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마다 청년층과 장·노년층의 표심(票心)이 갈라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은 ‘세대’에 집중된다. 몇 년 전까지는 인구고령화와 장·노년층 보수화가 맞물리며 각종 선거에서 보수 진영이 유리해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유권자 4명 중 1명이 60대 이상인 ‘실버 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들어 보수가 우세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었다.

하지만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진보 진영이 잇따라 승리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 하락이 일차적 요인이지만 세대 대결 구도가 바뀐 영향도 컸다. 2012년 대선까지는 20·30 대(對) 50·60 구도에서 40대가 정치적 중간 지대였다. 하지만 세대 대결이 20·40 대 60·70으로 바뀌면서 50대가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50대가 보수 유권자 대열에서 이탈하면서 인구고령화로 인한 보수 우위 구도가 흔들린 것이다.

30년 전인 1987년 대선에선 20대와 30대 유권자 비중이 각각 30.4%와 24.6%로 30대 이하가 절반 이상이었다. 이들이 50·60대 장·노년층으로 변신한 2017년 대선은 50대(20.0%)와 60대 이상(24.4%) 유권자 비중이 44.4%로 절반에 육박했다. 인구고령화와 장·노년층 보수화가 결합됐다면 최근 선거에서 진보 진영이 불리했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50대의 탈(脫)보수화가 미친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역대 대선에선 직선제 개헌 직후인 1987년 대선부터 세대별로 투표 행태가 달랐다. 1987년 대선 당시 한국갤럽의 투표자 조사에서 20대와 30대는 김영삼·김대중 후보 득표율 합(合)이 각각 68%와 63%로 노태우·김종필 후보 득표율 합인 31%와 37%에 비해 두 배가량 높았다. 40대에선 양쪽이 50% 대 50%로 동률이었고, 50대 이상은 노태우·김종필 후보 득표율이 23%포인트 더 높았다. 1992년과 1997년 대선에서 뚜렷하지 않았던 세대 균열이 다시 나타난 것은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맞붙은 2002년 대선이었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20대와 30대는 노 후보와 이 후보 득표율이 각각 62% 대 32%, 59% 대 34% 등으로 노 후보가 두 배가량 높았다. 중간층인 40대에선 두 후보 득표율이 48%로 같았지만, 50대 이상은 이 후보(58%)가 노 후보(40%)를 크게 앞섰다.

52~58세가 승부처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가 경쟁했던 2007년 대선은 모든 연령층에서 이 후보가 일방적으로 우세했다. 이 후보와 정 후보 득표율은 20대(40% 대 19%), 30대(40% 대 28%), 40대(52% 대 29%), 50대 이상(61% 대 23%) 등이었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선 다시 30대 이하와 50대 이상의 세대 대결 구도가 재현됐다. 20~30대는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 비해 두 배가량 득표율이 높았던 것과 정반대로 50대 이상은 박 후보가 2~3배 더 높았다. 균형추 역할을 했던 40대에선 박 후보(47%)와 문 후보(53%)가 비슷했다. 하지만 2017년 대선은 40대의 정치 성향이 청년층과 비슷해지면서 40대 이하와 60대 이상의 대결로 구도가 바뀌고 중간층이 50대로 상향된 첫 대선이었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문재인 후보 득표율과 홍준표·유승민 후보 득표율 합은 20대(48% 대 21%), 30대(57% 대 18%), 40대(52% 대 19%) 등으로 문 후보가 20~40대에서 압도했다. 중간 지대인 50대(37% 대 33%)는 양쪽이 비슷했고, 60대 이상(25% 대 50%)은 홍·유 후보에 비해 문 후보는 절반에 그쳤다.

40대 이하와 60대 이상이 전혀 다른 성향의 그룹으로 각각 묶이고 50대가 완충지대 역할인 것은 유권자의 정치 성향을 파악하는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한국갤럽은 2017년에 거의 매주 전국 성인 1000명가량씩 총 4만7267명을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모든 연령대의 정치 성향을 파악했다. 이 자료에서 19세부터 51세까지는 각 연령별로 진보가 보수에 비해 11~35%포인트 높았다. 52세는 차이가 8%포인트로 좁혀졌고 54세부터 보수(35%)가 진보(34%)를 역전하기 시작했다. 이후 59세부터 80세까지는 보수가 진보에 비해 14~43%포인트 높았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10%포인트 내로 비교적 적은 52~58세가 승부처인 셈이다.

