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법무법인 서평 개업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photo 뉴시스
지난해 8월 법무법인 서평 개업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photo 뉴시스

문재인 정부 들어 법무법인 ‘서평’이 서초동 법률시장의 ‘강소(强小) 로펌’으로 떠올랐다. 소속 변호사가 9명에 불과해 김앤장(650명), 광장(450명), 태평양(410명) 등 기존 대형 로펌에 비해 턱없이 규모가 작지만 현 정권 들어 불거진 굵직한 대기업 사건 변호를 잇따라 수임하며 주목받고 있다. 국내 10대 로펌 중 하나인 A법인 대표변호사도 “서평은 최근 들어 가장 잘나가는 로펌으로 소문난 곳이 맞다”고 말했다.

서평은 개업 초기부터 눈에 띄는 인적 구성으로 화제가 됐다. 지난해 8월 8일 공식 개업한 서평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이재순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이 주도해 만들었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77학번 동기지만 채 전 총장은 사시 24회로 이 전 비서관(26회)에 비해 2년 먼저 합격했다.

채동욱-윤석열, 서울대 법대 & 특수통

채 전 총장은 서평의 간판 변호사다. 그는 2013년 4월 박근혜 정부 초대 검찰총장이 됐지만 그해 9월 국가정보원의 대선 댓글 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중 혼외자 논란이 불거져 불명예 퇴진한 바 있다. 검찰 내 특수통으로 정평이 나 있던 채 전 총장은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을 적극 지휘하고 나서 정권의 눈밖에 났다는 평가를 들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때문에 채 전 총장의 혼외자 논란이 불거진 게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한 바 있다.

검찰은 최근 채 전 총장 혼외자 의혹이 불거진 과정을 재조사했고, 지난 5월 1일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정보를 국정원에 넘긴 혐의로 서울 서초구청 임모 과장을 구속 기소했다. 지난 2013년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임씨는 재조사 과정에서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정보를 국정원 직원에게 전달한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 전 총장은 2013년 9월 검찰총장을 그만둔 이후 3년 이상 변호사로 활동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6년 말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서울지방변호사협회에 변호사 등록 신청 및 개업 신고서를 접수했고 2017년 2월 대한변호사협회 등록심사위원회가 그의 변호사 등록을 허가했다. 그러나 당시 대한변협 하창우 회장은 별도 보도자료를 내고 “사법정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국민의 사법 신뢰도를 저하하는 전관예우 악습을 근절하기 위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한 변호사 개업 신고를 철회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채 전 총장은 검찰 실세로 불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가까운 사이다. 그가 지난 2006년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있을 당시 윤석열 지검장은 물론이고 윤대진 서울중앙지검 1차장 등 현재 검찰에서 전도유망한 검사들을 휘하에 뒀다. 이들은 서울대 법대 선후배로 연결된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당시 채 전 총장은 윤석열 지검장을 특별수사팀장에 임명했으나 윤 지검장은 당시 지휘 라인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동의를 받지 않고 수사를 강행하다 결국 경질됐다. 2013년 10월 국정감사 당시 증인으로 출석한 윤석열 지검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에 “외압이 있었다”고 증언해 파문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후 윤 지검장은 한직을 맴돌다가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검찰 2인자 격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전격 임명됐다. 채 전 총장이 변호사 개업을 하고 나서 그와 윤 지검장의 관계가 재계와 법조계 등에서 재조명됐다.

이재순 전 비서관은 ‘서평’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지난 2005년 노무현 대통령 당시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 있으면서 당시 민정수석인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캠프 법률자문을 맡기도 했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이 전 비서관은 현 정부 들어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과 검찰총장 후보로 물망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여전히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에 기용될 가능성이 높은 법조계 인사로 손꼽힌다.

