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4일 치러진 대만 중간선거 결과 ‘신삼민(新三民)’이 등장, 대만의 앞날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했다고 홍콩에서 발행되는 중국어 시사주간 아주주간(亞洲週刊)이 12월 9일자로 보도했다. 전 세계의 화교들을 주 독자로 하는 아주주간은 베이징(北京) 편도, 타이베이(臺北) 편도 들지 않는 중립적인 태도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매체다.

아주주간이 말하는 대만 ‘신삼민(주의)’의 등장은, 전통적으로 민주진보당(民進黨)의 가장 중요한 지지 기반인 남부 가오슝(高雄)시 시장 선거에서 민주진보당이 대만 정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1996년 이래 최초로 국민당 후보 한궈위(韓國瑜·61)에게 패한 배경 설명으로 제시한 것이다. ‘삼민주의’는 2100여년의 중국 왕조사를 끝내고 1912년 최초의 국민국가인 중화민국(中華民國)을 수립한 주역 쑨원(孫文)이 제시한 ‘민족, 민생, 민권’을 국가의 최대 정책목표로 삼는다는 이념이다.

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이 공통으로 ‘국부(國父)’라고 인정하는 쑨원은 100여년 전 자신이 제시한 삼민주의를 실천하는 방안으로 ‘물자의 왕성한 유통, 자원의 최대한 활용, 인재의 최대한 활용(貨暢其流 物盡其用 人盡其才)’을 내세웠다. 가오슝에 전혀 정치기반이 없어 공천한 국민당조차도 ‘버리는 카드’로 계산했던 한궈위는 이번 선거 구호로 삼민주의를 현대적 용어로 풀이한 ‘물자는 수출할 수 있어야 하고, 인재는 받아들여야 하며, 중요한 것은 돈을 버는 것(貨出去 人進來 發大財)’을 제시해 국민당이 예상하지 못한 대승을 거두었다. 한궈위는 가오슝 전체 선거인 수 228만1338명 가운데 73.54%가 투표한 11월 24일 지방선거에서 유효 투표수의 53.84%인 89만2545표를 확보해서, 44.80%인 74만2239표를 얻은 민주진보당 천치마이(陳其邁) 후보를 15만표 이상 따돌리고 승리했다. 한궈위의 소속 정당인 국민당조차도 당초 ‘30만표 차이 이상의 패배’를 예상했었는데 엄청난 반전이었다.

한궈위의 승리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지난 11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2016년 5월 당선된 이래 양안의 평화발전이라는 정치기초를 파괴하고, 대만 독립이라는 양안 분열 활동을 지지하며, 양안 민중들 간의 교류와 협력을 제한해서 ‘하나의 중국’을 두 개의 국가로 분리하자는 ‘양국론(兩國論)’을 내세워 양안 간의 적대감정을 고양시키며 대만 동포들의 이익에 엄중한 손해를 끼쳐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민진당은 대만 독립의 입장을 버리고 양안 간 평화발전의 정확한 길로 되돌아오라”고 촉구했다.

대륙의 수도 베이징에 특파원을 두고 있는 우리 미디어들은 약 1800만명의 유권자가 특별시와 현급 시의 시장 및 시의원을 비롯해 9개 분야 1만1130명에 달하는 공직자를 한 번에 선출하는 이번 ‘구합일(九合一)’ 선거에 대부분 현장 취재기자를 파견하지 않았다. 우리 미디어들은 대부분 가오슝시를 비롯해 22개 지역 선거에서 15명의 국민당 후보가 압승을 거둔 이유에 대해 “대만 민심이 대만 독립보다 하나의 중국을 선택한 결과”라고 전했다. 그런 분석은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의 진단과 같은 흐름의 결론이다.

그러나 아주주간은 한궈위 후보가 정치보다는 경제를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과, 농어민 권익 보호, 기업과 정권의 우호적인 관계 정립, 혁신의 중시 등을 내세우며, 무엇보다도 양안관계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가오슝의 가치’와 ‘대만의 가치’를 상승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에 가오슝 시민들이 지지를 보냈다고 진단했다. 한궈위는 선거 과정에서 “국민당을 상징하는 남색(藍色)과 민진당을 상징하는 녹색(綠色) 진영 간의 ‘남록지쟁(藍綠之爭)’은 이제는 신물이 난다”면서 더 이상 국민당과 민진당 간의 투쟁으로 대만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만의 내각도 그 출신이 남색(국민당 출신)이냐, 녹색(민진당 출신)이냐를 기준으로 선발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전문성과 자질을 갖추고 있으며, 열정을 갖고 있느냐”는 3개항만을 기준으로 발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가오슝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대만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이 분열해서 내전을 치르기 이전 쑨원이 건립한 중화민국을 양안 간의 국체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그는 실제 선거과정에서 중화민국 국기인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를 흔들었고 ‘산천은 장려(壯麗)하고, 물산은 풍성하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국기가를 선거운동원들에게 부르게 했다. 이 점이 가오슝 시민들의 정서에 맞아떨어진 것이다. 아주주간은 한궈위 후보가 통일문제에 관해서는 “나는 중국인이며, 대만 사람들도 모두 중국인이다”라면서도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자신들만이 ‘중국’이라면서 대만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라고 하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라는 논리를 편 점이 역사적으로 국민당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가오슝 시민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고 분석했다.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의 주장처럼 “대만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라는 주장을 대만 사람들이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대만과 대륙은 하나의 중국에 두 가지 표현(一中各表)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었다.

한궈위는 특히 “세계 3대 항구의 위치에까지 올라갔던 가오슝이 중국 경제의 부상과 대만 민주진보당의 분리독립 추구로 경제가 피폐해지면서 세계 12대 항구에도 겨우 끼이는 처지가 됐다. 가오슝의 영광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도 득표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한궈위는 자신의 전공인 ‘농업’ 분야에서도 대륙의 기업들이 농산물 품질 향상과 포장, 물류 방면에서 대만을 앞서면서, 대만 농산물 수출이 위축된 점을 개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농산물 분야에서 대만과 대륙이 윈윈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해 많은 가오슝 농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또한 그는 ‘ABC 방안’이라는 농업 분야 활성화 방안을 제시, “대륙이 현재 앞서가고 있는 인공지능, 블록체인,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대만과 대륙이 상호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서 환영을 받았다.

한궈위 후보가 전통적인 민진당 지지 기반 가오슝에서 15만표 이상의 압승을 거둔 배경은 결코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라는 베이징 주장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은 각자의 대표권을 가지고 윈윈협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기 때문이라는 것이 아주주간의 분석이다. 아주주간은 “한궈위의 주장은 ‘한궈위 주의’로 자리매김되어야 하며 쑨원의 삼민주의의 새로운 판본으로 자리 잡아 대만의 운명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승준 아시아 리스크 모니터 중국전략분석가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