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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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50% 선 아래로 내려갔다는 조사가 잇따랐다. 80%를 넘나들던 지지율이 두 달 넘도록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하는 것을 보면서 일반 유권자보다 대통령 지지율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 인사들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필자가 머릿속에 들어가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이런 생각들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참모 A씨. ‘대통령 지지율 50%가 무너졌다는 보도가 있던데 지지율이야 늘 오르다 내리는 것 아닌가? 그래도 50% 밑으로 떨어졌다는 건 심각한가? 12월에 김정은 위원장 답방만 성사되면 다시 반등한 채 올해를 마감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도대체 왜 떨어지는 거지? 언론에선 ‘이영자(20대·영남·자영업자)’가 문제다, ‘주부’에서 낙폭이 제일 크다, 그러던데 뭐가 문제인지 사실 잘 모르겠네. 요즘 청와대 주변이 시끄럽지만 과거 정권들에 비하면 잘하고 있는 것 아닐까. 사소한 것 갖고 흔들리면 안 되는데.’

여당 의원 B씨. ‘대통령 지지율 덕에 여유 있게 한 해를 보냈는데 연말이 가까울수록 심상치 않군. 그래도 당 지지율보다 대통령 지지율이 높잖아. 우리가 야당과 대립각을 더 강하게 세워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요즘 청와대 특감반 비위 문제나 직원 음주운전 같은 게 터지니까 문제야. 그런 문제에는 당도 제목소리를 내야 하는 건가? 아니지, 다 적전(敵前) 분열로 비쳐지고 대통령 힘 빠졌다는 소리가 나오게 만들 텐데, 일단 무조건 힘을 합쳐서 가야 해. 이재명 지사 문제도 그렇고 이러다간 조기 레임덕 이야기까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지. 당내에서 분란 목소리가 나오지 말아야 할 텐데.’

야당 의원 C씨. ‘결국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별수 있나. 북한 하나에 매달려서 지지율을 지키려 하는 게 문제 아닌가? 그렇게 적폐 적폐 하더니 요즘 보면 문재인 정부야말로 적폐스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그나저나 대통령 지지율이 저렇게 속절없이 떨어졌는데 왜 우리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거야? 여론조사가 잘못된 거 아냐? 어쨌든 우리에게 기회가 오겠지. 이대로 계속 가면 총선에서는 해볼 만한 판이 되지 않을까? 보수 대통합만이 살길인데 왜 빨리빨리 결심들을 못 하는 거야?’

호남 야당 의원 E씨. ‘호남에서 대통령과 민주당 인기가 확실히 꺾이고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우리당 지지율은 오르지 않는 거지? 그래도 여당 지지율이 낮아지면 질수록 우리한테는 유리한 판을 만들 확률이 높아지니까, 이참에 선거구제 개편을 고리로 강하게 여당을 압박해서 호남에서 살아갈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의당 의원 F씨. ‘이번 기회에 정의당만이 진정한 진보임을 확실히 알려야 하는데. 그동안 민주당 그늘에 가려서, 적폐 보수 청산을 위해 대의를 모아야 한다는 ‘대세론’ 때문에 우리 당 가치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는데 문 대통령과 민주당 기세가 꺾이면 기회가 올 거야. 선거구제 개편 연대에 참여하고 진보노선을 확실히 해야 해.’

지지율 추락에 대한 천수답식 해석들

이런 식의 상상까지 해본 것은 대통령 지지율을 둘러싼 논란을 보고 있으면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다. 지지율이 하락한 문재인 대통령보다 정치권 쪽이 더 답답하다. 대통령 지지율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이 꼭 하늘에서 비 내리기만 기다리는 천수답 농사를 닮아 그렇다. 역대 정권들은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할 때마다 매번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궁금해서 뉴스를 검색해봤다.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한 날, 문 대통령 지지율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이 한 말도 정확히 같았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그런데 대통령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말은 청와대가 아니라 정당에서 나와야 정상 아닐까. 여당은 집권세력으로 대통령과 정부가 하려는 일을 돕고 조력하는 관계지만 장기적으로는 다음 총선,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자생력 있는 집단’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지지율과 인기에 기대 마냥 살아갈 수 없는 처지라는 뜻이다. 집권당 처지에서 정권,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함께 받는 입장이긴 하지만 대통령 없이도 국민이 지지할 만한 정치세력으로 서야 ‘차기’가 확보되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진 대선 재집권 성공 사례를 보면 결국 차기 후보가 여권 내에서 독자적인 힘과 세력을 얻은 경우에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현직 대통령의 인기나 지지도가 차기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수세 국면이 도래했다고 해서 무조건 대통령과 정부를 옹호하고 야당과 대결구도에 올인하는 것이 집권당의 역할이라면 ‘여당 지지율’은 무의미해진다. 대통령이 잘되면 정권 재창출이 가까워지고 지지율이 하락하면 반대가 되는 것일까. 대통령 지지율 그늘에 숨어 자당(自黨) 지지율엔 별반 관심이 없는 집권당에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야당은 더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30%포인트 가까이 하락하는 동안 야당 지지율은 제자리거나 (후하게 나온 조사결과를 인용해도) 10%포인트 정도 상승하는 데 그쳤다. 경제가 최악이므로 문재인 정부에 대해 국민이 낙제점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여론조사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지금 경제 상황을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누구라고 보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가정해보자.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라는 선택지를 주었을 때 과연 야당이라는 응답이 몇 %나 나올까?

