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 ⓒphoto 뉴시스
지난 4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 ⓒphoto 뉴시스

바른미래당은 창원 성산 보궐선거 직후인 4월 둘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지지율이 4%로 추락했다. 지난해 2월 창당 이후 최저치였다. 원내 29석을 지닌 바른미래당의 창원 성산 보궐선거 득표율이 3.6%로, 의석수가 1석에 불과한 민중당의 3.8%보다도 낮은 참패의 후유증이었다. 코너에 몰린 손학규 대표는 “추석까지 지지율 10%를 달성하지 못하면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지만 당은 깊은 내홍(內訌)에 휩싸였다.

지난 4월 22일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제 개혁·공수처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둘러싼 논란도 바른미래당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바른미래당은 다음날 의원 총회에서 합의안을 23명이 참석한 표결에서 찬성 12표, 반대 11표란 간발의 차로 통과시켰지만 곧바로 후폭풍에 휩싸였다.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들어왔던 이언주 의원은 의총 직후 탈당을 선언했고, 유승민 의원도 “굉장한 자괴감을 느끼며 당의 진로에 대해 동지들과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 했다. 여당과의 패스트트랙 합의가 ‘당의 분당(分黨)으로 가는 신호탄’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창당 이후 지지율 10% 못 넘어

바른미래당이 파국 양상까지 몰린 것은 그동안 원내 제3당에 걸맞지 않게 형편없이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며 당세(黨勢)가 약화됐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의 전신(前身)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2017년 5월 대선에서 각각 안철수 후보(21.4%)와 유승민 후보(6.8%) 득표율 합이 28.2%였다. 양당의 통합으로 탄생한 바른미래당이 대선 때 지지층만 그대로 흡수해도 원내 1, 2당을 위협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창당 이후 15개월 동안 한 번도 지지율이 10%를 넘지 못했다. 지난해 5월 지방선거에선 광역의원 비례대표 득표율이 7.8%에 그쳤다. 낮은 지지율로 선거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고, 선거에서의 부진이 다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 셈이다. 바른미래당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고공행진할 때 함께 상승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올해 들어 자유한국당이 상승세를 보일 때에는 오히려 침체에 빠졌다. 여야(與野) 어느 쪽으로도 비치지 않기 때문에 여당 또는 야당 쪽의 호재가 발생해도 아무런 수혜를 받지 못하는 특색 없는 정당이란 의미다.

창당 이후 ‘중도개혁’을 내세웠던 바른미래당의 존립이 위태로운 이유는 중도정당의 최대 기반일 수밖에 없는 중도층 유권자의 규모가 작아서가 아니다.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장은 저서 ‘하드볼 게임’에서 “우리나라는 미국과 유럽 일반적 사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스윙보터(중도층) 규모가 크다”며 “보수와 진보 양 진영 모두를 싫어하는 중도층으로 인해 선거에서 우열이 급격히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그는 “중도층이 특히 많은 이유는 정당이 조변석개하다 보니 특정 정당에 대한 애정도 깊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최근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주관적 이념성향은 중도(39.3%)가 가장 많았고 진보(34.3%)와 보수(26.4%) 순이었다. 지난 정부에서 최순실 사태가 불거지던 2016년 10월 조사에서 중도(41.1%), 진보(34.3%), 보수(24.6%) 순이었던 것과 비슷했다. 중도 유권자가 다른 이념층에 비해 지속적으로 ‘수퍼파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도층의 대다수가 중도정당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갤럽의 4월 셋째 주 조사에서 중도층이 지지하는 정당은 민주당(40%)에 이어 한국당(13%)이었다. 바른미래당(10%)은 정의당(11%)보다도 지지율이 낮았다. 지난 3월 갤럽의 ‘바른미래당 호감도’ 조사에선 ‘호감이 가지 않는다’(53%)고 답한 중도층이 ‘호감이 간다’(29%)고 답한 중도층보다 훨씬 높았다. 결국 바른미래당의 위기는 지지 기반이라고 생각했던 중도층의 외면이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제3당인 중도정당이 주류 정당으로 도약하지 못한 것은 여야가 사활을 걸고 강대강(强對强) 대결을 펼치는 양극화된 정치 지형이 원인이란 견해가 많다. ‘박근혜 대 반(反)박근혜’, ‘문재인 대 반(反)문재인’ 등으로 갈라져 충돌해온 정치 지형에서 중도보수층은 보수정당, 중도진보층은 진보정당 쪽으로 나뉘어 쏠리곤 했다. 주요 이슈마다 사사건건 여야가 충돌하는 상황 속에서 국민에게 어느 한쪽의 선택을 강요하는 분위기였다. 선거에서도 ‘사표(死票) 방지’ 심리가 작동하면 제3당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도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선거제 개혁·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처리 합의와 관련해 한국당이 강력한 투쟁에 나서면서 극한 정쟁(政爭)으로 치닫고 있다. 여당의 밀어붙이기식 압박과 야당의 저항이 강하게 맞서면서 여야 모두 지지층을 규합하고 반대층을 공격하는 ‘국민 갈라치기’ 전략에 나서고 있어서 중도정당이 설 자리가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국민 갈라치기’ 강대강 정국

중도정당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원인으로는 스스로의 역량 부족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여야 거대 양당에 거부감을 지닌 중도층이 유권자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많지만 이들에게 매력적인 중도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표를 찍어줄 유권자가 없는 게 아니라 표심(票心)을 담을 그릇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장수 소장은 “중도정당이 보수와 진보의 중간쯤에 어정쩡하게 머무르면서 중도층이 저절로 다가올 것으로 생각했다면 착각”이라며 “양쪽 진영 각각의 약점을 강하게 파고드는 제3의 정책을 내걸고 전투적으로 나서는 정당으로 변신해야 생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도 중도정당의 부진 원인으로 ‘이념의 부재’ ‘인물의 부재’ ‘정책의 부재’ 등을 꼽았다. 배 소장은 “거대 정당에 실망감을 지닌 유권자를 흡수할 수 있는 선명한 정체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영향력 있는 인물과 차별화된 정책을 내세우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중도정당에 기회가 있다는 전망도 있다. 중도층은 지지 정당이 쉽게 바뀌기 때문에 지금과 달리 앞으로는 중도정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기존 제3세력에 기대를 걸고 있는 중도층에 합리적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여야가 강하게 충돌하고 있어 당분간 민주당과 한국당 지지층이 각자 결집하는 정치 양극화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전례를 보면 선거가 6개월 정도 남은 시점이 돼야 제3당에 대한 관심이 생긴다”고 했다. 김 교수는 “중도층뿐 아니라 어느 정당도 선호하지 않는 무당층(無黨層)도 많기 때문에 제3당이 인물과 이슈, 참신성을 갖춘다면 성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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