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 ⓒphoto 연합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 ⓒphoto 연합

지난 4월 2일은 일본의 직장 새내기들이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이날 60만명의 신입사원들이 새로운 직장에서 시무식을 갖고 직장 첫날을 맞았다. ‘대학생 취업률 100%’라는 경이적 수치가 증명하듯 일본 열도 전체는 활기차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예상을 뒤엎고 일본 경제의 선순환을 이끌어낸 ‘아베노믹스’가 완전고용의 가장 큰 요인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향해 만세삼창이라도 해야 할 판국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이른바 ‘아베 피로 현상’이 한층 더 가속화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물론 집권 여당인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이 급강하하고 있다. 오사카(大阪) 소재 사학 모리토모(森友)학원 국유지 헐값 매각을 둘러싼 스캔들 때문이다.

흔히 정치를 생물이라 말한다. 정치도 생로병사, 흥망성쇠, 치란존망(治亂存亡)의 주기를 겪는다는 의미다. 아베의 인기가 땅에 떨어지면 그를 대신할 새로운 기대주가 부상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최근 일본에서 아베의 대체재로 급부상하는 인물이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다. ‘극장 정치’로 유명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의 둘째 아들이다. 1981년생으로 올해 나이 37살에 불과하지만 2009년 28살의 나이로 자민당 중의원에 오른 4선 관록의 정치인이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현재 아베는 정오를 막 넘긴 태양이다. 아직 석양은 아니다. 반(反)아베 진영에 섰거나 아베 피로감에 빠진 입장에서는 빨리 대항마를 만들어 아베를 석양으로 만들고 싶을지 모른다. 일본 민영 TV는 전통적으로 반자민당, 반아베 성향이 강하다. 이 미디어들이 아베를 빨리 지우려는 과정에서 고이즈미를 태양으로 키우고 있다. 경제·안보 면에서 남다른 성과를 올린 장수 총리가 아베다. 본인이야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그를 둘러싼 현실은 밤으로 향하고 있다.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통해 다시 총리에 도전할 생각이지만 앞날은 어둡다. 총리로 선출된다 해도 원래 계획했던 헌법 9조 개정은 어려워질 전망이다. 아베 역시 레임덕을 맞고 있는 셈이다.

최고 수준의 단문 연설

차기 리더 고이즈미에 대한 기대감은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한껏 달아오르는 중이다. 모리토모 사건으로 자신이 속한 자민당까지 비난을 받게 되자 지난 3월 24일 고이즈미는 짧지만 단호한 발언을 했다. “총리 아베 외에는 (아무도) 답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모리토모 스캔들과 관련해 아베의 부인 아키에(安倍昭恵)를 국회에 소환할 필요성이 있다는 발언이었다. 고이즈미는 단문 답변과 소감으로 유명하다. 아버지 고이즈미와 똑같은 어법이다. 말을 아끼고 상대방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화법이다. 짧고 간단한 연설은 일본 정치인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통한다. 정치 평론가들은 아베의 연설을 60점, 고이즈미의 연설을 90점 정도로 평가한다. 고이즈미가 연설을 하면 항상 엄청난 인파가 쇄도한다.

“아베 외에는 (아무도) 답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고이즈미의 발언을 들으면서 필자가 놀란 것도 그의 언어다. 짧은 한마디에 많은 의미를 담았다. “아베는 지금 당장 아키에를 국회로 불러라”는 식의 직설형, 나아가 흑백을 가르는 양자택일의 어법은 아니지만 아베를 충분히 궁지에 몰아넣을 말이다. 아베에게 칼을 쥐여주면서 스스로 운명을 판단하라는 식의 주관식 해법이 짧은 말 속에 배어 있다. 우물쭈물해온 아베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비수로 느껴졌다. 반아베, 친아베 여부에 관계없이 그동안 ‘아베 1강’하에서 숨도 못 쉬던 사람들로부터는 박수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인기가 오르면서 지지율도 폭등하고 있다. 서로 눈치만 보던 자민당 중진들과 달리 뭔가 국민들의 심정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의 지지율은 아베를 뛰어넘고 있다.

필자는 고이즈미와 인연이 있다. 2006년 겨울, 고이즈미가 워싱턴 국제전략연구소(CSIS) 연구원으로 있을 때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고이즈미는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직후였다. CSIS 일본 데스크였던 마이클 그린이 석사를 마친 고이즈미를 ‘정략적으로’ 불러들였다. 고이즈미와 마이클 그린은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친구 사이다. 그 무렵 필자는 일본인 친구와 함께 CSIS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안보 관련 회의에 참석했었다. 고이즈미 2세에 대한 얘기를 이미 듣고 있었지만 그의 워싱턴 입성을 유명 정치인 2세의 경력 관리나 경력 세탁 정도로 받아들였다. 워싱턴은 좁다. 세계 유명 정치인의 아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당시 CSIS의 회의장에 들어서는 순간, 백인들 틈에 섞여 있는 고이즈미를 금방 발견했다. 당시 워싱턴 주재 일본인들은 고이즈미가 곧 정치에 나설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의 첫인상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안정감이었다. 얌전한 모범생 타입은 아니지만, 똑바로 앉은 정자세부터 주변에 대한 예의까지 25살 청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하게 말하면 주변을 의식한 가면 속의 캐릭터로 보였다. 반면 스스로의 허점을 인정하지 않는 엄격함 같은 것도 와닿았다. 정치가가 되기 위해 몸에 밴 캐릭터라고나 할까?

