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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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남북 3차 정상회담 이후 국제사회의 시선이 5월 말로 일정이 앞당겨진 미·북 정상회담으로 쏠리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수차례 파탄났던 북핵 협상이 기대를 모으는 것은 어느 때보다 북핵 문제의 이해 당사자들이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한반도보다 중동 문제에 집중해온 전임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지속적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왔다. 수차례에 걸친 북한 선제타격 가능성 거론, 다양한 루트를 통한 대북 경제제재가 대표적이다. 이는 북한의 핵공격 능력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만큼 발전하면서 실제 위협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점 역시 이번 미·북 정상회담을 주목하게 하는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와는 다른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우선 회담 다음날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1면에서부터 4면까지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이 주목받는다. 정상회담 결과를 자국민들에게는 발표하지 않거나 뒤늦게 발표한 지난 1·2차 정상회담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북한의 정상이 서명한 선언문에 ‘비핵화’라는 단어를 명시한 것 역시 이전 회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이처럼 기대를 받고 있는 미·북 정상회담 협상 결과는 어떻게 될까. 협상의 한 축인 미국의 입장은 상대적으로 명확하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상회담 목표는 비핵화”라며 CVID를 강조했다. 백악관, 국무부 등 다양한 경로로 나오는 미 행정부의 메시지도 현재까지는 CVID를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방법론을 두고는 리비아식, 이란식, 우크라이나식 등 다양한 방법이 거론되지만 CVID라는 목표를 두고는 크게 이견이 제기되지 않는다.

반면 협상에 임하는 북한의 입장은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우선 미국의 CVID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느냐가 쟁점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안인 CVID를 형식적으로나마 일단은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우세하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전 부원장은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6 대 4 정도로 (미·북 정상회담) 협상 타결 가능성을 높게 본다”며 “미국과 북한 모두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기대할 만하다”고 말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도 전화통화에서 “미·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는 문제가 안 될 것”이라며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다’는 말처럼 비핵화를 실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북한이 제출한 핵무기 관련 시설의 목록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파악한 목록을 대조해보다 빠진 게 나오는 식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탄도미사일이나 화학무기의 폐기 등으로 초점이 넓어지면 문제가 끝없이 늘어나면서 애초의 합의와는 멀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이 그간 국제사회의 핵사찰 압력에 맞서 펼쳐온 이른바 ‘살라미 전술’ 역시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매 단계를 다시 작은 단계로 나누면서 시간을 끌다 결국 흐지부지시키는 방식이다.

반면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북한이 CVID를 받아들이지 않아 미·북 정상회담의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판문점선언에 대해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와 ‘핵 없는 한반도’라는 문구가 함께 들어갔는데, 개인적으로 이 둘은 서로 대치되는 문구라고 본다”며 “이런 문구를 삽입한 것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제시하는 CVID에 대한 제동장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핵 없는 한반도’는 북핵 폐기만이 아니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 철폐를 말하고, 미국이 핵우산을 철폐하지 않는다면 이에 맞서기 위해 북한이 핵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되기 때문에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우리가 강조한 건 뒤쪽”이라고 나올 경우 협상이 틀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남북 정상회담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기대치가 한껏 올라간 상황이기 때문에 협상에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미국이 협상에 성공한 것처럼 포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가 미국 내에서 정치적 타격을 입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실질적 내용이 부족해도 협상 성공으로 포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전화통화에서 “실질적으로는 CVID가 아닌데도 트럼프가 CVID를 이끌어냈다고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이 특히 걱정하는 사항이고 우리도 우려해야 하는 것은, 북한이 화성-14·15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만 없애고 단거리·중거리 미사일을 계속 보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가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을 없애는 데서 만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봉 연구위원은 “그런 뒤 트럼프가 한국과 일본에 ‘우리의 아름다운 전략무기를 구매하라’고 할 수도 있고, 심지어 2016년 대선 캠페인 때 말한 것처럼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나올 수도 있다”며 “트럼프 개인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어떤 옵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CVID를 받아들일지, 받아들인다면 어디까지 받아들일지에 대해 예상이 엇갈리는 상황이지만 북한이 CVID를 받아들인다고 가정할 경우 김정은 입장에서의 득실은 무엇일까.

CVID 수용 대가로 CVIG부터 원해

전문가들은 CVID의 대가로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첫 번째 카드는 무엇보다 김정은 체제를 안정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1인 독재 정권의 특성상 경제 성장보다도 체제의 안정과 정권 유지가 제1 목표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북한 입장에서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목표는 체제의 안정을 보장받는 것”이라며 “경제 문제는 그 다음 수순”이라고 말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김정은이 CVID를 받아들일 경우 얻는 것은 우선 김정은 체제의 안정이다. 남북 정상회담 결과로 발표된 ‘판문점선언’의 핵심인 한반도 비핵화, 종전선언, 평화협정 역시 모두 김정은 체제 안정을 목표로 한다.

