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지난해 4월 9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는 있는 모습. ⓒphoto 노동신문
김정은이 지난해 4월 9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는 있는 모습. ⓒphoto 노동신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제2차 미·북 정상회담(2월 27~28일)이 결렬된 이후 김정은의 입장을 대변하는 ‘나팔수’로 적극 나서고 있다. 최 부상은 3월 15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북한)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거나 이런 식의 협상에 나설 의사가 없다”면서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중단(모라토리엄)을 계속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최 부상은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가 다시 이런 기차 여행을 해야 하겠느냐’라고 말했다”면서 “미국의 강도 같은 태도는 결국 상황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면서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경고했다.

최 부상은 3월 1일 새벽 리용호 외무상과 함께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합의 무산에 대한 미국의 ‘북한 책임론’을 반박했다. 당시 최 부상은 “김정은이 앞으로의 조·미(미·북) 거래에 대해서 좀 의욕을 잃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미·북 간 교착 국면에서 최 부상이 등장해 긴장을 고조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 부상은 지난해 4월 27일 싱가포르 제1차 미·북 정상회담을 3주 앞둔 5월 1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강력 비난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끈해 회담을 취소했었다.

최 부상은 북한 외무성에서 강석주(2016년 사망)와 김계관의 계보를 잇는 미국통이다. 최 부상은 중국과 오스트리아 등에서 유학했으며 1990년대 말부터 미·북 회담 및 6자회담에서 통역을 담당했다. 또 북미국 국장 겸 미국연구소 소장을 거쳐 지난해 3월부터 외무성 부상으로 일하며 김정은의 측근으로 일해왔다. 최 부상(1964년생)은 노동당에 입당할 때 보증인이 김정일이었다고 한다. 최 부상은 김일성의 측근이었던 최영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이 입양한 수양딸이다. 최영림은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김일성의 책임서기를 10여 년간 했던 최영림은 중앙검찰소장, 정무원 부총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 평양시 당 위원회 책임비서, 당 정치국 상임위원, 내각 총리까지 역임한 북한 정권의 실세다. 최영림은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북한의 권력 서열을 대변하는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에 김정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이어 세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최 부상의 오빠인 최승호(입양한 아들)는 당 중앙검사위원회 위원장이다.

김일성 최측근의 수양딸 최선희 부상

최 부상처럼 김정은의 측근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충성했던 부모 덕분에 요직을 세습하고 있는 인물들이 즐비하다. 리용호 외무상의 부친 리명제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서기실장을 지낸 김정일의 측근이었다. 김정은은 그동안 할아버지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함께 해왔던 혁명 1세대의 후손인 혁명 2세대와 3세대 엘리트들을 중용해왔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일성과 막역한 사이였던 항일 빨치산 출신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 아들인 최룡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들 수 있다. 최현은 김일성과 공식석상에서만 경어를 사용하고 사석에서는 편하게 ‘김일성’이라고 호칭하면서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눈 유일한 인물이었다. 최룡해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 위원, 당 중앙위 부위원장,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정·군의 주요 요직을 두루 꿰차고 있다. 군 총정치국장을 역임한 최룡해는 김정은이 싱가포르와 하노이를 갔을 때 평양을 지킨 사실상 북한의 제2인자라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은으로 후계자가 결정되는 과정에는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국태 당 검열위원장(김책 전 전선사령관의 아들), 전병호 당 책임비서,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등 혁명 2세대의 지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혁명 3세대로는 김국태의 딸인 김문경 당 국제부 부부장, 최룡해의 아들 최준, 김영남의 손자 김성현, 강석주 내각 부총리의 장남 강태성 등이 있으며 이들은 당·정·군 요직에 진출해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김정은 집권 이후 40~50대들이 주요 요직을 꿰차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혁명 3세대 또는 고위 전직 당·정·군 간부들의 자녀들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3월 1일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하노이 회담 결렬 미국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다. ⓒphoto TTXVN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3월 1일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하노이 회담 결렬 미국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다. ⓒphoto TTXVN