지난해 10월 총선 때 유세 중인 고이즈미 신지로. ⓒphoto 마이니치
지난해 10월 총선 때 유세 중인 고이즈미 신지로. ⓒphoto 마이니치

유창한 영어, 워싱턴 근무 경력

당시 회의 말미에 질문 시간이 있었다. 놀랍게도 고이즈미가 손을 들었다. 동북아 안보와 관련해 인도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짧은 질문이었지만 마이클 그린이 추구하는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넘어선 시각이었다. 지금이야 안보 측면에서 인도의 역할이 당연시되지만 12년 전 상황은 다르다. 당시 젊은 친구가 상당히 멀리 내다보고 던진 질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 일본인 지인에게 들었지만 고이즈미는 어떤 자리에서도 항상 질문을 한다고 한다. 그의 질문을 들으며 놀랐던 것은 영어 구사 능력이다. 필자가 알고 있던 워싱턴의 어떤 일본인보다도 정확하고 분명한 영어를 구사했다. 미국 정책통들과 1 대 1 영어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당시 필자는 고이즈미가 정치에 입문하는 순간 대미 정책이나 안보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될 것이라 짐작했다. 영어 구사 능력만이 아니라 미국인이 좋아할 만한 특유의 매력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단호하면서도 겸손한 면이다. 이후에도 워싱턴에서 고이즈미와 두세 번 스쳐지나듯 만났지만 그에 대한 첫인상은 그대로 유지됐다.

‘젊은이(若者)·바보(ばか者)·외부인(よそ者)’. 일본인들이 즐겨 말하는 조직 혁신을 앞당기는 데 필요한 3역이다. 일본식 경영학 이노베이션론에 반드시 등장하는 사례 연구의 주된 소재이기도 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꼰대, 실패를 모르는 모범생, 조직 내 모든 것을 꿰차고 있는 안전제일주의자와 정반대의 개념들이다. 꼰대와 모범생들은 진짜 위기가 닥칠 때, 조직이 환골탈태해야 할 때 전부 소용없다는 의미다. 분위기도 파악 못 한 채 본 대로 느낀 대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떠들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젊은이, 바보, 외부인이야말로 조직의 환골탈태를 이끌 주역이라는 것이다. 일본 정치 현실에 빗대 보면 이 3역에 딱 맞는 인물이 바로 고이즈미다.

시오노 나나미도 팬

일본 유권자들 사이에서 고이즈미야말로 일본 정치를 확 바꿀 수 있는 적임자라는 기대감이 일고 있다. 현재 일본 국회에서 고이즈미와 같은 30대 이하 정치가들은 중의원 24명, 참의원 13명으로 전체 716명 가운데 5.2%를 차지하고 있다. 극소수라 볼 수 있지만 중앙 정계에 30대 이하 정치가가 단 한 명도 없는 나라도 많다. 한국도 현 20대 국회에서 30대 이하 국회의원은 단 3명이다. 그나마 비례가 2명이다. 전체 300명 중 1%에 불과해 일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적다. 일본에서는 고이즈미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30대 젊은 의원들에 대한 기대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고이즈미는 의회와 정치, 나아가 일본 열도의 이노베이션을 구체화시켜줄 ‘정계의 아이돌’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 여성치고 잘생긴 고이즈미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도 고이즈미 팬이다. 문예춘추(文藝春秋) 2월호 좌담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고이즈미를 20세에 마케도니아 왕에 오른 알렉산더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마냥 아이돌 프리미엄에 안주하는 정치가는 아니다. ‘일본 이노베이션’으로 이어질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국민에게 어필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제에 맞는 농업과 복지에 관한 고이즈미식 정책이다. 37살 정치가로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고밀도 정책을 자민당과 정부, 국민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의 농업 정책은 3년 전 자민당 농림부회장을 맡으면서 구체화된 것들이다. 한국의 농협에 해당하는 JA전농(全農)을 개혁하자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정치가들이 가장 멀리하고 싶어하는 전통과 역사의 압력단체에도 메스를 들이대겠다는 의지다.

