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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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하노이 미·북 회담 결렬 이후 ‘대북제재’가 다시 화두에 올랐다. 김정은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했듯 북의 비핵화를 앞당길 수 있는 방안은 ‘제재’밖에 없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다급한 김정은에 비해 ‘어차피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생각이 워싱턴에 번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진정성을 의심한 미국은 더 강력한 대북제재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성민(57)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34살 때 탈북한 후 1999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다. 자유북한방송은 대북 라디오 방송과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위성폰과 이메일 등으로 북한 내부 소식통 수백 명과 연락한다. 국내의 북한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정보기관에서도 그에게 자문을 구할 때가 많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 내부가 궁금해 지난 3월 13일 서울 발산동 자유북한방송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북한 주민들은 이번 미·북 회담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나. “작년 싱가포르 미·북 회담 때만 해도 북한 사람들은 ‘김정은이 완전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이번 회담에서 못해도 인도적 지원이나 부분적 제재 완화 정도는 가져올 거라고 본 것 같다. 평양에 거주하고 있는 고위급 관계자와 얼마 전 위성폰으로 통화해보니, 그 친구 말이 이번에 베트남 다녀온 실무진들은 ‘아주 큰일 날 것’이라고 하더라. 김정은이 60시간 기차 타고 거기까지 가서 망신만 당하고 온 꼴이 됐으니. 그 정도 분석은 가능한 위치에 있는 친구다. 그러다가 바로 어제 확인해본 바로는 북한 정권이 마치 회담이 아주 잘된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고 하더라. 앞으로 또 다른 회담을 통해 얼마든지 북한 이익에 맞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것처럼.”

- 최근 북한 주민들의 경제 사정은 어떤 편인가. 그들은 ‘제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특정 대북제재가 북한 주민들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려면 (발효된 후) 최소 6개월 이상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대체적인 북한 주민들의 생각은 ‘우리가 언제는 제재 안 받았냐?’는 식이다. 어차피 늘 제재 속에 살았고 먹고살기가 편했던 적도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제재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다.”

- 하노이 회담이 실패로 끝난 후 김정은이 평양으로 돌아가는 동안 북 내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있었다. “그건 그들만의 생각이고.(웃음)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이 여전히 공고하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에 대해 김일성-김정일과 다르게 생각한다. 그가 내비치는 인간적인 면모에 감동하고 있다. 일례로 자기 부인 리설주를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온 것이 대표적이다. 거기에 북한 주민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전에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자신의 신격화를 위해 부인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위대한 수령’은 여자도 없는 듯이. 그런데 김정은이 리설주를 딱 데리고 나오니, ‘아니 우리 수령님도 섹스를 하신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 시골 아이들을 불러모아 가운데 껴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김정은이 해외 유학 경험 때문인지 나름 인간적이고 소탈한 모습으로 인민들에게 다가갈 때가 많다.”

- 결국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의 위상과 권력은 여전히 확고한 것인가. “이제는 확고하다. 김정은이 처음 등장한 후 2~3년 동안은 잘 모른 채 ‘어벙’할 때가 있었다. 할아버지뻘 간부들 사이에 서 있는 모습도 어색했다. 그 무렵 북한 3군단에서 포격 시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김정은이 ‘왜 나한테 말도 없이 하느냐’고 물었다고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김정은이 오래 못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장성택이나 리용호가 판을 쥐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3년쯤 지나니 김정은한테서 ‘폼’이 나오더라. 간부들 사이에 앉아 담배 한 대 딱 물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 ‘다 컸구나’ 생각했다.”

- 북한이 이른바 베트남식 사회주의 경제발전 노선으로 나갈 수 있다고 보나. “북한은 현재 경제개발특구로 지정한 27개 구역을 최대한 키울 생각이다. 전에 했던 개성공단과 나진·선봉 특구부터 금강산 관광까지가 다 대상이다. 여기에 투자를 끌어모아서 경제를 키워나간다는 생각을 일단 갖고 있다. 북한 내부 정책 자료를 보니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내비치고 있다. 결국 김정은이 노리는 건 남조선 기업들이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김정은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 나 있으니까,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서 투자를 얻어내려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그 길목을 미국이 꽉 막고 있으니 김정은은 계속해서 트럼프를 만나려고 할 것이다. 북한은 여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을 통해 틈새를 벌리고, 그 틈새에 남조선을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 김정은의 ‘인간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한국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게 제정신인가. 지금 정부 외교·안보 라인 고위급 인사들 중에 김씨 가문에 정말 매료된 사람들이 많다고 본다. 김씨 가문이 하는 건 다 좋게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일부 맞는 것도 있고 통찰력 있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북의 입장을 과대포장해주기 위해 애쓴다.

작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이 능라도 경기장에서 연설한 건 백미였다. 내가 평양 사람이라면 그 연설을 듣고 ‘남조선 대통령이 장군님 뜻을 따라온 우리를 정말 인정하고 격려해주는구나’라고 이해했을 것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가 이긴다’는 확신을 문 대통령이 북한 주민들에게 다시 한 번 심어준 꼴이 됐다.”

- 이번 회담 결렬을 두고 ‘미국이 너무 이기적으로 과욕을 부렸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욕하는 이들도 있다. “한 가지 분명히 할 점은 미국 전문가들은 웬만한 한국 사람보다도 북한 내부 사정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7월 미국에 건너가 NSC 소속 한반도 전문가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북한 노동당 상황에 대해 나보다도 잘 알고 있길래 깜짝 놀랐다. 내가 이런저런 조언을 몇 시간 한 뒤 ‘여기서 이래봤자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사인하면 끝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들이 웃더라. ‘우리가 그렇게 허술해 보이느냐’면서. 돌이켜보면 싱가포르부터 하노이 회담까지 미국은 철저히 전략에 의해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미국에서도 김정은의 신용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트럼프를 욕하는 미국인들도 임기 초반보다 적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정서가 미국에 전반적으로 퍼지면 김정은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김 대표는 2017년 폐암 4기 판정을 받고 작년까지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병 생활을 해왔다. 김 대표에게 건강 상태를 묻자 “보시듯이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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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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