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지난 8월 26일 부산 해운대구 반송시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지난 8월 26일 부산 해운대구 반송시장.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8월 2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반송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경기가 어떠냐”고 묻자 대부분 허탈한 표정만 지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가 내려지고, 3단계까지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걱정이 가득한 듯했다. 이곳은 전통시장으로 관광객의 영향을 그래도 덜 받는 곳이지만 관광객의 비중이 높은 지역은 타격이 더 컸다. 해운대 해변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조기에 문을 닫았다. 시장도 해변도 썰렁한 느낌이었다.

상인들은 “정부 재난지원금으로 조금 나아졌다가 다시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며 “관광이 부산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 코로나19와 긴 장마로 전에 없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들은 “만일 내년까지 이대로 간다면 버틸 재간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넉 달 끌어온 오거돈 사건을 바라보는 민심

공교롭게도 이날은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공직선거법위반 혐의 등을 수사해온 경찰이 수사 넉 달 만에 강제추행 혐의만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긴 날이었다. 총선을 의식해 사퇴 시점을 조율했다는 의혹을 산 공직선거법 위반 등은 무죄였고, 본인이 인정한 강제추행만 넘긴 것이다. 시장에서 만난 부산 시민에게 오 전 시장에 대해 묻자 “4번이나 떨어지고 시장 되어서 잘할 줄 알았는데 실망이 크다”며 “부산이 추락하는 것 같아 걱정이 많다”고 했다.

오 전 시장 사건 처리와 관련해 통합당 관계자는 “경찰이 네 달 동안 시간을 끌면서 밝혀낸 것이 하나도 없다”며 “결국 검찰에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경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오 전 시장 사건은 단순한 개인 문제를 넘어 지역 분위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8월 6일 부산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부산지역 신성장동력’ 보고서를 보면 2019년 부산의 수출품 비중은 농수산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의류 등 소비재가 전체의 64.7%였다. 미래 먹거리 산업은 취약하고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 2017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최근 3년간 주민등록 인구가 해마다 2만~3만명가량 준 것으로 나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터진 오거돈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은 “부산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냐”는 충격을 남겼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당은 전국적 열세임에도 부산에서 역대 최대인 15석을 얻었다. 오거돈 시장 추문이 총선 기간에 있었지만 공개는 총선 후였는데도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상황이 이러니, 내년 4월 치러지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노리는 통합당 후보군이 많다. 이진복 전 의원은 지난 8월 24일 비대면 방식으로 ‘정상화포럼’을 발족했다. 이 전 의원 측에 따르면 38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박삼석 전 동구청장, 이해동 전 부산시의회 의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역시 부산시장 출마를 노리는 유재중 전 의원은 9월 ‘가유포럼’ 발대식을 준비 중이다. ‘옳을 가’와 ‘YOU’를 합쳐 ‘유재중이 옳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조직은 유흥수 전 의원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3선 장제원 의원 역시 9월에 ‘부산혁신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논란이 되었던 아들 음주 교통사고 문제가 책임 추궁에서 동정으로 바뀌면서 출마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 자체 판단이다. 박민식 전 의원의 경우 자신이 주도하는 ‘젊은 부산’ 시즌2를 준비 중이다. 원희룡 제주지사, 김세연 전 의원, 김태호 의원, 하태경 의원 등 40~50대 젊은 정치인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모양새다.

통합당 부산시당의 한 당직자는 “현재 당헌당규상 경선은 당원투표 50%와 국민여론조사 50%로 결정된다”며 “현재 새 당명과 정강정책을 준비 중이어서 실제 어떻게 결정될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경선 역시 후보들은 빨리 결정하기를 원하겠지만, 당 입장에서는 상대당 상황도 봐야 하고 굳이 먼저 후보를 결정해서 유리할 것이 없다. 2021년 재보궐선거가 임박할 때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다. 당 소속 공직자의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선이 실시되는 경우 그 지역에 후보를 내지 않도록 돼 있는 당헌이 걸림돌로 작용해 서울과 부산시장 후보를 내야 하느냐 마느냐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통합당이 최근 내년 4월 보궐선거에서 의령군수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말라’는 압박으로 해석된다. 의령군은 통합당 소속인 이선두 전 군수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이 확정된 이후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 분위기는 ‘부산을 포기할 수 없다’는 기류가 강하다. 무엇보다 ‘부산 정권’을 자임해온 문재인 정부에서 부산시장을 포기할 경우 2022년 대선도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부산을 사수하지 못해 PK 교두보가 맥없이 무너질 경우 정권 재창출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지역 분위기도 최악은 아니라는 판단도 하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부산·울산·경남의 최근 정당지지율 조사에서 민주당은 상승세를 타는 분위기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서는 부산시장 출마 후보가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을 지낸 김해영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으로부터 사무총장 제의를 받을 때 “임기를 못 채울 수도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진 김영춘 총장은 언론에도 “(출마를) 마다하지 않겠다”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3선 의원, 해양수산부 장관 등의 경력을 앞세워 야권 바람을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여권 성향의 변성완 시장권한대행, 박성훈 경제부시장 등도 이름이 거론된다. 부산의 박재호·최인호 의원도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지만 현역의원으로서 출마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다만 이들이 나온다면 오거돈 시장 추문을 의식해 ‘시민 후보’ 혹은 무소속 형식이 예상된다.

“선거 전에 가덕도 결론 내라”

부산을 위시해 울산·경남 등 PK지역의 최대 현안은 가덕도 신공항 문제다. 지난 정부에서 김해공항 확장으로 가닥을 잡는 듯하다가, 다시 불씨를 살린 것은 현 정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부산지역에서 5석만 민주당에 준다면 신공항은 가덕도에 세울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민주당은 5석을 차지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당선 직후 “현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김해 신공항은 지난 정권의 잘못된 정치적 판단”이라며 “안전하고 24시간 운항이 가능한 가덕도 신공항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과 함께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기도 했다. 정권 실세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부산 시민들도 상당한 기대를 가진 것이 사실이다.

부산 해운대에서 만난 지역 언론인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조기에 문을 닫은 해변을 바라보며 “관광산업이 중심인 부산 입장에서 신공항이 절실한 것은 사실이다. 2030 엑스포 유치까지 계획하고 있어서 빨리 결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실 가덕도 신공항 이야기가 다시 나온 것은 박근혜 정부가 정한 것이라 무언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었지만 해외 전문가까지 불러들여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지었는데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했다. 그는 “가장 걱정되는 것은 선거가 임박해 (가덕도 신공항이) 될 것처럼 분위기를 잡다가 (공항을 짓지는 않고) 계속 끌고 가는 것이다”라며 “가덕도 신공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가덕도 신공항 타당성 검토 문제는 국무총리실 검증위원회로 넘어간 상태로, 야당은 “내년 보궐선거에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하루빨리 결론을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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