절대평가 방식의 대통령 지지율에 기대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는 야당의 현실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요즘 흔히 쓰는 말로 ‘노답’이다. 야권 내에서도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보면서 ‘우리가 잘해서 야당 지지율이 오른 게 아니다’라는 해석이 있는 걸 보면 모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야당) 지지율이 아니라 남(대통령)의 것만 들고 외치는 야당 정치가 하늘에서 비 오기만 기다리는 천수답 농사와 뭐가 다른가.

청와대는 일희일비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론의 변화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이 대통령과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에 부정적 반응이 커졌다는 것은 어느 지점에서인가 균열이 커졌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인기는 전임 대통령과 대비되는 ‘소통정치’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들조차 집권 초 적극적인 소통에 나선 문 대통령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고공 지지율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불통’으로 가는 ‘소통정치’

경기침체와 일자리 만들기 성과 부족을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진단하든, 최근 불거진 몇몇 청와대 주변의 일탈·비위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분석하든 그런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과 대안을 내놓고 국민을 설득하거나 적어도 설명하는 모습은 보여야 ‘소통 대통령’에 어울린다. 더 기다리면 소득주도성장정책 효과가 나타날 것이니 기다리면 되고, 주변 문제는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지켜보면 된다는 식의 정치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비판하던 전임 정권의 ‘불통’ 모습에 더 가깝다.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말은 무겁다. 당장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신념과 철학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뜻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왜 이 정책 방향이 옳고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가는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결과의 중요성만큼 과정도 중요하다. 다수 국민이 원하는 방향을 파악해 그에 따라 정책 방향을 수정하든, 당장은 지지율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신념에 따라 설정한 개혁을 끝까지 밀고 가든 선택은 자유지만 무언가 설명은 해야 하는 것이다.

취임 후 최저치라고 요란스럽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그렇게 낮은 수준이 아니다. 최근 48~53%(조사기관에 따라 다르다)라는 집권 1년6개월 차 국정지지도 절대 수치가 그렇다는 뜻이다. 12월에 대선이 열리고, 2월 말 새정부가 출범하던 것이 지난 탄핵대선으로 5월 출범으로 시점이 바뀌었다. 문 대통령의 지난 11월 말 국정지지도는 전임 대통령들의 경우 집권 다음해 8월 말 혹은 9월 초 지지도와 비교해야 한다.(취임 후 1년 반 시점) 박근혜 전 대통령의 1년 반 시점 지지율은 2014년 8월 4주차 기준 한국갤럽 45%, 리얼미터 52.3%였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과 비교해 ‘콘크리트 지지층’ 별칭을 얻었던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그렇게 높지 않았던 것이다.

추세와 낙폭이 문제다

그런데 왜 유독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큰 이슈가 될까. ‘추세’와 ‘낙폭’ 때문이다. 전임 대통령들에 비해 높게 치솟았던 ‘고점’ 지지율이 80%를 넘겼다가 50% 가까이 혹은 그보다 더 떨어졌으니 지지율 하락 폭이 크게 보일 수밖에 없다. 또한 과반 지지율 붕괴가 처음 나타난 현상이고, 두 달 이상 지속 하락하면서 내려앉은 수치이기 때문에 ‘뉴스’가 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중요한 고비에 도달한 것 같다. ‘레임덕’이라는 단어가 대통령 임기 2년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등장했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2월 5일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 레임덕이 시작됐다”고 단언했다.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 ‘레임덕’ 상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지지율 수치를 갖고 레임덕 여부가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지지율이 낮아져도 여전히 많은 국민이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으면 지지율은 다시 올라갈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성사되더라도 지지율이 반짝 상승에 그칠 수 있고, 경제가 기대만큼 안 풀려도 제대로 된 방향에서 노력한다는 국민의 믿음이 있으면 지지율은 견고해질 수 있다.

진짜 레임덕은 국민이 더 이상 대통령을, 대통령의 말을 믿지 않기 시작할 때 시작될 것이다. 지지율 50%가 무너진 것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여전히 대통령의 선의와 의지를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되는지, 국민의 신뢰를 유지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갖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지금 청와대가 할 일이다. 국정성과는 최종적으로 현직 대통령의 퇴임 후에나 정확한 성적표가 나온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국민과 얼마나 제대로 된 소통의 정치를 펴나가느냐가 아닐까.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남의 지지율이 오르고 내리는 것 가지고 잔칫상을 차릴지 말지 고민하는 정당에 국민이 얼마나 기대와 지지를 보낼 수 있을까. 내 농사는 안 짓고 남의 농사 망하기만 기대하는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나라 안 모든 주체 중 ‘정당(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가장 낮은 것이다.

이상일 입소스코리아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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