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자유한국당 대학생위원장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김태일 자유한국당 대학생위원장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김태일 자유한국당 대학생위원장은 지난 6월 19일 당내 직선제 선거를 통해 선발됐다. 한국당이 대학생위원회를 만들고 직선제를 시행한 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1993년생으로 올해 만 26살이다. 한국당 내 상설위원장 중 유일한 20대다.

한국당은 올해 대학생위원회를 중앙당 내 상설위원회로 설치했다. 청년의 마음을 얻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인 셈이지만 지금까지 한국당 지도부가 보인 모습으로는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지난 7월 15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태일 위원장 역시 청년에 대해 무지하면서 청년을 말하는 당내 ‘어른’들을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뱉었다.

“청년을 더 이상 ‘사진 찍기용’쯤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한국당 내 기성세대는 청년들이 무엇에 진짜 관심이 있는지, 어떻게 해야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아직 모른다.”

충남 아산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김 위원장은 중학교 1학년이던 2006년, 아버지가 하던 건설자재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졸지에 ‘흙수저’ 처지가 되었다. 수십억원의 빚이 생겼고 집안 여기저기 ‘빨간 딱지’가 붙었다. 가족과 함께 친척 집과 모텔을 전전해야 했다.

고교 자퇴하고 17살부터 시장서 돈 벌어

갑자기 찾아온 가난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결심했다.

“학교에 앉아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3년에 대학교 4년간 공부하고 취업해서 돈 벌어봐야 일 년에 4000만원 정도 벌 텐데, 그렇게 해서 언제 빚을 갚겠나. 그럴 바에는 지금부터 돈을 벌자.’ 그리고 정확히 그해 12월 3일, 학교를 자퇴했다.”

돈 벌 궁리를 시작한 17살 소년은 천안중앙시장을 오가며 관찰을 시작했다. 많은 정치인들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구구절절 이야기하지만 김 위원장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돈을 벌려면 시장경제를 알아야 한다고들 하니까 정말 ‘시장’에 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기에 17살은 너무 어리고, 또 해봐야 시급 몇천원이니까. 매일같이 시장에 가서 상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상인들도 어린애가 왔다갔다 하니까 귀여워하면서 말을 잘해줬다. 그게 ‘시장경제’에 대한 나의 첫 공부였다.”

재래시장에서 시장경제를 배운 뒤 그가 처음 시작한 사업은 ‘테이크아웃 시리얼’ 장사였다. 출근길 직장인들에게 김밥과 주먹밥 파는 것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게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시리얼을 담아 팔았다. 결과는 성공. 금방 입소문이 나 프랜차이즈 제의까지 들어왔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내 스토리와 어린 나이를 탐낸 사람들의 유혹일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살이 된 그는 그동안 번 돈을 들고 미국에 갔다. ‘자유시장경제의 본토’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미국에서도 돈 벌 궁리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무비자로 체류 가능한 3개월 동안 미국 동부 쪽에 있는 모든 의류 아울렛 매장을 돌아다녔다. 거기서 찾은 쓸 만한 물건을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대일 방식으로 팔았다. 당시만 해도 ‘직구’가 보편적이지 않아 장사가 잘됐다. 합법은 아니었을 거다.(웃음)”

한국으로 돌아오고 얼마 후 그는 한국 사회에서 ‘페이퍼’의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한국 내 미국과 관련된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서 이력서를 쓰려고 해도 쓸 수 있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접어뒀던 대학 입시에 도전했다. 고교 자퇴를 결심했을 때도 ‘언젠가 대학은 꼭 가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딴 후 한국외대 국제학부 2014학번으로 입학했다.

“대학을 가겠다는 결정도 결국 우리 사회와 제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경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1학년 1학기 동안에만 대외활동 8개를 했다. 그런데 기업에서 하는 활동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어떤 단체의 장들이 자기가 정치 한번 해보겠다고 학생들을 끌고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 밑에서 할 바에는 내가 직접 하자’ 생각을 했고, 무작정 국회로 가 당시 새누리당 문을 두드렸다.”

얼마 뒤 그는 새누리당 대학생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을 수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의 대학생위원회는 청년위원회 산하 미래세대위원회에 소속된 작고 존재감 없는 기구였다. 이후에는 새누리당 원내 행정국 인턴으로 일하며 의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지켜봤다.

“내가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우리 사회 제도에서 낙오된 이들을 한 명이라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우울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듯이 그들에게도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이렇게 말해도 결국 ‘노력충’이라는 비난을 받을까.(웃음)”

김 위원장은 “나는 지금 한국당에 계신 분들 다수가 평생 못 보고 사셨을 계층들의 삶을 보면서 커왔다”며 자신의 정치적 강점을 강조했다.

“해봐서 아는데 식의 생각부터 버려야”

김 위원장은 현재 한국당이 하고 있는 ‘청년 소통’과 관련해 황교안 대표까지 거론하며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황 대표님은 본인이 청년과의 소통에 있어 강점이 있는 줄 안다. 이전 정부에서 일할 때부터 청년들과 스킨십을 꾸준히 한 점은 인정하지만 ‘나도 해봐서 아는데’ 식의 생각부터 버려야 청년들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있다.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청년들을 상대하는 방식은 ‘우리가 여러분을 만나줄 테니 소통해봐라’ 하는 식이다. 그렇게 해서는 청년의 마음을 결코 얻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은 대학생위원장 직책을 두고 ‘허업(虛業)’일 뿐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잠시 밟고 있는 계단이라는 것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자유민주시민혁명’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자유민주시민혁명이란 말 그대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을 키워내는 거다.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 교육이 아니라 반쪽짜리 반공교육 속에서 커온 사회다. 반공교육은 자유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하기보다는 그 반대급부에 대한 혐오를 키우는 데 치중했다. 그래서 반쪽짜리다. 자유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많은 선진국들은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피와 땀을 흘린 반면 대한민국은 미국에 의해 우연히 좋은 것이 얻어걸린 셈이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쓴다고 하지 않나. 요즘 사회를 보면 우리나라는 1950년대에 당첨된 복권의 당첨금을 다 쓴 것 같다. 그렇다면 복권을 새로 사든지 돈을 새로 벌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처음부터 다시 벌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지금 맡은 자리는 그걸 해내기 위한 초석인 셈이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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