고이즈미는 전농이 기존 이권을 내려놓고 집행부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TPP 체제하에서 일본 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청사진도 모두에게 보여준다. 기존의 정치가들처럼 농가의 표를 의식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농업이라고 봐주는 것도 없다. 상식선의 합리적 농정을 요구한다. 전농이 독점판매하는 트랙터가 왜 벤츠사 제품보다 비싼지 이유를 따진다. 터무니없는 고가의 농업용 기기가 농업생산력을 약화시킨다면서 가격을 낮추라고 요구한다.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농업용 기기에 대한 국가보조금을 삭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전농 집행부의 중심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70대 노장들이 버티고 있다. 처음에는 30대 고이즈미를 손자뻘 아마추어로 상대했지만 지금은 자세가 달라졌다. 선진국 농정(農政)을 빈틈없이 공부한 고이즈미를 상대로 진지한 대화에 들어갔다. 이를 통해 고이즈미는 협상 능력은 물론, 정책 비전도 일본 유권자들에게 확실히 알렸다. 전직 총리 아들로서가 아니라 젊은 정치가 고이즈미로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부터 고이즈미는 저출산, 만혼, 고령화 등 복지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0년 8월 하계올림픽이 직후 현안으로 부상할 분야라면서 자신이 직접 나서 해결하겠다고 공언한다. 40세가 되기 전 이 난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일본 정치의 최고봉에 올라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공개선언인 셈이다. 실제 그는 올해 초 ‘100세 시대의 국가전략’이란 두툼한 정책보고서를 내놓았다. 자민당 내 ‘청년의원 정책연구소’ ‘2020년 이후의 경제재정 구상 소위원회’의 이름으로 펴낸 정책 대안서다. 10여명의 젊은 의원들이 500여일에 걸쳐 공부하고 토론한 것들을 집대성한 정책서다. 물론 고이즈미가 이 공부 모임의 대표 역할을 했다. 농업과 복지 개혁이라는 두 가지 정책의 전문가이자 대안 주창자로 나선 것이다.

‘기반, 간판, 가방’. 일본에서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위한 3대 조건이다. 표를 줄 만한 후원회, 학벌이나 누구의 아들이란 사회적 명성, 선거운동에 쓸 실탄, 즉 자금이 필수라는 의미다. 일본어 발음으로 ‘반(バン)’이 공통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3반’으로 통한다. 고이즈미는 3반 정치가의 대명사다. 물론 아베도 3반 정치가의 대표적 예다. 고이즈미와 아베는 모두 세습 정치가다. 2세, 3세로 명명되면서 아버지나 가족의 뒤를 이어 정치가로 활동하는 인물들이다. 이른바 ‘금수저 정치가’라 할 수 있다.

금수저에 대한 반감은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에도 존재한다. 고이즈미가 거의 유일하게 꼽는 감점 요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인은 개의치 않는다. 금수저 정치인이 싫든 좋든 그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아버지 고이즈미는 2009년 정계은퇴와 함께 아들에게 지역구를 물려준다. 기득권 타파에 목을 매던 아버지 고이즈미였만, 아들을 대를 이은 정치가로 만들려는 눈먼 ‘바보 아버지(親バカ)’임을 자임했다. 일본은 선거구 내 정치후원회가 선거당락을 크게 좌우한다. 조직과 돈이 나오는 곳이다.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해도 지역구 후원회가 약할 경우 도쿄(東京)로 진출할 수가 없다. 세습 정치가는 아버지나 친척이 구축한 후원회를 간단히 물려받는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다. 한번 만들어진 후원회는 대대손손 이어진다. 세습 정치가와 세습 후원회가 함께 이어진다. 정치자금을 모으는 노하우도 남다르다. 신인 정치가의 경우 언제 어디서 정치자금 관련 폭탄을 만날지 모른다. 고이즈미가 20대에 의회에 진출한 것이나, 아베가 무려 9선 관록의 정치가가 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photo 로이터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photo 로이터

농업과 복지 개혁으로 승부수

“맡겨진 직업이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다.” 최근 한국에서 걸그룹으로 데뷔한 일본 성인비디오(AV) 아이돌의 ‘과거’에 대한 설명이다. AV배우가 직업이듯, 일본에서는 정치가도 직업이다. 일본인이 중시 여기는 대를 잇는 직업이라는 측면은 정치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세습 정치인이 넘쳐난다. 세습의 기준을 친인척 몇 촌까지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략 현역 정치인의 30% 정도가 세습 정치인들이다. 자민당은 평균보다 더 많아 40%대를 차지한다. 가장 적은 곳은 일본 공산당이지만 제로는 아니다. 세습 금수저 정치가는 국회에서의 영향력도 흙수저보다 월등하다. 아베 3차 내각의 면면을 보면 20명 각료 가운데 9명이 세습 정치인이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외무상, 남편과 함께 중의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에 이르기까지 차기, 차차기, 차차차기 총리 후보에 오르내리는 인물 대부분이 세습 정치인이다.

고이즈미는 이러한 일본 특유의 정치 구조가 만들어낸 최상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의도적으로 흙수저 행세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주도하는 정책 공부 모임을 미쉐린 별 세 개짜리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개최하는 식이다. 일반 유권자들이 ‘금수저 정치인 규탄’에 나선다고 해도 고이즈미 후원회가 버리지 않는 한 그의 앞날에 영향을 끼치기도 쉽지 않다. 전직 총리를 아버지로 둔 세습 정치인으로서 그 역시 언젠가 총리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아베 피로 현상’이 아니라고 해도 고이즈미가 언젠가 총리직에 오르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 경천동지할 스캔들이 터지지 않는 한 그의 승승장구는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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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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