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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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지난 6·13지방선거에 녹색당 후보로 나선 신지예(28) 오늘공작소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로 떠오른 정치 신인이다.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에 이어 1.7%를 득표했다. 역대 최연소 광역단체장 후보가 처음 나선 선거에서 약 8만3000표를 얻은 것이다. 지난 6월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오늘공작소에서 신 대표를 만나 그가 보는 이번 지방선거의 의미와 녹색당의 미래를 물었다.

1990년생으로 인천 출생인 신 대표는 3D프린터를 제작하는 오늘공작소라는 청년기업을 2013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2016년부터는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안학교를 졸업해 사회에 진출한 후 고려사이버대에서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했다.

신 대표는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선거에서 시민분들께 많은 응원을 받아 페미니스트의 한 사람으로 기쁘다”면서도 “많은 시민들을 충분히 못 만나고 다닌 것 같아 한편으론 아쉽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정치인들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준 건 이번에 녹색당이라는 작은 군소정당이 이룬 성과”라며 “이제는 정당도 바뀌고 정치도 바뀌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바람이 투표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페미니즘을 간판으로 내건 이유가 무엇인가.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성평등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번 지방선거 당선자 중에서도 여성 광역단체장은 한 명도 없었고, 기초단체장이 3.5% 수준이다. 구의원 쪽으로 넘어가면 20%까지 올라가지만 이 비율도 굉장히 낮다. 여성들이 남성과 평등하게 동등한 지위에서 사회활동이나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2년 전 강남역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등으로 인해 여성들의 일상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해 있다. 그렇다면 정치권이나 행정부에서 그들의 공포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 답과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녹색당이 지향하는 다른 수많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세계 녹색당이 공유하는 6개의 공동 헌장에 성평등이 명시돼 있다. 세계 녹색당 총회에서도 정기적으로 여성 의원들, 당원들 회의가 있고 따로 개최되기도 한다. 페미니즘과 성평등이 각 나라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녹색당이 활동하고 있다. 독일녹색당 창당 주역이자 ‘녹색당의 전설’로 불리는 페트라 켈리는 성평등을 전면적으로 내걸고 싸운 페미니스트다. 그만큼 녹색당의 뿌리는 페미니즘과 밀접하다.”

-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게 된 계기는.

“특히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정치와 개인의 일상에 대한 괴리감이 커지고 있다. ‘정치가 내 삶을 바꿔주지 못한다’는 분노가 커지는 것이다. 그걸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개인의 일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페미니스트가 정치를 한다면 여성들이 겪는 고통이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드리고 싶었다.”

“녹색당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신지예 대표는 “녹색당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냥 녹색당”이라며 “기존의 정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유일의 정치공동체인 녹색당은 전 세계 100여개 녹색당과 연대해 5년마다 총회를 열면서 헌장들을 새로 채택한다”는 설명이다. 신 대표에 따르면 세계의 녹색당은 전 지구적 녹색당 차원에서 공동 목표를 채택하고 결의문을 만든 후 결의문을 5년 동안 각 나라에 적용하며 정책으로 풀고 실현시킨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아시아태평양지부에 있는 녹색당들과의 연대가 활발한데,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태 이후 일본 녹색당과 탈핵 연대를 해왔다고 한다. 대만 녹색당도 우리의 6·13지방선거에 관심이 많아 대만 매체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는 것이 신 대표의 설명이다.

- 전 지구적 연대와는 거리가 먼 다른 기성정당에 비해 녹색당이 갖는 장점은 무엇인가.

“아태 지역은 아직 나라별로도 잘 안 되고 있지만 유럽 같은 경우는 EU가 작동하다 보니까 녹색당이 갖는 파워가 굉장히 크다. EU 안에서 녹색당 의원들이 배출되면 세계의 녹색당들이 함께 정책을 만들어 실현하기도 한다. 탄소배출량을 얼마 정도 줄일 것이냐, 탈핵 정책을 어떻게 입안할 것이냐 등의 논의를 할 때 EU 각국의 녹색당이 힘을 발휘한다.”

- 교류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나.

“세계 녹색당 지부는 크게 네 개로 나눠져 있다. 미주 녹색당, 유럽 녹색당, 아프리카 녹색당, 아시아태평양 녹색당이다. 전 세계 녹색당이 돈을 모아 세계 녹색당을 운영하고 지부별 녹색당도 따로 존재한다. 각 지부에서 논의하는 결정과 정책, 활동이 상위층으로 올라간다. 일방적으로 명령이 하달되는 식은 아니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새로운 지역에서 녹색당이 창당될 때 각국에서 돈을 모아 돕기도 한다. 독일 등 녹색당이 원내에 진출해 있는 나라의 의원실에 우리 녹색당 회원들이 들어가 인턴십 경험을 하는 등의 교류도 한다.”

- 한국 녹색당의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아태 지역 녹색당의 상황은 좋지 않다. 대만 녹색당은 반으로 쪼개지고 일본 녹색당은 당원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이다. 한국 녹색당의 지위는 낮지 않다. 당원들도 좀 있는 편이고(지난 6월 20일 기준 1만100명), 당비만으로 6년을 버텼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에 있는 아태지부를 한국에 옮겨오는 논의를 하고 있다. 2023년 세계 녹색당 총회가 한국서 열릴 가능성이 높다.”

