을 염두에 두고 장관이나 기관장을 위한 비상 차량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장관이나 기관장의 경우 대통령 주재 회의나 중요 행사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 불가피하게 예비 차량을 두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기관장용 차량이 두 대라는 것은 예산 낭비와 관행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감사원도 그동안 이런 예외를 인정해왔기 때문에 관련 사안이 감사 대상에서 제외된 측면이 없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최 원장은 정부나 지자체의 방침을 어기면서까지 별도 차량을 운행하는 건 일종의 ‘꼼수’라고 본 것이다.

최 원장의 원칙 행보는 이게 끝이 아니다. 그는 퇴근길에 사적인 약속이 있을 경우 비서에게 콜택시를 부르라고 지시한다. 개인 업무에 관용차와 기사를 대동하는 것은 공무원 행동강령에 어긋난다는 게 최 원장의 생각이다.

최 원장의 일련의 행보로 인해 감사원 내부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감사원 1급 직원들이 관용차를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던 관례가 최근 사라졌다고 한다. 감사원 한 관계자는 “최 원장이 ‘규정에 없는 것은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이후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최 원장의 지시가 있었는지, 아니면 1급 고위직 공무원 스스로 관행을 내려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난 1월 2일 최 원장이 취임한 이후 감사원 주변에서 “좋은 시절 다 갔다”는 푸념까지 나오는 걸 보면 직원들이 누리던 편익이 줄어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현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에도 부합한다. 감사원은 특히 법과 규정에 의거해 정부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을 감사한다는 점에서 최 원장의 ‘관행 퇴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최 원장은 감사보고서를 유달리 꼼꼼하게 챙긴다고 한다. 기존 감사원장의 경우 감사보고서만 보고 결재하는 일이 많았으나 최 원장은 감사보고서에 첨부된 증거자료를 일일이 대조하며 검토한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그는 사시에 합격한 이후 36년간 판사로 재직했다. 지난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사법연수원을 다니던 20대 때 몸이 불편한 동료를 2년 동안 업어 출퇴근시키는 훈훈한 미담이 알려져 화제가 된 바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5월 문 대통령의 업무지시로 시작된 4대강 감사를 진행 중이다. 감사원의 4대강 감사는 이번이 4번째다. 감사원이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감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까. 원칙을 중시하는 최 원장 체제에 기대를 걸어본다.

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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