결국 북한은 CVID를 수용하는 대가로 무엇보다 ‘CVIG(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보장)’을 바란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의 대가로 종전을 선언하고 한국·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 확실하게 체제를 보장받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으로부터 정상국가로 인정받고, 미국과 수교를 맺는 것도 이 계획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열수 실장은 “미국은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한 지 약 20년 만에 국제제재를 풀고 수교를 맺었는데 그 결과 두 국가 사이는 정상화됐다”며 “북한을 적대국에서 해제해주고 나아가 북·미 수교를 맺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북한 체제는 상당히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직접 지원 없어도 빠른 발전 가능해”

고영환 전 부원장은 “미국의 적대 정책 철폐,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로 인정, 주한미군 철수, 한·미 군사훈련 철폐, 한·미 동맹 해체 다섯 가지가 지난 수십 년간 북한 외교의 숙원”이라며 “미국이 원하는 CVID가 비핵화의 최대치라고 한다면 반대로 이 다섯 가지는 북한이 요구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말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 요구의 최대치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 동맹을 해체하자고 주장하는 선까지 나갈 수도 있다. 다만 현재 일각에서 제기되는 주한미군 철수 등 한·미 동맹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명확히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이 CVID를 충실히 이행한다면 체제 안정 외에도 국제사회의 제재 해제와 투자 유치를 통한 경제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가장 시급한 것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해제다. 유엔은 북한의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발사에 따라 2006년부터 총 10차례에 걸쳐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의 대북제재에서 가장 강한 목소리를 내온 미국은 아직까지 완고한 입장이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최근 브리핑에서 “분명히 목표는 한반도의 비핵화”라면서 “비핵화를 향한 북한의 구체적 조치를 볼 때까지는 분명히 제재는 해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말하면 북한이 CVID를 충실히 이행할 경우 순차적으로 대북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 이외에 미국 등 각국의 독자 제재도 CVID를 충실히 이행할 경우 해제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자금세탁국 등으로 지정해 자금줄을 묶고 있다. 북한이 미국의 독자 제재에서 벗어나 정상 국가로 인정받을 경우 북한이 여러 국제경제기구에 가입하는 그림도 그려볼 수 있다.

북한은 한국과 달리 아직까지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 배상금을 받지 않았다. 일본과 수교할 경우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 배상금으로 200억달러에서 300억달러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한국과 유럽 각국으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한다면 단기간에 급속도로 주민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고영환 전 부원장은 “일본 배상금, 한국·유럽으로부터의 투자금 유치, 중국과의 무역 유지·확대가 성공적으로 되면 미국으로부터는 직접적인 경제지원을 특별히 받지 않아도 북한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발전할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 ⓒphoto 연합
지난 4월 2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 ⓒphoto 연합

“도리어 체제 흔들릴 수도”

반면 CVID를 받아들이고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 오히려 김정은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CVID를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봤다. 북한의 핵무기는 주체사상과 결부된 무기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 국면에서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통치력이 누수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CVID를 받아들인 후 권력층을 포함한 북한 주민들에게 CVID를 설명해야 하는 과정에서 김정은 정권의 지도력이 약화될 수 있다”며 “그동안 핵은 통일의 보루라고 선전해왔는데 핵을 포기한다면 북한 주민의 심리적 동요에 대해 김정은 정권이 깊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봉영식 연구위원 역시 “체제를 보장받기 위해 CVID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도리어 체제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럴 경우 김정은 정권이 다시 핵개발을 할 수도 있고, 체제가 흔들리거나 붕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봉 연구위원은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고 심지어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 해도 북한이 과연 체제 안정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사람도 자신이 가난하고 부족하면 불안해지듯 주변국이 모두 세계 수위권의 경제대국들인데 이들과 비교되면 북한이 원하는 걸 다 들어준다 해도 체제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 체제의 변동성을 김정은 정권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에 체제의 안정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예단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정권이 CVID를 받아들일 경우 발생할 내부 동요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협상에 임하고 있다는 분석도 한다. 고영환 전 부원장은 “김정은 정권은 CVID를 비롯한 미·북 협상으로 인한 주민들의 동요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고 보는 것 같다”며 “이미 내부적으로 시장화가 어느 정도 진전됐고 북한 주민들의 경우 생각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니 경제개발로 주민들의 생활 여건을 향상시키면 통제가능한 범위 내에서 개혁개방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우리가 주한미군 철수, 한·미 동맹 약화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처럼 북한은 그동안 반미와 주체사상을 양대 축으로 체제를 유지해왔는데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 협상한다면 동력의 절반을 잃는 것”이라며 “이럴 경우 어느 정도의 사상적 이완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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