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의 8·15 광화문 집회. ⓒphoto 뉴시스
보수단체의 8·15 광화문 집회. ⓒphoto 뉴시스

‘문재인 파면’을 주장한 일부 보수진영의 8·15 광화문 집회는 지지율 하락 위기에 처한 문재인 대통령을 오히려 구원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30%대로 하락한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이 집회를 계기로 10%포인트 정도 반등했다. “많은 사람이 밀집한 광화문 집회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재확산에 원인을 제공했다”라는 여권의 주장이 과학적 검증 여부와 관계없이 여론을 어느 정도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번 광화문 집회 사건은 한국 정치의 ‘역동성’과 ‘불규칙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 대통령을 위기에서 구출해준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공격하기 위해 모여든 대규모 인파였다.

바꿔 말하면, 여권은 자신에게 돌진하는 적대세력의 에너지를 역이용한 듯하다. 물리학의 작용·반작용과 유사하다. 권투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상대를 받아치는 카운터펀치가 더 치명적이고, 야구에서 강속구를 받아치는 타구가 더 빠르게 더 멀리 날아간다.

나아가 지난 8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경찰버스들에 에워싸인 보수성향 시위대 인파는 ‘삼국지(三國志)’에서 적벽대전 협곡으로 몰린 조조의 100만 대군을 연상시킨다. 재확산한 바이러스는 적벽의 동남풍과 같았다.

필자가 이전에도 언급했듯, 2017년 이후로 여권에 보수진영은 늘 쉬웠다. 이번에도 보수진영은 큰 실수를 저질렀고 여권은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보수가 계속 실패하는 이유, 보수가 인기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주말골퍼가 공이 안 맞는 이유처럼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두 가지가 특별히 눈에 띈다. 첫 번째 이유는 국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점이다.

생명과 건강을 위협한 8·15 보수 시위

정치 분야에서 거의 불변하는 진리는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이익을 침해하고 있다고 느낄 때 국민은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조용히 거둬들인다”라는 점이다. 이념이나 가공된 이미지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실리이기 때문이다. 지난 칼럼에서 설명한 바 있다.

지난 8월 초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입법이 많은 국민의 경제적 이익을 제약하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했다. 마찬가지로 8·15 보수 시위는 생명과 건강이라는 국민의 근원적 이익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때문에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른 것이다. 간단하고 자명한 공식대로 일이 흘러갔다고 할 수 있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은 ‘한정된 자원의 배분 방식’일 뿐이다. ‘나와 내 가족이 오래, 건강히, 잘 살겠다’라는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진보를 타도하고 보수를 관철하기 위해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는 것은 목적과 수단의 전도가 된다.

책임은 전광훈 목사 등 8·15 집회를 주도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보수의 본산인 미래통합당은 이 집회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표면적 논리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상황과 맥락까지 고려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통합당은 이 보수 집회의 위험성을 사전에 경고하지 않았고, 황교안 대표 시절부터 ‘아스팔트 보수의 지도자’로 전광훈을 키워놓았으며, 일부 현직 의원의 집회 참여로 스스로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이런 사정이 여론에 반영되었기에 상승세이던 당 지지율이 하락으로 반전했을 것이다.

독일의 경우 24만명이 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2분기 국가 경제가 마이너스 9.7% 성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런 악재에도 불구하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79%라는 경이적 지지율을 얻었다.

반면 높은 인기를 누리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지율 추락으로 대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메르켈과 트럼프의 차이를 만든 건 생명에 대한 둘의 태도였다. 메르켈은 특별한 해결책을 내진 못했지만, 코로나19에 진지하게 대처했다. 트럼프는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고 했고 인체에 해로운 약품을 복용하라고 했다. 국민의 생명에 관한 문제에 얼마나 선의를 갖고 진지하게 대하느냐는 것은 여론의 향배에 큰 영향을 준다.

개천절에도 광화문 집회를 열 것인가?

언제부턴가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은 ‘광화문 태극기 집회가 열리는 기념일’이 되었다. 올해 삼일절엔 ‘코로나19를 이유로’ 열리지 않았고 광복절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열렸다. 이 차이는 보수진영에 극과 극으로 다른 결과를 안겼다. 삼일절 후 보수진영은 융성기를 맞았다. 광복절 후 기세가 꺾였다. 개천절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때때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자신과 타인을 위한 최고의 선택일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줄 위험이 있다면,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편이 낫다. 무위(無爲)와 여백, 온건은 동양적이고 보수적인 덕(德)이었다. 이제 보수의 언행에서 이런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충격 이후 보수는 고유의 평정심을 잃고 있다.

“국민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 결국 이 원칙을 외면하는 한 보수의 재건은 요원하다. 보수는 정권의 탈환을 원한다. 국민적 지지를 얻어야 가능한 일이다. 국민이 갑이고 보수가 을이다. 갑은 을에게 폐를 끼쳐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게 갑질이다. 그러나 갑에게 폐를 끼치는 을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보수가 인기가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는 점이다. 보수성향의 많은 이는 자신을 주류라 여기지만, 그렇게 볼 객관적 근거는 별로 없다. 행정과 입법 전체는 진보가 담당하고 있다. 거의 유일하게 저항하는 검찰은 ‘공수처’와 겨루는 링 위에 올려졌다. 여권에선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서 있지 말고 링 바닥에 그냥 누워 있으라’고 한다.