유권자의 각 연령별 정치 성향은 최근 10여년 사이에 급속히 바뀌었다. 2009년 미디어리서치의 전국 성인 1만명 대상 조사에서는 보수가 진보를 역전하기 시작한 나이가 44세였다. 당시엔 보수와 진보 차이가 10%포인트 이내였던 연령대가 40~48세였다. 40대가 선거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2009년의 40대와 2017년의 50대는 대부분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생 또는 사회 초년생으로서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이른바 86세대다. 이들은 전후(戰後) 산업화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 등이 50대가 되면 젊은 시절과 다르게 보수 성향이 전반적으로 강해진 것과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다. 86세대는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되는 경향과 과거의 진보 성향으로 유턴하는 경향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지금의 50대(1958~1967년생)는 20대였던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김종필 후보 지지가 31%였고, 30대였던 1997년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 지지가 35%에 그쳤다. 40대였던 2007년 대선에선 이명박 후보 지지가 48%로 상승했지만 2017년 대선에선 홍준표·유승민 후보에 대한 지지가 33%에 머물렀다. 20~30년 전 젊은 시절의 투표 성향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현재의 50대는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선 진보 후보,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선 보수 후보를 지지했지만 지난해 대선에선 다시 진보 쪽 지지가 다소 우세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1997년 이후 대선에서 86세대인 50대의 표심을 잡은 쪽이 모두 승리했다”며 “6월 지방선거도 50대 표심이 승패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했다.

연령 효과 vs 세대 효과

현재의 60대 이상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회·정치적으로 보수적 태도가 강해지는 현상을 연령효과(age effect)라고 한다. 물질적 부의 축적, 사회경험을 통한 권위주의 성향 강화 등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있다. 반면 86세대인 50대처럼 특정한 사건을 경험하면서 형성된 그 세대만의 특성이 잘 변하지 않는 현상을 세대효과(cohort effect)라고 한다. 1930년대 초반 젊은 시절을 보낸 미국 ‘뉴딜 세대’, 1968년 프랑스 학생운동에 영향을 받은 유럽의 ‘68 세대’ 등이 세대 효과를 설명하는 대표 사례다. 최근엔 40대의 강한 진보 성향도 주목을 받는다. 20대에 경제위기를 겪은 IMF 세대(1968~1977년생)인 이들은 현재의 20·30대 못지않게 진보 성향이 강하다. 과거의 40대가 중도 성향이 강하고 각종 선거에서 균형추 역할을 했던 것과 다르다. 이들은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52%)가 홍준표·유승민 후보 지지(19%)를 압도했다.

하지만 선거 전문가들은 “각 세대의 성향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속단하긴 어렵다”고 한다. 과거와는 다르게 20대가 북한과 통일 이슈에 대해 냉정한 것도 향후 세대 구도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바뀌었는가’란 질문에 20대는 ‘변화 없다’가 55%로 ‘좋아졌다’ 40%보다 많았다. 반면 3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다른 연령층에선 ‘좋아졌다’가 60~70%로 다수였다.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이 특성인 20대는 낮은 투표율로 인해 정치권에서 크게 관심을 뒀던 세대는 아니다. 하지만 20대 투표율은 최근 들어 상승하고 있다. 2017년 대선에서 20대 투표율은 74.1%로 5년 전 대선의 68.5%보다 7.6%포인트 높아져서 40대의 74.9%와 비슷했다. 이런 추세라면 20대를 더 이상 정치 무관심 세대로 분류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양훈 칸타퍼블릭 이사는 “2007년 대선에서 20~30대도 이명박 후보에게 지지가 쏠렸던 것처럼 세대별 성향이 고정된 것은 아니다”며 “각 정당은 특정 연령대가 언제까지나 우군(友軍)일 것이라고 맹신할 수 없다”고 했다.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각 정당도 이에 대응한 합리적 정책을 내놓는 등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지연 케이스탯 대표는 “저성장이 장기화되면서 유권자들이 정치 보다 경제 이슈에 민감해지고 있다”며 “각 세대별로 필요한 정책을 제시하는 쪽으로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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