서평 개업 이후 서울중앙지검 형사 2부장 출신의 임수빈 변호사도 합류했다. 사시 29회인 임 변호사는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한 수사와 기소에 반대하다 2009년 1월 검찰을 떠났다. 그는 채 전 총장과 이 전 비서관의 서울대 법대 후배다. 이 전 비서관과는 지난 1995년 12·12와 5·18 특별수사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청와대는 지난 3월 임 변호사를 차관급인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에 내정했다가 철회했다. ‘PD수첩 검사’로 유명세를 탄 탓인지 그의 부위원장 내정 사실이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자 임 변호사 스스로 개인사정을 들어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서평 측 “의뢰인들 막 찾아온 건 사실”

최근 서평으로 사건이 몰리고 있다는 얘기는 법조계를 비롯해 야당 일각에서도 제기됐다. 실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효성그룹 조현준 회장,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 사건의 변호를 서평에서 일부 담당했다. 조양호 회장은 지난해 10월 회삿돈 30억원을 자택 공사비로 유용한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았으나 경찰이 두 차례나 신청한 구속영장은 검찰에 의해 반려됐다. 결국 그해 11월 조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는 마무리됐다.

조현준 회장은 지난 1월 200억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조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까지 받았지만 검찰은 끝내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핵심 연루자인 조 회장 측근 홍모씨의 경우 검찰이 신청한 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기도 했다.

이중근 회장은 임대주택 분양가를 부풀려 1조원대 부당이득을 챙기고 수백억원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지난 2월 구속됐다. 검찰 수사 초기 단계에는 이 회장의 혐의가 비교적 가볍게 치부됐으나 수사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까지 보태져 결국 구속을 면하지는 못했다.

서평은 또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뇌물수수 의혹 사건에 연루된 GS홈쇼핑 변호도 맡았다. 이와 관련 자유한국당 측에서는 “채 전 총장과 윤석열 지검장이 가까운 사이라는 말 때문에 GS홈쇼핑도 그런 관계를 고려해 (서평) 임수빈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긴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전직 검찰 고위 인사는 이와 관련 “의뢰인 입장에서 로펌을 선택할 때 검찰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윤석열 지검장과의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 전 총장은 또 지난해 7월 ‘최규선 게이트’의 장본인인 최규선씨의 횡령 사건에 선임계를 냈다가 “업무 처리과정의 실수가 있었다”면서 사임계를 제출했다. 그는 또 지난해 ‘황제출장’ 논란으로 물러난 방석호 아리랑TV 사장 사건에 변호인으로 이름을 올렸다가 나중에 이름을 뺀 적도 있다.

이재순 서평 대표변호사는 개업 후 사건 수임건수가 상당했음을 인정했지만 “과도한 수임료를 받은 사건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변호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몇몇 사건이 잘 처리되니까 여기저기서 막 찾아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억대 수임 건은 드물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가 맡을 수 없는 사건은 다 돌려보내고 있다. 채 전 총장에게 변호사 비용을 많이 주겠다며 찾아온 이들도 있지만 내가 중간에서 맡지 못하게 했다. 큰 사건은 서평이 직접 나서기보다 측면에서 컨설팅해주는 정도로 조력한 게 전부다. 3월 들어서는 작년에 비해 사건 의뢰 건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임수빈 변호사, 차관급 고사한 배경

현 정권 또는 검찰 고위층과 가까운 로펌이라는 평가에 대해 이 변호사는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정치적 사안이나 구설에 오를 만한 사건은 아예 맡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서평의 구성원 중에는 대구 출신 변호사도 있고 노무현 대통령 당시 ‘검사와의 대화’에 참석했던 변호사도 있다. 서평은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의 금품수수 의혹 사건을 수임한 바 있다.

검사 출신인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전화통화에서 “서평에 사건이 몰리고 있다고 들었다. 임수빈 권익위 부위원장 내정이 철회된 배경도 뒷말이 많았다”며 “검찰이나 법원에서 전관을 예우하는 것은 청산해야 할 적폐라는 지적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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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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