언론과 포털에서의 열세는 보수도 인정한다. 문화 권력도 진보가 우위다. 최순실 사태의 여파는 재판 기간만큼이나 오래간다. 도덕적 정당성에서도 보수가 밀린다. 일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진보성향은 국민의 30%대지만, 보수성향은 10~20%대로 내려앉았다.

누가 보더라도 보수가 상대적 소수파인데, 보수 자신은 자신을 높이 평가해 진보와의 ‘정면승부’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결과가 8·15 집회 강행과 정치적 참패로 나타난 것이다.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주도권)’ 이론은 원래 ‘잘사는 나라의 공산화’를 위한 전략이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선 소수파의 정권교체 전략으로도 유용하다.

이 이론에 따르면, 소수파가 볼셰비키혁명과 같은 기동전(war of movement)을 일으켜 승리하기란 웬만해선 불가능하다. 따라서 진지전(war of position)이 현실적 수단이 된다. 입법, 언론, 사법, 시민사회, 보건, 복지, 경제, 노동, 문화 등 각 영역에서 소수파는 단단한 이론으로 무장한 자신의 진지를 구축한다.

이어 이 진지를 중심으로 주류와 논쟁을 일으켜 이 논쟁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한다. 이를 통해 소수파는 주류가 장악한 각 영역을 야금야금 조금씩 파고들어 간다. 결국 주류의 지적·도덕적·문화적 우위를 허물어뜨리고 마침내 헤게모니를 되찾는다. 이것은 소수파의 선거 승리와 평화적 정권 탈환으로 이어진다.

이제 보수는 상대적 소수파다

그러나 현재의 보수는 자신이 소수파이고 약자임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기에 기동전도 진지전도 아닌 엉거주춤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보수진영의 홍준표 대선후보는 “스트롱맨이 되겠다”라고 했다. 보수는 이 스트롱맨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강한 자신이 강한 리더십(leadership)을 발휘해 국민 전체를 계몽하고 나라를 구하려 한다.

그러나 상당수 국민은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에 필요한 것은 열세를 인정하는 겸손함과 리더의 지도에 따를 건 따르는 팔로어십(followership)인지 모른다.

예를 들어 지난해 보수 야당을 이끈 황교안 전 대표는 삭발을 단행했고 단식을 했고 농성을 했다. 정부의 공수처 추진 등에 반대의 결의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전·현직 보수성향 의원들의 릴레이 삭발과 단식이 이어졌다. 삭발한 황 전 대표의 모습이 어느 유명 외국 배우를 닮았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언론 보도는 대체로 중립적이었고 다양한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에서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유력 정당 대표의 전례 없는 삭발에 공감보다 냉소가 많았다. 단식은 삭발로 야기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효과도 초래했다. “외국 언론은 한국 같은 주요 국가의 정치지도자가 삭발·단식이라는 전근대적 퍼포먼스에 나서는 것을 신기하게 보도한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냉소는 혐오로도 연결됐다.

보수 야당 측은 여론에 호소하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삭발·단식·농성이 진보 주류와의 사생결단식 정면대결을 지향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삭발은 그 시각적 효과가 매우 크다. 단식은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기에 더 극단으로 비친다. 이런 방식의 정면대결은 시중에서 대체로 부정적으로 평가됐다. 황 대표의 지지율이 정체 또는 하락 추세를 보인 것이다.

총선을 통해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압도적 다수가 됐다. 이어 국회 법사위원장을 차지했다. 통합당은 강력히 반발해 자신에게 돌아올 상임위원장직들을 전부 포기했다. 이 역시 주류인 여당과의 정면대결 또는 기동전의 모습이었다. 상임위원장이라는 견제장치를 잃은 이후 국회 안에서 야당의 존재감은 매우 약해졌다.

냉정히 보면 민주당의 법사위원장 장악은 협치 정신에 맞지 않고 오랜 국회 관행에도 어긋나지만 법을 어긴 것은 아니었다. 통합당은 상임위원장 포기를 의로운 결정으로 생각할 것이다. 몇 달이 지난 지금 대다수 국민은 이 결정을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

상임위라는 ‘진지’를 포기한 대가

통합당이 약세를 인정하는 겸손과 주류 진보의 결정에 어느 정도 따르는 팔로어십을 발휘해 상당수 상임위원장직을 가져왔다면 정국은 달라졌을 것이다. 여당의 임대차법 일방통과 같은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적어도 통합당이 위원장을 차지한 국회 상임위들에선 여당의 법 통과가 어렵거나 상당 기간 지체됐을 것이다. 이 상임위들은 보수 야당의 ‘진지’가 됐을 것이다. 훨씬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을 것이고 야당의 주장이 언론에 훨씬 많이 노출됐을 것이다. 이는 야당이 원한 정책 정당, 대안 정당의 모습이기도 하다.

부동산 파문, 경제난, 조국 사태, 윤미향 의혹, 울산 부정선거 수사. 댓글조작 재판을 비롯한 여러 문제는 진보 주류의 지적·도덕적 우위를 약하게 한다. 진중권 전 교수, 민변 출신 권경애 변호사,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 서민 교수, 강양구 기자 같은 진보 인사는 정부에 등을 돌렸다. 이들이 공동으로 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진보 주류의 문화적 우위도 위협받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진보·보수 양당제 상황에서 집권 진보를 대체할 유일 대안인 보수 야권은 더 인기가 없다. 당분간 진보 우위가 바뀔 조짐은 없어 보인다.

허만섭 국민대 교양대학 부교수·전 신동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