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일 재수감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왼쪽)과 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2일 재수감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왼쪽)과 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photo 뉴시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횡령 혐의 등으로 징역 17년형에 벌금 130억원을 확정받아 지난 11월 2일 재수감됐다. 그는 형기를 채우면 95세에 석방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앞서 22년형을 선고받은 상태다.

보수성향 두 전직 대통령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다. 수감되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이 전 대통령은 “나를 구속할 수 있어도 진실을 가둘 수 없다는 믿음으로 이겨내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주장에는 대법원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명박 수사’ 와중에 이명박에게 격노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을 겨냥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사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청와대가 언론에 전한 바에 따르면, 그 직후 문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 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내가 이렇게 분노했다고 공개하라”라고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문 대통령이 자신의 ‘분노’를 밝히지 않는 것이 대법원 판결의 중립성 확보 측면에선 나았다. 대통령도 사람이므로 얼마든지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공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피의자에겐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 이들은 구속되지 않기 위해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 피의자의 변명을 다 들어준 뒤 냉정하게 죄의 유무를 판단해 단죄하면 그만이다.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피의자에 대한 대통령의 공개 분노는 자칫 ‘수사·판결의 가이드라인’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한국은 삼권분립을 표방하지만, 한국 대통령은 ‘제왕(帝王)’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정도로 ‘유무형의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진보성향 대통령이 라이벌인 보수성향 전직 대통령에 격분하고 진보성향 판사들로 채워진 대법원이 17년형이라는 중형을 때린 모양새’가 좋진 않다.

이명박 재구속은 보수 분열의 정점

단순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소셜미디어에선 “이명박의 ‘다스 실소유’ 혐의 등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전직 유도선수의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9년 구형)보다 훨씬 중할까?”라는 의문도 나온다.

이명박·박근혜 사법 단죄의 적절성은 미래에 이론(異論) 없이 규명될지 모른다. 정치적 편향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AI(인공지능) 판사들’이 방대한 수사기록과 판례 빅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객관화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일부 학자에 따르면, 판·검사는 AI로의 대체가 기술적으로 수월한 직업군으로 분류되어 있기도 하다.

이번 이명박 확정판결은 2007년부터 14년 동안 진행되어온 보수 분열의 정점(頂點)에 해당한다. 내가 보기에 ‘2007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경선’은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단순한 정당 내부행사가 아니라 정치지형을 뒤흔든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맞붙은 이 경선에서 소위 ‘도덕성 검증’은 ‘권력 쟁취의 도구’로 줄곧 사용됐다. 이 경선은 두 사람에 대한 높은 여론 지지도로 인해 사실상 대선 본선과 같았다. 양측은 같은 정당 소속이고 보수적 이념을 공유했음에도 상대의 대중적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한 공격을 치열하게 주고받았다.

결국 경선에서 패배한 박근혜가 결과에 승복했지만, 승자인 이명박은 큰 내상을 입었다. 경선 때 나온 ‘도곡동’ ‘BBK’는 대통령이 된 그의 권위와 정당성에 흠집을 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문이 발생하면서 취임 수개월 만에 수십만 촛불시위대가 퇴진을 요구했다.

경선 공방으로 이명박·박근혜 양측의 감정적 앙금도 커졌다. 이 부차적 효과로 인해 ‘친이(親李)’ ‘친박(親朴)’ ‘비박(非朴)’으로 대표되는 보수 분열이 발생했다. 이 분열은 비박의 탄핵 가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보수정당 대선·총선·지방선거 연패, 보수세력 위축으로 이어졌다.

경선 당시 세밀하게 공개된 ‘다스’ 의혹과 ‘최순실’ 의혹은 진보진영의 목표물이 됐고 결국 이·박 전 대통령은 이 문제로 구속됐다.

한국 정치인들은 숭고하고 영적인 도덕성을 권력 쟁취라는 세속적 욕망에 자주 복속시킨다. 경선 시기에도, 대선 본선에도, 집권 시기에도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목적이 아니라 정적을 제거하는 목적으로 도덕성 검증을 주로 사용한다.

그 결과, 조선시대에 성리학 예법이 사화(士禍)의 명분이 되었듯, 현대 한국 정치에서 도덕성 검증은 승자독식 권력 투쟁의 핵심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 대신 ‘솔선수범해 자신의 인격부터 닦는다’라는 수신치국(修身治國)의 원리는 경시된다.

동료 경쟁자를 사생결단 제거하는 보수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이 보여주듯이, 이런 양상은 보수진영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수 정치인들은 바깥의 경쟁 상대인 진보 정치인뿐만 아니라 내부 경쟁자를 곧잘 공격한다. 진보성향 더불어민주당과 그 전신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선 대검중수부 수사까지 동원되는 등 이러한 사생결단 공방은 없었다.

물론 윤리적으로 결함이 있는 인물이 고위 공직에 올라서는 안 되지만, 보수진영 인사들은 ‘인간미’가 덜 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같은 이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에 대해, 심지어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사람들에 대해 동료애를 덜 느낀다. 마치 실적과 효율만 중시하는 기업체 중간간부가 ‘꼰대’처럼 직원들을 닦달하는 것과 같다.

