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앞두고 정당지지율이 높은 쪽이 반드시 승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특히 2010년 이후 각각 두 번씩 치러진 총선과 지방선거에선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였던 정당이 모두 패했다.

2016년 총선은 역대 선거 중에서 여론조사가 가장 크게 망신을 당한 선거였다. 대부분 조사 회사들은 총선 전 여당(새누리당)의 과반 확보와 야당(더불어민주당) 참패를 예상했다. 야권이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어 야권 지지표(票)가 갈린 것의 영향이 컸다. 선거 일주일 전 갤럽 조사에서 정당지지율은 새누리당(36%)이 민주당(21%)과 국민의당(10%)을 압도했다. 하지만 투표함을 열어 보니 민주당(123석)이 새누리당(122석)에 근소한 차로 승리했고 국민의당도 38석으로 선전했다.

2012년 총선은 2011년 말부터 불어닥친 안풍(안철수 바람)과 디도스사건 등으로 어수선한 여당(새누리당)을 상대로 야당(민주통합당)이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란 말이 나왔다. 총선 한 달 전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새누리당 후보에 맞서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이 연대한 범야권 후보가 출마한다면 누구를 지지하겠는가’란 질문에 범야권 후보(48.8%)가 새누리당 후보(37.1%)를 크게 앞섰다. 선거 직전 정당지지율도 민주당 31.9%, 새누리당 31.6%였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152석으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새누리당의 압승이었다. 승리가 예상됐던 민주통합당은 127석에 그쳤다.

지난 두 번의 지방선거도 사전(事前) 여론조사와 투표 결과가 달랐다. 2014년 지방선거 일주일 전 갤럽 조사에서 여당(새누리당)의 정당지지율은 42%로 28%인 야당(새정치민주연합)을 크게 앞섰다. 하지만 광역단체 17곳 중 새정치민주연합이 9곳에서 승리했고 새누리당은 8곳에 머물렀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의 악재 속에서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시·도지사 3곳 가운데 인천과 경기 두 곳에서 이겼지만, 민심의 핵(核)인 서울시장 선거에서 13%포인트의 큰 차로 완패했다.

2010년 지방선거도 갤럽의 선거 직전 조사에서 여당인 한나라당 지지율이 44.0%로 24.2%였던 민주당을 20%포인트가량 차로 앞섰지만 선거 결과는 민주당의 완승(完勝)이었다. 민주당은 시·도지사 선거 7곳에서 승리했고 한나라당은 6곳에 그쳤다. 민주당은 시장·군수·구청장 선거, 시·도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을 눌렀다. 선거 두 달여 전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이 최대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다른 정치 이슈들이 묻혔지만 표심은 결국 ‘집권 세력에 대한 견제’ 쪽으로 움직였다.

역대 대선에선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앞섰던 후보가 대부분 승리했다. 반면 최근 네 번의 총선과 지방선거는 지지율이 높은 쪽으로 쏠리는 밴드왜건(bandwagon)에 비해 약세인 쪽이 역전하는 언더도그(underdog) 효과가 더 컸다. 이에 대해선 후보 인지도 차이가 원인이란 분석이 있다.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후보들이 나서는 대선에선 유권자들이 일찌감치 마음을 정하기 때문에 사전 여론조사 결과가 투표일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은 후보들이 전국적으로 쏟아져나오는 총선과 지방선거는 막판까지 찍을 후보를 정하지 못하는 유권자가 많아서 여론조사가 빗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만 그 정당에서 공천한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도 정당지지율 조사와 투표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투표율의 영향도 있다. 대선은 투표율이 70% 안팎에 달하지만 총선과 지방선거는 50~60%가량이다. 여론조사는 전체 유권자가 모두 투표에 참여한다는 가정하에 지지율을 측정하는 것이라서 투표율이 낮을수록 여론조사 정확성은 낮아진다. 총선·지방선거에선 여론조사에 응답을 잘 안 하면서도 지지 정당에 힘을 보태주기 위해 투표장에 가는 소신파가 많은 것도 여론조사가 빗나가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초대형 이슈 몰아칠수록 ‘깜깜이’ 선거

‘침묵의 나선(螺旋)’ 효과를 주목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침묵의 나선 이론을 제시한 독일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노일레노이만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다수 의견에 속하면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내고 소수 의견에 속하면 침묵한다”고 했다. 통상 진보 정당이 강세일 때에는 보수층이 침묵하고 보수 정당이 강세일 때에는 진보층이 침묵한다. 탄핵과 조기 대선에 이어 적폐청산 등 정치적 격변을 겪고 있는 최근 상황에선 보수층이 여론조사를 외면하며 침묵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체 유권자 4248만명 중 3281만명(77%)이 투표에 참석한 작년 대선에서 1342만명(32%)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도 얼마 전 입소스코리아의 전체 유권자 대상 조사에선 실제보다 20%포인트 이상 많은 54%가 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답했다. 여론조사에 여권 지지자는 적극 참여한 반면 야권 지지자는 다수가 외면한 결과다. ‘여론’이라는 말을 처음 쓴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지적처럼 ‘모종의 분위기상 압력’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70% 안팎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민주당 지지율도 50%에 육박하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15~20%, 바른미래당은 10% 안팎에 머물러 있다. 더구나 선거가 야권 분열 구도로 치러진다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우세한 흐름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기세 등등한 여당과 무기력한 야당을 보면서 야당 지지층의 투표 의욕이 많이 꺾인 것도 야당에 불리한 상황이다. 작년 5월 대선도 ‘숨은 보수 표’, 즉 ‘샤이 보수’ 논란이 컸지만 여론조사와 선거 결과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야당은 여론조사에 드러나지 않는 ‘보수 성향 숨은 표’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지난 네 차례 총선·지방선거처럼 선거에선 ‘대이변’도 벌어지기 때문이다. “초대형 이슈가 몰아칠수록 공약과 정책 등 선거 이슈가 실종되고 후보 간 차별화된 쟁점이 부각되지 않는 ‘깜깜이 선거’가 될 수 있다”는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있다. 남북, 미·북 정상회담, 여야(與野) 개헌 공방, 전직 대통령들의 구속 등 메가톤급 이슈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치러지는 6·13 지방선거의 표심 예측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천안함 폭침이란 대형 이슈가 여론조사를 빗나가게 한 ‘교란 요인’이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정부 견제 심리가 작동하지 않아서 야당으로선 쉽지 않은 선거일 것”이라며 “샤이 보수층이 투표장에 가야 하는 이유를 야당이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했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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