사회주의 군주제 국가

김정은에 항상 붙어다니는 수식어는 ‘3대 세습 독재자’라는 말이다. 20대 나이에 당·정·군 어느 분야에서도 전혀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을 그대로 물려받아 북한의 최고지도자에 등극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권력 3대 세습은 공산주의 종주국인 옛 소련과 중국에서는 물론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찰스 드주 전 미국 하원의원(공화당)은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중세 봉건체제(medieval feudal lordship)’라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 중세시대 봉건 영주처럼 가신(家臣)들을 거느리고 대대손손 권력을 세습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김정은이 지금까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것은 타고난 재질과 능력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수령 독재체제에서 김정은이 통치력을 과시해온 바탕에는 수령 독재체제를 후원하고 뒷받침해온 엘리트 그룹이 있다. 엘리트 그룹의 구성원들도 대부분 봉건 영주의 가신들처럼 부모 덕분에 요직을 차지한 세습 후계자들이다.

당 조직지도부를 비롯해 당·정·군 요직에 포진하고 있는 이들은 그동안 북한을 이끌어온 핵심 통치 그룹이다. 200여명으로 구성된 이들 세습 엘리트 입장에선 3대 세습이 자신들이 그동안 유지해온 지위와 권력을 그대로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하고 안정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들은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씨 일가가 아닌 다른 인물이 최고지도자가 됐을 경우 권력투쟁이나 새로운 충성경쟁 등으로 자신들이 숙청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백두혈통’인 김정은이 최고지도자가 되면 계속 충성을 바침으로써 안정적으로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들은 또 최고지도자의 3대 세습처럼 자녀들에게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물려줄 수 있다는 계산까지 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왕과 신하가 권력을 대대로 세습하고 있는 중세 봉건체제처럼 북한은 ‘사회주의 군주제 국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심각한 식량난, 2호 창고도 열리나

김정은은 제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드러났듯이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김정은은 ‘김씨 왕조’라는 세습체제를 유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으로선 선대의 유훈(遺訓)인 핵을 보유해야 체제를 지킬 수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유일한 수단인 핵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심지어 북한 정권은 1990년대 중반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던 ‘고난의행군’을 감내하면서도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김정은은 2017년 11월 29일 6차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 시험 발사를 성공했다면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후 김정은은 2018년 4월 20일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건설 노선’의 종료를 공식 선언하고 ‘경제 건설 총력 노선’을 제시했다. 당시 김정은이 ‘경제 건설 총력 노선’을 강조한 것은 핵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 조치를 해제시키려는 ‘꼼수’였음이 제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입증됐다.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고 체제 안전을 보장받더라도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핵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김정은으로선 자신의 부하들인 통치 엘리트들이 미국 등이 체제를 보장할 경우 더 이상 자신에게 충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베트남은 물론 쿠바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들 국가에선 북한처럼 김씨 일가의 독재체제가 아닌 통치 엘리트들이 1인 독재체제 대신 집단체제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북한 정권의 통치 엘리트들은 자신들도 국가를 통치할 자격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1988년생)이 고모 김경희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2017년 10월 열린 당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된 것에 상당한 회의감을 느꼈을 것이다. 김여정은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면서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자리를 차지했고 3월 10일 실시된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김여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이처럼 벼락출세를 할 수는 없다. 말 그대로 ‘백두혈통’이기 때문이다. 부모 또는 조부모 덕에 출세한 통치 엘리트들은 자신들도 기회만 주어졌다면 김정은과 김여정처럼 최고지도자와 핵심 실세 자리를 차지했을 테고 오히려 ‘애송이’라고 볼 수 있는 김정은과 김여정보다 북한을 더 잘 통치했을 수도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김정은도 통치 엘리트들의 이런 마음을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핵을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의 또 다른 딜레마는 핵 포기의 반대급부로 미국 등 국제사회의 경제 지원을 받아들였을 경우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통치 엘리트들이 핵 포기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현 체제에서 온갖 특권을 누리면서 잘 먹고 잘살고 있는 통치 엘리트들은 김씨 왕조의 세습체제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자녀들도 똑같이 특혜와 권력을 세습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게리 세이모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김정은에 대한 정치적 위협은 외부에서만 가해지는 게 아니라 북한 내부에도 존재한다”면서 “경제 개발과 개혁이 이뤄지면서 번영을 누리게 될 북한 주민들은 정치적 개혁을 갈망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김정은이 전임자인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판하면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정은의 정통성은 오로지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을 세습한 데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통치 엘리트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이들도 부모나 조부모 덕분에 권력을 누려왔다. 북한에서 통치 엘리트들의 요직 대물림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왕조와 ‘운명공동체’로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주민들이 굶어죽어도 자신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 3대 세습체제와 일당독재를 보위하기만 하면 된다.