결국 보수 분열은 내부의 동료 경쟁자를 제거하는 무기로 도덕성을 위선적으로 활용해온 데 따른 자업자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보수 분열은 보수세력의 위축을 필연적으로 초래하는데, 지금도 이 분열과 위축은 계속되고 있다.

보수 유튜버 간 싸움은 보수-진보 간 싸움보다 더 살벌해 보인다. 안보, 경제, 사회에 관한 헌법적 가치에 있어서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 태극기세력, 비(非)태극기보수세력 사이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오가는 말은 장난이 아니다. “역사의 쓰레기통” “개인숭배집단” “최순실 돈” “주사파 생활 청산 못 해” 서로 다시는 안 볼 사이처럼 대한다.

보수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몇몇 발언도 분열의 언어에 가깝다. 국민의힘 처지에선 정권 탈환을 위해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잡아야 한다. 신선함은 덜 하지만 외연 확장 효과가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로 유용한 카드다. 개별 입당이냐 합당이냐 연대냐 같은 방법론은 부차적인 일이다. 서로 마음이 맞는 게 먼저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의 초청으로 안 대표가 강연할 땐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장은 “국민의당과 통합해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안 대표의 역량도 평가절하했다.

“처음 그분한테 ‘정치 하고 싶으면 국회부터 들어가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했더니 저를 보고 ‘국회의원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사람들인데 왜 자기보고 의원을 하라고 하느냐’고 하더라. 이분이 정치를 제대로 아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말을 더 이어가지 않고 자리를 뜬 적이 있다. 내가 평가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미래 자산을 스스로 흠집 내는 보수

김 위원장의 발언 수위는 ‘신경전’이나 ‘기싸움’을 넘어선다. 보수의 미래 자산이 될지도 모르는데, 보수 스스로 흠집을 내고 그 가치를 깎아내린다.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 출신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전히 환상 속에 빠져 계신 것 같아 안타까움마저 든다”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오세훈 전 시장은 아시아경제-윈지코리아컨설팅 여론조사(11월 1~2일 서울시민 1000명 대상)에서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중 1위에 올랐다. 안철수 대표,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이 2, 3위를 기록했다.

오세훈은 보수진영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될 만하다. 그러나 그 역시 당내에서 평가절하에 시달리는 듯하다. 보도에 따르면, 막걸리 만찬에 참석한 일부 국민의힘 중진 인사들은 김종인 위원장에게 ‘당 안에 후보가 없다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7년 이후 보수진영에선 자기편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이러한 집단적 자기비하와 분열 속에서 이젠 버릇처럼 외부에서 구세주를 찾는다. 김종인에게, 윤석열(검찰총장)에게 눈길을 돌린다. 그러자 윤석열은 중도보수표까지 흡수해 국민의힘 주자들을 왜소화시키고 있다. 이런 윤석열이 대선이 코앞인 내년 하순에 모두의 예상을 깨고 범여권에 영입된다면? 혹은 과거 대선 때의 고건·반기문처럼 여권의 총공세 한 방에 녹다운된다면?

막걸리 만찬에서 김종인 위원장은 “내년 서울 보궐선거는 뭐니 뭐니 해도 집값하고 세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정당의 관점에선 정확한 정세 판단이다. 그러나 구체적 실행계획이 없다.

보수정당은 여론조사를 안 믿는다면서도 일부 조사에서 정당지지율이 19%로 내려가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다른 조사에선 32%가 나와도 비관론이 우세하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되고…’ 하면서 자기편 인물들의 가치를 서로 강등시키는 논의에 열중한다.

‘보수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회생의 첩경임에도 이 작업을 외면한다. 유권자가 안겨준 7석 정도의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경솔하게 포기해 ‘식물 야당’을 자초했다. 국감의 주인공은 야당이 아니라 윤석열이 됐다.

야당발 지역 탕평은 고질적 지역감정 해소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지금 진보와 호남에 ‘겁’을 먹어서 서진(西進)하고 있다. ‘호남의 지역 민원 대거 들어주기→호남의 민심 얻기→이를 토대로 서울에 사는 호남 출신 유권자의 마음 얻기→서울시장선거에서 승리하기’라는 ‘멀고도 먼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

대신 수많은 서울 유권자의 눈앞에 닥친 ‘전세대란’과 ‘재산세 폭탄’에 대해선 비난만 찔끔하고 믿을 만한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당의 모든 정책 역량을 이 문제 해결에 쏟아야 함에도 움직임이 거의 없다.

2008년 총선 때 보수성향 한나라당은 서울을 석권했다. 서울 거주 호남 출신 유권자의 환심을 사는 전략을 썼기 때문이 아니다. 보수적 가치에 충실한 뉴타운 개발 공약으로 서울 유권자를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지금의 보수진영은 이러한 자신의 과거 장점마저 잃어가고 있다.

이명박 확정판결은 ‘보수의 회생은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분열’과 ‘무(無)정책’은 어느덧 보수의 체질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미나 동료애 없이 서로 이전투구하는 것도 여전하다. 이러한 병리적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변화의 에너지가 아직 느껴지지 않는다.

허만섭 국민대 교양대학 부교수·전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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