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에 참가한 미군 블랙호크 헬기. ⓒphoto 뉴시스
2017년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에 참가한 미군 블랙호크 헬기. ⓒphoto 뉴시스

북한 내 핵시설 사찰 요구가 거셌던 1992년 1월 한·미 양국은 ‘팀스피리트(Team Spirit)’ 훈련 중단을 발표했다. 팀스피리트는 한때 서방세계 최대의 야외 기동훈련으로 불릴 만큼 대규모 연합훈련이었고, 그만큼 북한이 강력 반발해왔던 존재였다. 당시 한·미 양국은 대화 국면 조성을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해 같은 달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시설 사찰을 수용한다는 ‘핵안전 협정’에 서명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한·미 양국은 1년 뒤인 1993년 1월 팀스피리트 훈련을 다시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대한 추가 사찰 요구를 거부하는 등 비협조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같은 해 3월 1991년보다는 축소된 규모로 팀스피리트 훈련이 재개됐고, 훈련 기간 중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했다. 1차 핵위기였다.

줄다리기 끝에 북한이 1994년 2월 IAEA 핵사찰을 수용하기로 하자 한·미 양국은 그해 3월 다시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을 발표했다. ‘IAEA 사찰이 성공적으로 완료되고 남북한 특사 교환을 통해 핵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협의가 이뤄진다는 전제 아래 올해 팀스피리트 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는 조건부 중단이었다. 그해 10월 미국과 북한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본 합의문(Agreed Framework)을 체결하면서 한·미 양국의 팀스피리트 훈련은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한·미는 팀스피리트 훈련 때보다 축소된 병력과 장비로 RSOI(전시 증원연습)라는 연습을 실시키로 했다. 이는 전면전이 발생할 경우 대규모 미 증원전력이 한반도에 배치되는 상황에 대비한 훈련이었다. 상륙훈련 등 대규모 야외 기동훈련은 ‘독수리 훈련(Foal Eagle)’에 통합됐다. 독수리 훈련은 원래 북한 특수부대의 후방침투에 대비한 것이었는데 확대된 것이다. 군 소식통은 “당시 팀스피리트가 폐지됐지만 RSOI와 독수리 훈련에 통폐합돼 실제 훈련 축소는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는 독수리 훈련이 RSOI와 통합돼 실시됐다. 2008년부터 RSOI의 명칭이 ‘키리졸브(Key Resolve)’ 연습으로 변경됐고, 연습 성격과 규모도 확대됐다.

1992년과 1994년의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논란을 초래했는데, 최근 1990년대 초와 비슷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정부와 군 당국이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 폐지에 이어 을지프리덤(UFG) 연습 폐지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른바 3대 한·미 연합훈련이 모두 폐지되는 전례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군 당국은 대신 “한·미 연합 방위태세에 문제가 없도록 대체 훈련이나 보완책을 마련토록 했다”고 밝히고 있다. 키리졸브 연습의 경우 ‘동맹’ 연습으로 명칭을 바꿔 지난 3월 4일부터 12일까지 실시했다. 연습 기간이 종전 2주에서 줄어든 것이다. 연습 성격도 종전 ‘반격’ 부분이 빠지고 방어 위주로 실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독수리 훈련은 연대급 이상은 한·미 양국군이 각자, 대대급 이하는 양국군 연합훈련으로 실시키로 했다. 이에 따라 매년 연대~여단급 이상으로 실시되던 대규모 연합 상륙훈련(쌍용훈련)도 대대급 이하로 축소됐다. 더구나 올해엔 한국군 단독으로 실시될 것으로 전해졌다.

UFG의 경우 정부 부처들의 전시 대비 훈련인 ‘을지연습’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프리덤가디언’이 분리된다. 우선 을지연습을 떼어내 한국군 단독 지휘소 연습인 ‘태극연습’과 통합하여 ‘을지태극연습’으로 오는 5월 실시키로 했다. 적 공격에 대비한 군사훈련 외에 테러, 대규모 재난 대응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안보 개념을 적용하는 연습이 될 것이라고 한다.

병력과 장비 기동 없이 실시되는 지휘소 연습인 ‘프리덤가디언’은 한·미 간 협의를 통해 명칭을 바꿔 하반기 시행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연합훈련 중단 상황이 1990년대 초의 일시적 훈련 중단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1990년대 초엔 훈련 중단이 한시적이었고 바뀐 훈련이 실효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비핵화 협상이 장기화돼 현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돈 문제를 따지며 워낙 한·미 연합훈련에 부정적이어서 대규모 훈련이 부활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것이다. 한 전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예비역 육군대장)은 “지금 본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은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훈련 중단에 반대하며 매달리기라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내심 반기는 듯한 기류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예비역 장성은 “훈련 안 하는 군대는 필요가 없다며 군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 올 수 있는, 남북 군사합의 이상으로 심각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 한·미 동맹이 훈련도 하지 않는 허울뿐인 군사 동맹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 소식통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한·미 동맹은 사실상 형해화할 것”이라며 “대규모 훈련 중단이 계속되면 주한미군 주둔 근거까지 흔들릴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민국수호예비역 장성단도 성명서를 통해 “훈련 없는 연합 방위 태세는 허수아비 동맹”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군 당국이 밝힌 지휘소 연습이나 대대급 이하 연합훈련으로 종전처럼 실전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점, 키리졸브 및 UFG 폐지로 대규모 미 증원군 한반도 전개를 상정한 훈련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점으로 꼽힌다.

미국 의회에서도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결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상원 군사위 민주당 간사인 잭 리드 의원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실제 위기 시에 훈련 부족으로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몇 달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기간 이상으로 (훈련 중단이) 연장되면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로저 위커 공화당 상원의원도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결정은 실수”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헨리 올슨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북한에 값진 협상 카드를 아무런 대가 없이 준 잘못된 결정”이라고 했다.

대규모 연합훈련 폐지에 따라 전작권(전시 작전통제권) 전환 검증을 위한 연습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 전작권 전환이 졸속으로 부실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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