- 한국 녹색당이 정책을 만들거나 실행하려면 세계 차원에서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 건가.

“승인까진 아니지만 공동의 헌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예컨대 낙태죄 폐지에 대한 입장은 이미 세계 녹색당 차원에서 결정된 게 있다. 탈핵, 탈석탄에 대해서도 공동 기조가 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난 정책들을 만들진 않는다.”

“거대정당 여성·청년 발탁 방식 바꿔야” 신 대표는 6·13지방선거에 참패한 보수진영이 “정치 신인을 키우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에 대해 “공감한다”며 “공천 시스템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좌우 가리지 않고 거대정당들이 청년이나 여성을 호명·발탁하는 방식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본다. 거대정당은 주로 선거 때면 ‘우리 당은 혁신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여성·청년을 발탁하곤 했다. 그 안에서 여성·청년들이 제대로 줄타기를 못 하면 공천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군림해서 여성·청년을 공천하고 간택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성 정당이 청년을 발탁하는 것이 아니라 당내에서 실질적 리더로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 녹색당은 어떻게 후보를 선정했나.

“녹색당은 아예 공천 시스템이 없다. 당내에서 후보가 나오면 전 당원이 투표해서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까 청년들이 쉽게 후보로 나올 수 있다. 정당한 후보운동, 예를 들면 토론이나 정책발표를 통해서 당원분들께 자신을 알린 뒤 총투표를 통해 후보를 결정했다.”

- 공천 문제 말고도 청년 정치인의 등장을 막는 다른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선거법 문제도 중요하다. 대표적으로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광역단체장 후보는 5000만원, 국회의원은 1500만원을 기탁금으로 내야 한다. 선거운동비까지 고려하면 청년들에게는 한계가 많다. TV토론도 그렇다. 유권자들이 그 후보를 알고 정책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데 30일 전 여론조사를 통해 TV토론에 나갈 수 있는 문턱을 세우니 정치 신인들이 자기를 알릴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기탁금이나 TV토론회 같은 것은 민주주의가 잘 돌아가는 나라에선 거의 없다. 미국, 캐나다는 기탁금이 아예 없고 네덜란드는 국회의원 선거 기탁금이 16만원이다. 누가 수천만원씩 내고 선거에 나오려고 하겠나. 여기에 거대정당들은 심사비, 공천비도 있다. 그런 데서부터 문턱을 낮추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기탁금이 없으면 후보 난립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 않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후보가 난립하는 건 단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많은 시민들이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마크롱이 당선됐던 프랑스 대선에서는 대선후보 TV토론에 10명이 넘는 후보가 나왔다. 후보자 난립이 어떤 의미인지도 다시 생각해봐야겠지만, 난립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건 아니다. 기술이 많이 발전했고 유권자들의 의식도 상승했기 때문에 다양한 선택권을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후보자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 대표는 지방선거 직후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유한국당을 가리켜 “소멸할 정당”, 녹색당을 가리켜 “커갈 정당”이라고 지칭했다. 그렇게 말한 근거에 대해 묻자 그는 선거 직전 JTBC의 여론조사 결과를 얘기했다. “그 여론조사에서는 학생, 20대만 따로 조사한 게 있었는데 거기서는 자유한국당과 김문수 후보를 녹색당이 모두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 유권자들이 나이 듦에 따라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촛불혁명을 거친 세대는 이제 진보냐 보수냐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유한국당이 펼치는 정치를 보수적이라기보다는 되게 ‘올드한 코미디’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그걸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고 본다. 반면 민주당은 이제 보수 정당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다.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한국 사회의 굉장히 뿌리 깊은 문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흐름도 10대 후반, 20대 초반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 민주당이 보수 정당이라고 보나.

“그렇다. 나는 민주당이 보수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진보 정당들이 탄생할 때가 됐다. 녹색당은 기존의 정당 흐름으로는 잡히지 않던 새로운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어디 가면 저희를 보고 진보 정당이 아니라고 욕하는 경우도 많다.(웃음)”

- 서울시장 후보 공약으로 내세운 기본소득이나 성평등 정책은 ‘성장이냐 분배냐’로 나누면 분배 쪽에 방점을 둔 정책 아닌가.

“기본소득의 경우 해석의 여지가 굉장히 많고 다른 나라에서 보면 우파 정당들이 많이 채택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실업급여를 없애거나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 등에서 여러 방법론이 있다. 기본소득은 우파 좌파 가릴 것 없이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채택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다.”

신 대표는 “2020년 총선에서 원내 진입하는 것이 녹색당의 목표”라며 “일반적으로 선거법이 새로운 정당에 유리한 나라에서 녹색당의 원내 진입이 창당 후 4년,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 7년 걸렸다”고 말했다. 2012년 창당한 한국 녹색당으로서는 2020년 총선이 창당 8년이 되는 해다.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3위를 한 고은영 후보를 포함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아주 매력적이고 참신한 후보들이 발굴됐다. 그분들이 2년 동안 지역에서 잘 성장하고 정책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다음 총선 때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을 낼 거고 좋은 후보, 좋은 정책을 마련해 원내로 진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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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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