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운데)와 나경원 원내대표(왼쪽)가 지난 7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들어서고 있다. ⓒphoto 연합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운데)와 나경원 원내대표(왼쪽)가 지난 7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들어서고 있다. ⓒphoto 연합

21대 총선거를 9개월여 남겨두고 과거보다 빠른 총선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각 정당의 공천룰 조율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공천 기준을 발표하면서 정치 신인에게 최대 20%, 청년과 여성, 장애인에게는 각각 25%에 이르는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정했다. 아직 공천룰을 조율 중인 자유한국당은 정치 신인에게 최대 50%에 가까운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지지율 답보 상태인 한국당은 현 정부 실정(失政)의 반사이익조차 제대로 못 받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기에 지난 6월 30일 사상 첫 판문점 미·북 회동까지 열리면서 한국당의 설 자리가 더 좁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한 번 쓰임 받고 버려질 것이라는 회의감이 만연해 있었다. 정치 신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버티겠나’ ‘뭘 할 수 있겠나’라는 주변의 무력감 속에서 선거를 치러야 했다.” 2018년 6월 재보궐선거 당시 자유한국당에서 가장 주목받던 후보 중 한 명이었던 배현진 송파을 당협위원장의 말이다. ‘정치 신인’으로 생전 처음 선거를 뛰었던 배 위원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기존의 틀을 깨주기를 바라고 신인을 영입하면서도 기성정치의 관점으로 ‘힘들 거다’라는 말을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정치 신인 대거 중용’ ‘대폭 물갈이’는 선거 때마다 반복되어온 각 당의 선거 전략이다. 특히 한국당으로서는 내년 선거를 통해 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하지만 한국당이 영입하려는 정치 신인들이 ‘정치 개혁’ ‘정당 개혁’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신인 정치인을 활용해 유권자들의 민심을 끌어당길 전략은 없으면서 단지 ‘새로운 얼굴’ ‘청년’이라는 간판만으로는 확실한 승기를 잡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히려 ‘정치 신인’들이 기존 지도부의 거수기 역할만 하면 당의 활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치 신인이 제 역할 할까

현재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서 총선 출마 신인이 뛰어넘어야 할 벽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고 있는 선거법이 대표적이다. 선거법 제7장은 선거운동과 관련한 조항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중 59조 조항은 정치 신인에게 가장 불리한 규정 중 하나로 여겨진다. 예컨대 이 조항에 규정된 선거운동 기간을 보면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선거일 전 13일’에 한정되어 있다. 이 기간 전에 예비후보자가 공개석상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거나 자신의 공약을 홍보하면 선거법 위반이다. 여기에 명함과 어깨띠의 규격, 한 번에 전송할 수 있는 문자메시지 개수까지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현역 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굴이 덜 알려진 신인 정치인에게는 홍보의 기회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자금법 역시 마찬가지다. 고 노회찬 전 의원은 2016년 3월 총선 예비후보자 시절 받은 후원금 문제가 불거져 작년 7월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당시 노 전 의원은 고등학교 동창이자 드루킹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로부터 두 번에 걸쳐 4000여만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1회 후원 한도 금액을 500만원으로 정하고 있다.

노 전 의원의 극단적 선택 이후 현행 정치자금법이 정치 신인 또는 원외 정치인의 국회 진입을 막고 있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됐다. 현재 선거법 제60조는 ‘지역구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예비후보자는 선거일 120일 전에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있고 등록 이후 후원회를 열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 기간 외에는 정치 후원금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때문에 정치 신인 또는 원외 정치인은 현역 의원에 비해 정치 자금을 모으는 데 턱없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현역 국회의원은 임기 4년 동안 한 해 최대 3억원의 후원금(선거가 없는 해는 1억5000만원, 선거가 있는 해는 3억원까지 모금 가능)을 지속적으로 모을 수 있는 반면, 원외 정치인들은 예비후보 등록 후 120일간 외에는 후원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의 굴레 때문에 역대 총선에서 정치 신인들의 당선 비율이 형편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초선의 비율은 44.0%, 17대 총선 때는 60%가 넘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현행 선거법이 정치 신인에게 불리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선거 때마다 국회의 초선 의원 당선 비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었다”고 했다. 신 교수는 “정치 신인이 얼마나 들어갔느냐보다 중요한 건, 정치 신인이 정치를 어떻게 바꿨느냐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해온 걸 보면 제대로 바뀐 게 있는 것 같으냐”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지난 6월 24일 당 홍보본부장에 김찬형 추계예술대 교양학부 객원교수(오른쪽)를 임명했다. ⓒphoto 연합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지난 6월 24일 당 홍보본부장에 김찬형 추계예술대 교양학부 객원교수(오른쪽)를 임명했다. ⓒphoto 연합

