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서구 김현미 의원 지역구 사무실에 나붙은 인터뷰 기사에 욕설이 적혀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일산서구 김현미 의원 지역구 사무실에 나붙은 인터뷰 기사에 욕설이 적혀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14일 오전 11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태영프라자 서관 건물 4층. 평일 대낮이었지만 상가 내부는 곳곳에 불이 꺼져 어둑했다. 같은 층에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국회의원 지역구 사무실이 있었다. 반투명유리 너머로 보이는 사무실 내 천장에 흰색 형광등 불이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사무실은 잠겨 있었고 문틈으로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무실 앞에는 ‘12월 27일 삼성역 킨텍스 운정 GTX 착공’ ‘가좌 영등포소방서 광역급행버스 노선 신설 확정’ 등의 정책 홍보 자료가 붙어 있었다. 김현미 장관이 지난 1월 고양신문과 인터뷰한 기사를 프린트한 A4용지 4장도 사무실 문 옆에 붙어 있었다.

3기 신도시 발표 후 지역구 사무실에 욕설

기사가 프린트된 흰색 A4용지에는 검은 볼펜으로 욕설이 가득히 적혀 있었다. ‘나쁜 XX 전라도 가서 엿 먹어라’ ‘일산서구 국회의원 하면서 해놓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등등 김 장관을 성토하는 험악한 말들이 적혀 있었다. ‘국회의원 김현미’라고 큰 글씨로 적힌 이름에는 ‘XXX’ 표시가 쳐져 있었다. ‘뽑지 말자’ ‘당신 정신차려라’ 등의 글씨도 적혀 있었다.

최근 국토부가 3기 신도시를 발표한 뒤 이 지역구 사무실에는 직원들의 발길이 끊겼다고 한다. 사무실 앞에 쌓인 네댓 개의 우편물에는 5월 9일, 10일 등 며칠 된 직인이 찍혀 있었다. 같은 층에서 수제비를 파는 식당 상인에게 사무실 입구에 누가 낙서를 했는지 묻자 “사람들 대여섯이 우르르 몰려왔다 간 적이 종종 있었다”며 “최근에 오는 모습은 못 봤다”고 했다. 다른 식당 주인은 “창릉신도시 발표 이후 지역구 사무실 직원들의 발길이 끊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국토부가 경기 고양과 부천 등에 대규모 신도시 확충 계획을 발표하면서 김현미 장관을 국회의원으로 두 번이나 뽑아준 일산 지역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3기 신도시로 인해 안 그래도 집값이 하락세인 1기 신도시 일산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산 자가보유비율이 높지 않은 만큼 일부 시민들의 움직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5월 7일 국토부는 3기 신도시 마지막 건설 예정지로 고양 창릉과 부천 대장지구에 총 5만800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확충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 중 고양 창릉에만 3만8000가구가 넘게 들어온다. 창릉신도시는 1기 신도시인 일산, 2기 신도시인 파주 운정에 비해 서울과 가깝다. 4만 가구 규모에 가까운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광역교통망도 확충된다. 창릉신도시 내에만 3개의 전철역이 계획돼 있다.

일산·운정에 집을 보유한 이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신도시 발표 후 첫 주말인 지난 5월 12일에는 파주 운정에서 처음 신도시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날 파주와 일산 주민 약 600명은 운정행복센터 사거리 앞에 모여 ‘고양시장 주민소환’ 등의 피켓을 들고 “주민과 협의 없는 신도시 즉각 철회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5월 18일에는 일산 호수공원 일대에서 신도시 반대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김 장관의 지역구인 고양시 정 지역구는 일산서구에 해당한다. 김 장관은 이 지역에서 2008년부터 김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과 세 번 맞붙어 두 번 승리했다. 김영선 전 의원은 이 지역에서 2008년까지 두 번 당선됐지만 19대부터 김현미 장관에게 두 번 연속 패했다. 현재 자유한국당 지역구는 조대원 당협위원장이 맡고 있다.

지난 3월 공개된 고위공직자 재산변동 신고내역에 따르면 김현미 장관도 일산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지역구 사무실이 있는 태영프라자 서관의 전세권도 김 장관이 보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장관이 창릉신도시 발표 전 일산 집을 팔고 고향인 정읍으로 이사갔다”는 등의 뜬소문이 횡행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당 소속 경기도 한 도의원은 “김 장관이 일산을 떠났다는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14일 김현미 의원 지역구 사무실. 불은 켜졌지만 텅 비어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14일 김현미 의원 지역구 사무실. 불은 켜졌지만 텅 비어 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전세 거주자는 환영 분위기도

김 장관을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민심이 뒤숭숭한 것은 사실이다. 일산의 중심지인 웨스턴돔 근처에서 고양시 전체와 파주 운정까지의 매물을 거래하는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기자와 만나 “1·2기 신도시 광역교통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3기 신도시를 더 가까운 곳에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게 문제”라며 “이렇게 되면 누가 정부 정책을 믿고 집을 사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도 “실제로는 일산보다 파주 운정 신도시가 더 문제”라며 “일산은 생활여건이라도 좋지, 운정은 지금 가면 흙먼지만 풀풀 날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회 등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는 것과 실제 일산 민심은 다를 수도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집이 자가냐 전세·월세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갈라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당 한 관계자는 “실제 지역 내 민심은 자가 보유 여부에 따라 찬반이 나뉜다”며 “집주인은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하지만 세입자는 오히려 집값이 떨어져 좋다는 반응이 많다”고 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경기도의 자가보유비율은 50%대다. 10명 중 5명만이 실제 자기 소유의 집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은 40%대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일산을 비롯한 고양시 내에 일자리를 유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판교나 기흥처럼 지역 내에 생산성이 있는 사업체가 들어서지 않는다면 결국 일산은 서울의 베드타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결국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업체를 끌어와야 지역의 고민이 해소가 될 것”이라며 “주민들이 먹고살 여건을 조성해줘야지 한 푼 두 푼 모아 일산에 집을 마련한 이들을 지역이기주의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현재 지역구 민심이 돌아선 만큼 일각에서는 김현미 장관이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가 아닌 다른 정치적 진로를 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올 8월 김 장관을 포함해 유은혜 교육부총리(고양시 병),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자리를 내놓을 개각 가능성이 점쳐지는데 이때 김 장관도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과 유영민 과기부 장관은 지난 2월 개각 때 교체 대상에 포함됐지만 최정호 국토부 장관 후보자와 조동호 과기부 장관 후보자가 모두 낙마하면서 본의 아니게 유임하게 됐다. 김 장관은 유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국토부 장관이라는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김현미 장관의 지역구인 고양시 정 지역구에서 표밭을 갈고 있는 한국당 조대원 당협위원장은 행사 참석차 미국에 체류하고 있으며 6월 초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위원장 후원회 업무를 맡은 김용배 사무국장은 전화통화에서 “위원장으로서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며 “초·재선 의원이면 오히려 우리가 상대하기 힘들 수 있는데 3선에 장관까지 지내는 중진이 자기 공약도 안 지켰다는 점에서 앞으로 기회가 많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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