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2일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법대 대강당에서 열린 오슬로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2일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법대 대강당에서 열린 오슬로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평화란 힘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평화는 오직 이해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Peace cannot be kept by force. It can only be achieved by understanding.)” 세계적 물리학자이자 평화주의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1930년 12월 14일 미국 뉴욕의 신역사학회(New History Society)에 참석해 연설한 내용의 일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2일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법대 대강당에서 열린 오슬로포럼에 참석, ‘국민을 위한 평화’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에서 아인슈타인의 이 연설 내용을 인용하면서 ‘대화를 통한 평화’ 방식의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평화를 무려 53번 외쳤지만,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선 한 번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게다가 문 대통령은 6·25전쟁을 일으켰고, 지금까지 수많은 도발과 핵·미사일 개발로 한반도의 평화를 파괴한 주범인 북한 정권에 대해선 신뢰만을 강조했을 뿐 책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평화전도사’ 아인슈타인의 변심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입만 열면 평화를 주장해왔다. 문 대통령은 “전쟁을 겪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대통령인 나에게 평화는 삶의 소명이자 역사적 책무”라고 강조해왔다. 6·25전쟁을 겪은 한국 국민에게 평화는 소중한 가치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이 평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평화를 외친다고 해서 반드시 평화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자나 깨나 평화를 주장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만이 북한 핵 문제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피력해왔다. 이런 언행을 볼 때 문 대통령을 ‘평화전도사’라고 불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문 대통령과 같은 평화전도사들은 과거에도 많았다. 문 대통령이 인용한 아인슈타인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인슈타인의 삶을 보면 진정한 평화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 1879년 3월 14일 독일 뷔르템베르크주 울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인슈타인은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 취리히 연방공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베른 특허청에서 일했다. 틈틈이 물리학 공부를 계속해온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이후 1913년 독일 베를린대학 교수 겸 카이저 빌헬름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한 아인슈타인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지만 연구를 계속하면서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이런 업적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의 평화주의 활동은 1차 대전이 발발한 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1914년 유럽 문화를 지지하고 평화를 호소하는 ‘유럽인에게 보내는 선언문’ 서명에 참여했다. 특히 그는 평화주의 운동을 벌이며 목숨까지 위협당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그는 종전 이후 전범 문제 연구를 위해 모인 ‘독일 6인 지식인 위원회’에 합류했고, 1922년에는 유엔(국제연합)의 전신인 국제연맹의 지적협력위원회에 참여했다. 패전국 독일이 국제연맹 가입국이 아닌 상황에서 그의 활동은 독일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전쟁 방지를 위해 세계정부 수립을 주창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1930년 12월 미국을 방문해 신역사학회에서 연설을 통해 평화주의를 강조했고, 1931년 국제반전주의자협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는 데 동참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그는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인류가 전쟁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편지를 통해 토론까지 벌였다. 이후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독일에서 득세하기 시작하자 아인슈타인은 1932년 독일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에 “독일 국민이 무시무시한 파시스트가 되는 사태를 방지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촉구하는 성명서에 공동 서명했다. 하지만 나치당이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자 아인슈타인은 1933년 1월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가 미국에 도착한 지 2주 후에 히틀러는 독일 총통이 됐다. 1933년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로 취임한 그는 나치 독일을 탈출하는 수많은 망명자들이 미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등 만행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아인슈타인(왼쪽)과 질라르드가 대화하고 있는 모습. 질라르드는 아인슈타인에게 히틀러의 핵 개발 계획을 알린 핵물리학자다. ⓒphoto 위키피디아
아인슈타인(왼쪽)과 질라르드가 대화하고 있는 모습. 질라르드는 아인슈타인에게 히틀러의 핵 개발 계획을 알린 핵물리학자다. ⓒphoto 위키피디아

히틀러 때문에 신념 접은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열정적으로 반전(反戰)과 평화를 주장했지만 예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와 나치 독일이 인류를 멸절시킬 수 있는 핵폭탄을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망명한 미국의 핵물리학자 레오 질라르드는 아인슈타인을 만나 히틀러의 핵 개발 계획을 알렸다. 실제로 나치 독일은 1939년 4월 ‘우라늄 클럽’으로 불렸던 핵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체코슬로바키아의 우라늄 광산 판매를 중단시켰다. 이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이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히틀러의 야심을 저지하려면 미국이 먼저 핵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과 질라르드 등은 1939년 8월 2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핵폭탄을 개발해 히틀러와 나치 독일을 저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미국 정부는 아인슈타인 등의 요청에 따라 1942년 8월 13일 핵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계획’을 시작했다.