선거법이라는 굴레

특히 ‘꼰대정당’ ‘웰빙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한국당으로서는 정치 신인 공천 못지않게 당선 후 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느냐 여부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당장 한국당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정치 신인 등용을 통해 어떻게 청년층의 마음을 사느냐는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6월 4주 차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19세에서 29세 사이의 부정평가는 48.9%, 긍정평가는 46.8%였던 반면 같은 세대의 한국당 지지율은 20.9%에 불과했다. 문 대통령 임기 초반 80% 가까운 지지율을 보였던 20대가 2년 만에 절반 가까이 등을 돌렸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한국당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황교안 대표도 지난 6월 5일 국회 사랑재에서 ‘2040 토크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청년층 마음을 얻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한 대학교 강연에서 ‘아들 스펙 거짓말 논란’을 일으키며 그간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었다. 김태일 한국당 대학생위원장은 “당 지도부가 청년층에 보이는 관심이나 애정 자체는 진심”이라면서도 “그러나 어떻게 다가가서 무슨 말로 소통을 해야 하는지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단적인 예로 현재 ‘젠더 이슈’가 청년층에 얼마나 중대한 이슈인지 공감하지 못한다. 이야기가 나오면 ‘요즘 설거지는 제가 합니다’ 정도의 반응이다”라고 덧붙였다. 정현호 전 자유한국당 청년비대위원장은 “한국당은 외부적인 유행에 늘 뒤처진다”면서 “젊은 정치 신인을 많이 앞세우겠다는 건 긍정적 신호로 볼 수 있지만 당의 기득권층에서 기회를 ‘내려주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이 50% 가까운 물갈이를 통해 이미지 쇄신을 꾀한다는 말이 당 안팎에서 흘러나오지만 타성에 젖은 물갈이로는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끌어모으기 어렵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낙하산 방식의 일방적 물갈이로는 현재 한국당은 희망이 없다. 지금 하겠다는 물갈이가 결국 친박을 몰아내고 ‘친황 체제’를 마련하겠다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며 “2000년 당시 한나라당이 오세훈, 원희룡 같은 인재를 영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회창이라는 강력한 대권주자가 있었고 수권정당이 될 가능성이 커 보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전혀 다른데 한국당이 정말 젊고 유능한 인재를 영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김 교수의 말처럼 그간 한국당의 ‘신인 등용’은 결국 또 다른 계파 창출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였던 지난 1월 한국당이 ‘슈퍼스타 K’ 오디션 방식으로 젊은 정치인을 다수 영입했지만, 현재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형준 교수는 이에 대해 “당시 비대위가 자기 사람 앉히는 꼴밖에 더 됐나”라고 평가했다.

지난 6월 5일 국회에서 열린 ‘황교안×2040 미래찾기’ 토크 콘서트. ⓒphoto 연합
지난 6월 5일 국회에서 열린 ‘황교안×2040 미래찾기’ 토크 콘서트. ⓒphoto 연합

타성에 젖은 물갈이로는 희망 없다

사실 역대 총선은 정당이나 이념의 경쟁보다 ‘사람 경쟁’이 승부를 가르는 방식으로 흘러왔다.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 역시 몇몇 인기 정치인의 얼굴을 내세워 선거에서 이기려는 전략이 앞섰다. 그 배경에는 유권자들 역시 정치를 ‘인격화’해서 바라보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권자들이 특정 정당의 정책을 평가해서 표를 던지기보다 ‘저 사람이 마음에 드냐 안 드냐’를 기준으로 선택해왔다는 얘기다. 이는 결국 ‘이미지 정치’ ‘이벤트 정치’를 더 키운다는 비판으로 연결되지만 한국당은 그 ‘이미지’ ‘이벤트’ 정치에서도 민주당에 훨씬 못 미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실정치는 결국 이미지 메이킹을 어떻게 해서 어떤 쇼를 보여주는지에 따라 표가 갈리는데, 민주당에 비해 한국당은 아마추어 수준도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당 인재영입위원회는 지난 6월 말 박찬호 한국야구위원회 국제홍보위원과 이국종 아주대 교수 영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가 정작 본인들로부터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말만 들었다. ‘이미지 정치’에 아마추어적 수준을 보이고 있는 한국당의 조바심이 만든 해프닝이었다.

한국당도 이런 위기 상황을 인식한 듯 지난 6월 24일 당 홍보본부장으로 김찬형 추계예대 교양학부 객원교수를 임명했다. 김 본부장은 광고홍보 기획사인 제일기획 출신으로 한·일 월드컵 개막식 연출, ‘김연아 PT’로 알려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프레젠테이션 기획 등을 맡은 홍보 전문가다. 2030 표심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황교안 대표로서는 김 본부장에게 ‘한국당의 탁현민’ 같은 역할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 안팎에서는 김 본부장이 당명과 당 로고 교체 등 대대적인 이미지 변신을 기획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율 교수는 “자유한국당은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브랜드이면서 동시에 급조된 당명”이라며 “김 본부장에게 전권을 주고 이벤트 기획을 잘 해내야 새로 영입한 정치 신인들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 본부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명 교체 등은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되지 않은 사안”이라면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자료조사를 통해 유권자들의 니즈(수요)를 파악해나갈 것이다. 한국당이 ‘꼰대’ 이미지를 벗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차차 알아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을 먼저 해야지, 그렇게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지는 변화는 ‘사상누각’에 불과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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