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장병들이 KCTC 시가지 전투훈련장에서 실전적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photo KCTC
육군 장병들이 KCTC 시가지 전투훈련장에서 실전적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photo KCTC

지난해 10월 강원도 인제에 있는 육군 과학화전투훈련단(KCTC) 내 전투훈련장. 국방부 출입기자들로 구성된 15명의 취재단과 10명의 북한군 복장을 한 전문 대항군 ‘전갈부대’ 사이에 모의전투가 시작됐다. 연막탄이 터지며 20여m 떨어진 지형물 뒤에 숨어 서로 총을 난사했다. 30분간의 모의전투 끝에 취재단 전원이 ‘사망’하며 대항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KCTC는 여단급 훈련부대가 입소 뒤 2주 동안 전문 대항군을 상대로 실전 같은 전투를 경험하는 훈련장이다. 실제 실탄을 쏘는 사격 대신 레이저를 쏘는 마일즈(MILES) 장비를 개인화기와 대전차 무기, 전차, 자주포 등에 부착해 장병들이 실제와 같은 전장 상황을 경험한다는 게 특징이다. 각종 실탄사격 훈련에 대해 주민들의 민원이 확대되면서 민원 소지를 줄이고 다양한 실전 상황에 걸맞은 훈련을 하기 위해 KCTC가 만들어졌다.

훈련에 참가한 개인·차량 등은 피격되면 전송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상·중상·사망 또는 파괴 등의 판정을 실시간으로 통보받는다. 병력이나 장비의 상황은 실시간으로 훈련통제본부에서 모니터된다. 훈련장 내에 설치된 기지국 7곳, 지역통신소 6곳, 112㎞의 광케이블이 ‘실시간 모니터’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훈련에 참가한 장병들은 한마디로 ‘꼼짝 마라’ 상황이 되는 것이다. 화생방 상황에서는 9초 안에 방독면을 착용하지 못하면 정화통에 부착된 발신기가 사망 신호를 보낸다.

2002년 4월 창설된 KCTC가 지난 4월 1일로 창설 17주년을 맞았다. KCTC는 중대급, 대대급, 여단급으로 훈련장에서 훈련할 수 있는 보병부대의 규모를 확대해왔다.

종전 대대급 훈련 시에는 공격과 방어를 실시하는 2개 대대 훈련규모가 병력 1400여명에 장비는 200여대였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여단급으로 확대된 뒤에는 2개 여단 인원 5000여명과 장비 1000여대가 훈련을 할 수 있게 됐다. 4~5배가량 규모가 커진 것이다.

특히 우리 KCTC는 규모 면에서 세계 톱(TOP) 3, 질적인 면에선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세계에서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갖고 있는 나라는 13개국이다. 이 중 여단급 과학화 훈련장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우리나라밖에 없다. 독일·영국·스웨덴 등 6개국은 대대급 훈련장을, 일본·호주·프랑스 등 4개국은 중대급 훈련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단급 3개국 내에서 미국·이스라엘도 갖지 못한 첨단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KCTC 관계자는 “우리 KCTC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곡사화기 자동 모의와 수류탄 모의가 가능하다”며 “공군 ACMI(공중기동훈련) 체계와 연동해 통합화력도 운용할 수 있고, 육군 항공 및 방공무기 교전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군의 경우 곡사화기는 수동 모의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군의 경우 우리 같은 과학화 전투훈련장이 없어 KCTC는 북한군에 대해 우리가 절대적 우위를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분야 중의 하나로 꼽힌다.

KCTC 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약 41.6배인 3652만평(120㎢)에 달한다. 특히 미래전의 새로운 양상으로 대두되고 있는 도시지역 전투에 대비한 건물지역 훈련장도 새로 만들었다. 지난 3월 29일 방문한 건물지역 훈련장에는 북한 황해도 모 지역을 그대로 본떠 만든 수십 동의 건물이 있었다.

새로 구축한 갱도진지 훈련장도 KCTC의 새 ‘명물’이다. 북한 갱도진지(지하시설)는 DMZ(비무장지대) 인근 최전방 지역부터 후방까지 약 1만개에 달해 유사시 우리 군이 반격작전을 펴며 북진할 때 큰 난관이 될 수 있는 존재다. 이 훈련장엔 북 갱도진지와 거의 똑같은 진지들이 만들어져 있어 분대~소대급 이상이 투입돼 실전적인 훈련을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공중강습작전 수행을 위한 헬기장과 하천이 많은 한반도 지형을 고려한 도하 훈련장도 구비돼 있다.

마일즈 장비 등 훈련 장비의 성능도 계속 개량되고 있고, 종류도 48종으로 다양해졌다. 107·122㎜ 방사포, SA-7 휴대용 대공미사일, 급조폭발물(IED) 등 다양한 북한군 무기도 모사할 수 있게 됐다.

KCTC 강점 중 하나는 ‘전갈부대’로 유명한 강력한 전문대항군 부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갈부대는 전투복도 북한군 복장을 입는 등 북한군을 완벽에 가깝게 모사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 육군식 편제를 갖추고 북한군의 전략·전술을 구사한다. 부대 슬로건을 ‘적보다 강한 적’으로 할 만큼 교육과 훈련량이 상당하다.

과학화 전투훈련을 통해 훈련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실사격 훈련을 하면 연간 1025억원의 돈이 드는데 과학화 훈련을 하면 91억원으로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용 절감보다 더 큰 효과는 이른바 ‘했다 치고’식 훈련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을 몇 개를 넘어야 하는 악조건과 여름 및 겨울 작전환경 등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훈련 참가 장병들이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훈련 통제본부에서 모니터할 수 있기 때문에 보름에 달하는 훈련 기간 내내 한눈을 팔 수 없다. 전우들이 자신의 앞에서 실제 죽어나가 ‘영현 백’에 실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 경우도 많다. 대대나 연대 본부가 적의 포격에 몰살되는 상황에 처해 눈물을 흘린 대대장, 연대장들도 있다.

KCTC는 올 들어 지난 2월 28사단 돌풍연대를 시작으로 8개 부대 2만4000여명의 훈련을 진행할 계획이다. 5월과 8월에는 중·소대급 병력이 참여하는 한·미 연합훈련도 예정돼 있다. 6월에는 합동성 강화 차원에서 육군 5사단 1개 연대와 해병 1사단 1개 대대가 동시에 참가해 훈련하기로 했다.

KCTC는 현재의 세계 최고 수준에 안주하지 않고 4차 산업혁명 기술 등을 접목하는 차세대 훈련 시스템을 개발, 구축할 계획이다.

문원식 KCTC 단장(준장·학군 27기)은 “북한군 장비 등 실기동 모의가 제한되는 부분들을 극복하기 위한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의 활용,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통한 유의미한 데이터 생산 등 핵심가치 구현을 위한 5개 과제를 선정해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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