나치 독일이 패배하면서 히틀러의 핵 개발 계획은 저지됐지만 미국 정부는 핵 개발을 계속했고, 2차대전을 끝내고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1945년 8월 6일 우라늄 원자탄인 ‘꼬마(Little Boy)’를 히로시마에, 사흘 후인 9일에는 플루토늄 원자탄인 ‘뚱보(Fat Man)’를 나가사키에 투하했다. 물론 아인슈타인은 수십만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자신이 편지를 쓴 것을 후회했다. 이후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이 수소폭탄 실험에까지 이르자 핵무기의 위험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은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등과 함께 1955년 7월 9일 핵무기 철폐를 촉구하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발표했다. 조지프 로트블랫 등 세계적인 핵물리학자 22명은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계기로 1957년 ‘퍼그워시회의’라는 반핵단체를 만들었고 이 단체는 지금까지 핵무기 철폐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신념을 접고 미국에 평화를 위해 핵 개발을 촉구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 히틀러의 광기와 야욕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히틀러라는 독재자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히틀러는 전쟁을 통해 대서양에서 우랄산맥에 이르기까지의 유럽을 지배해 통치하길 원했고, 게르만민족의 순수성과 우월성을 위해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반인간적 만행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유럽,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해 ‘힘’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의 평화론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입장을 바꾸기 전에 주장했던 평화론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간과한 중요한 점이 있다. 김정은과 북한 정권은 히틀러와 나치 독일 못지않게 나쁘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나치 독일은 동족을 죽이겠다고 전쟁을 일으키진 않았다. 나치 독일은 북한 정권처럼 주민들에게 거주이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박탈하지도 않았다. 히틀러는 김정은처럼 자신의 형과 고모부를 살해하지도 않았다. 히틀러는 김정은처럼 주민들을 노예로 부려먹지 않았다. 북한에선 김정은만 ‘최고 존엄’이고, 당·정·군 간부들과 주민 2500만여명은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죽을 때까지 강제노역을 해야 하다. 특히 김정은의 손에는 같은 민족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는 핵폭탄을 가지고 있다. 이런 김정은과 북한 정권을 어떻게 이해해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까. 김정은과 북한 정권은 정상적인 교류와 협력으로 남북한 주민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을 체제 위협 요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김정은과 북한 정권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투자하는 돈의 7분의 1만 사용해도 주민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보유하고 개발하는 것은 자신과 정권의 생존 때문이다. 북한 정권의 국가 목표는 주민들의 생존이 아니라 김정은의 생존 보장이다. 이처럼 비(非)정상국가인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어떻게 평화를 얘기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이 지금 살아있다면 문 대통령의 평화론을 ‘허황된 꿈’이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인슈타인이 주장해온 ‘핵무기 없는 세계’를 가로막는 가장 골치 아픈 훼방꾼은 김정은과 북한 정권이다.

김정은이 비밀 미사일 기지에서 ICBM인 화성-15형을 둘러보고 있다. ⓒphoto 노동신문
김정은이 비밀 미사일 기지에서 ICBM인 화성-15형을 둘러보고 있다. ⓒphoto 노동신문

문 대통령의 평화론이 허황된 이유

김정은은 지금까지 ‘한국과의 평화’를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솔직 담백한 인물이고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저는 확신하고 있다”면서 “경제 발전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을 더 잘살게 하겠다는 그런 전략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판단이 맞기를 바라지만 역사는 전혀 다른 사례를 보여준다. 김정은 같은 독재자들은 ‘사이코패스’로 분류된다. 사이코패스들은 자신의 위엄과 권능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극도로 자기중심적이고 능수능란한 거짓말쟁이일 뿐만 아니라 매력적이고 카리스마적이고 지적으로 보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사이코패스는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마오쩌둥, 니콜라이 차우셰스쿠, 김일성과 김정일, 이디 아민, 폴 포트, 사담 후세인, 무아마르 카다피 등이 있다. 히틀러는 1938년 뮌헨회담에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에게 체코의 수데텐 지역을 독일 영토로 편입시켜준다면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거짓 약속을 믿었다. 체임벌린이 유화책에 나선 것은 평화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1939년 가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외교적인 성공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또 체임벌린은 1937년 총리 취임 전부터 유럽 평화 구상에 몰두해 있었다. 만약 체임벌린이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면 영국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면 히틀러의 야욕을 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정은이 히틀러처럼 ‘거짓 약속’조차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평화만을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 5월 4일 강원도 원산 호도반도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훈련을 참관하고 “전체 인민군 장병들의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진정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고 담보된다는 철리(哲理)를 명심하라”는 교시를 내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정은의 입에서 “평화는 힘을 통해 지킬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김정은은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어떤 도전과 난관이 앞을 막아서도 국가와 인민의 근본 이익과 문제에서는 티끌만 한 양보나 타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은의 이런 연설은 핵은 절대 포기할 대상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데도 문 대통령이 낭만적인 평화론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무덤 속의 체임벌린조차 놀랄 것이다. 김정은이 핵 포기 불가 의지를 밝힌 만큼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문 대통령의 평화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9월 21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도 “평화는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분쟁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루는 능력을 의미한다”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대화를 통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강조했었다. 당시 연설에서도 ‘평화’라는 단어가 32번이나 언급됐다. 문 대통령의 이 연설 역시 아인슈타인의 ‘평화’를 오독한 것처럼 레이건 전 대통령의 ‘평화’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64년 10월 27일 배리 골드워터 공화당 대선후보 찬조연설에서 ‘평화’의 의미를 분명하게 피력했었다. 레이건은 “평화냐 전쟁이냐는 질문은 잘못됐다. 오직 싸우느냐, 항복하느냐가 있을 뿐”이라며 “만약 우리가 계속 적의 요구를 수용해 물러서다 보면 결국 마지막 요구, 최후통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레이건은 “평화를 향한 길은 매우 간단하다”면서 “우리가 우리의 적에게 ‘용납할 수 없는 선이 있다’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레이건은 “진정한 평화는 강력한 힘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김정은의 속내는 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모든 핵무기 폐기’를 요구했지만, 김정은은 ‘대북 제재 전면 해제’만 주장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주저 없이 회담 결렬을 선언했다. 당시 회담에서 얻은 성과가 있었다면 ‘비핵화하겠다’는 김정은의 말이 거짓임이 입증된 것이었다. 김정은이 정말 핵 포기를 결단했다면 모든 핵시설과 핵무기를 신고하고 검증·폐기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지금까지 미국의 태도 변화만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북한 정권과의 대화와 신뢰를 강조하면서 ‘평화 타령’을 계속 부르고 있다. 문 대통령은 평화주의자 아인슈타인이 힘을 선택한 이유를 직시하고 레이건의 길을 가야 한다. ‘거짓 평화’는 더 이상 한반도에서 유효한 슬로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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