지난 1월 김정은과 북한 고위 당정군 간부들이 새해를 맞아 금수산 태양궁전에서 참배하고 있다. ⓒphoto 노동신문
지난 1월 김정은과 북한 고위 당정군 간부들이 새해를 맞아 금수산 태양궁전에서 참배하고 있다. ⓒphoto 노동신문

김정은 집권 이후 사치품 구입 4조5000억

실제로 북한 정권의 통치 엘리트들을 비롯한 특권층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잘살고 있지만 일반 주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특히 식량난이 심각하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지난해 폭염과 홍수가 겹치며 올해 북한의 식량 배급량이 크게 줄었다. 프라빈 애그러월 WFP 평양소장은 “몇 년간 연간 곡물 540만~560만t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왔는데 지난해 490만t으로 뚝 떨어졌다”고 밝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도 올해 북한을 외부 지원이 필요한 식량부족국가로 재지정했다. FAO는 “북한의 올해 식량부족량은 64만1000t으로 지난해 46만t보다 늘었다”면서 “올해에도 북한 주민들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음식 섭취를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북한 정권이 김정은의 지시로 몇 달 전부터 ‘5호 창고’를 개방해 쌀 등 양곡을 대거 시장에 풀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5호 창고는 재난과 구호 상황에 대비해 비축하는 전략 예비물자를 보관하는 시설로 노동당에서 관리한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2호 창고’를 열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2호 창고는 전쟁에 대비한 양곡 비축 시설로 군이 관리한다. 과거 고난의행군 시기에도 2호 창고는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김정은과 통치 엘리트들의 사치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한 돈으로 쌀 등을 수입할 경우 식량난은 쉽게 해결될 수 있다. 김정은이 집권한 2012년 이후 북한 정권이 사치품 구입에 쏟아부은 돈은 40억429만달러(4조5040억원)나 된다. FAO가 추산한 올해 북한 부족 식량 64만t은 북한 정권이 2017년 한 해 들인 사치품 값만으로도 충분히 구입할 수 있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주의 지원은 대부분 당 간부 등 특권층에 돌아간다. 탈북 주민들은 “인도주의 지원으로 밀가루나 쌀이 들어오면 김정은과 당에 충성하는 간부들 배만 불리게 된다”고 밝혔다. 북한 특권층이 주로 거주하는 평양시 중심구역에서 고급 아파트 한 채(45평 수준·약 150㎡)는 20만달러에 거래된다. 이런 아파트에는 가구 등이 모두 최고급 사치품으로 꾸며져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정은에게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번영은 전혀 관심 밖의 사항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은의 최우선 관심사는 자신과 김씨 왕조의 생존이다. 이를 위해선 통치 엘리트들의 권력세습도 당연히 용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 조치가 강화될수록 통치 엘리트들도 갈수록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에 충성한 대가로 호의호식하면서 달러를 물 쓰듯이 써온 이들은 이 때문에 불만이 늘어날 것이다. 제재가 강화되면 돈주(신흥 부호)들과 결탁해 이익을 챙겨온 통치 엘리트들은 더욱 타격을 입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봉기는 강력한 통제로 막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통치 엘리트들의 불만은 김정은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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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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