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여수엑스포를 앞두고 복선전철로 개량된 전라선을 달리는 무궁화호 열차. 사진 위쪽에 옛 전라선 단선철도가 보인다. ⓒphoto 뉴시스
2012년 여수엑스포를 앞두고 복선전철로 개량된 전라선을 달리는 무궁화호 열차. 사진 위쪽에 옛 전라선 단선철도가 보인다. ⓒphoto 뉴시스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산에서 ‘가덕도신공항’을 4년 만에 부활시킨 정부 여당은 호남에서는 철도고속화 군불을 때고 있다. 익산~여수엑스포(역)를 연결하는 전라선 철도고속화와 함께 철도가 없는 대구~광주 간 소위 ‘달빛(달구벌~빛고을)내륙철도’ 신설을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익산~여수엑스포를 연결하는 전라선의 경우 2012년 여수엑스포를 앞두고 복선전철이 놓이면서 KTX가 다니는 준(準)고속화가 이뤄졌는데, 이를 경부고속철과 호남고속철처럼 최고시속 300㎞ 고속철이 다닐 수 있게끔 고속화하겠다는 것이다. 총연장 180㎞ 전라선을 고속화하는 데 따른 사업비는 기존선 개량방식으로 약 3조원, 신선을 놓는 방식으로는 약 5조원대로 추산된다.

앞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0월 30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남과 전북이 공통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전라선 KTX 문제는 내년부터 2030년까지 추진하는 ‘제4차 국가 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되도록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께 부탁했다”고 밝혔다. 이낙연 대표는 전남지사 출신으로 호남을 최대 지지기반으로 대선을 준비 중이고,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정읍 출신으로 향후 전북지사 출마가 거론된다. 호남 출신 당정 고위직의 이해가 전라선 고속화 앞에서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이낙연 대표가 고속화를 언급한 전라선의 경우, KTX가 투입되는 다른 재래선에 비해서도 선형이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2012년 여수엑스포를 앞두고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모두 2조9010억원을 들여서 최고시속 230㎞까지 달릴 수 있는 수준으로 선로 개량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과거 전라선 개량사업에 참여한 정진우 전 한국철도학회장은 “전라선을 경부선 이상으로 R(곡선반경)=1000m로 계획한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여수엑스포 앞서 2조9010억 투입 개량

전라선은 직선화 정도를 나타내는 곡선반경 역시 다른 재래선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이는 전라선 노선도만 들여다봐도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한국철도(코레일) 측에 따르면, 전라선 전북 일부 구간(전주~남원)의 경우 곡선반경이 1만m에 달하는 곳도 있다. 국내 철도 중 가장 직선에 가깝다는 경부고속철의 최소 곡선반경이 7000m, 호남고속철이 5000m인데, 전라선 일부 구간의 경우 이보다 월등한 셈이다. 이 구간에 있는 슬치터널은 길이 6.12㎞로 일반 철도터널 중 최장 터널이다.

실제 호남선과 전라선이 분기하는 익산에서 여수엑스포까지 전라선 180㎞ 구간은 KTX 1시간32분, 무궁화호 1시간58분으로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반면 전라선과 동일하게 재래선에 KTX를 투입하고 있는 경전선 KTX의 경우, 동대구~진주 구간의 거리가 159㎞로 전라선(익산~여수엑스포 180㎞)에 비해 20㎞가량 더 짧은데도 불구하고 KTX로 1시간33분이 소요되고, 무궁화호로는 2시간15분으로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가장 빠른 열차 기준) 전라선 KTX(익산~여수엑스포)의 경우 선형이 좋아 어느 정도 속도를 낼 수 있는 반면, 경전선 KTX(동대구~진주)는 선형 자체가 불량해 제 속도를 낼 수 없는 탓이다. 코레일 측은 “전라선 전 차선 개량 구간의 최고속도는 고속차량 230㎞/h”라고 밝혔다.

과거 철도 신설이나 개량은 여수엑스포나 평창동계올림픽과 같은 대형 국책사업과 맞물려 진행됐다. 하지만 호남지역에서는 당분간 대형 국책사업이 예정된 것도 없고, 고령화와 인구 부족으로 인해 고속화에 따른 여객수요마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전남과 전북이 각각 23.5%, 21.3%로 전국 광역지자체 중 1, 3위에 올라 있다.

전라선이 통과하는 시군 중에는 과거 고속철 정차 기준으로 삼았던 인구 100만명 이상 도시가 단 한 곳도 없다. 가장 큰 도시라 해봤자 전북도청이 있는 전주 정도로 인구 65만명에 그친다. 익산과 남원도 각각 28만명, 8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전남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전남에서 전라선이 통과하는 가장 큰 도시인 순천과 여수가 각각 28만명에 불과하고 곡성, 구례 등은 각각 2만8000명, 2만6000명 정도에 그친다.

반면 전라선과 같이 재래선에 KTX를 투입하는 경전선 KTX 구간의 도시는 대구 242만명을 비롯 창원 103만명, 김해(진영) 54만명, 진주 34만명, 밀양 10만명 등으로 월등한데도 불구하고 아직 철도 고속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해 열차 수요가 언제 회복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전라선 고속화는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발 승객 급감으로 코레일은 지난 상반기 714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올해에만 약 1조원 이상 적자가 확실시된다. 전라선 고속화를 하면 고속열차 증편 등도 뒤따라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코레일은 지난 9월 12개 지역본부를 8개로 통폐합해, 광주본부와 전남본부를 순천의 광주전남본부로 통합하기도 했다.

‘1市 2역’ ‘郡 정차’만 개선해도

호남표 확보를 위한 선거공학적 고려를 제외하고 여객수요나 경제성 측면만 놓고 보면, 선형 자체가 비교적 양호한 전라선 고속화는 다른 노선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전라선은 고속화가 아닌 기존 노선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운용의 묘(妙)’를 발휘하면 표정속도를 더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라선 KTX가 지나는 구간의 경우, ‘1시(市) 1역’이 아닌 ‘1시 2역’이고 군(郡) 지역에까지 정차하면서 표정속도를 까먹는 곳들이 한두 곳이 아니다.

인구 28만명에 불과한 여수시는 여수엑스포역과 여천역 두 곳에 전라선 KTX가 정차한다. 인구 28만명의 순천시 역시 순천역과 구례구(口)역 두 곳에 ‘1시 2역’의 KTX 정차가 이뤄진다. 과거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 등 ‘3려(麗)’가 통합해 여수시가 된 점, 구례구역이 비록 순천에 있지만 구례군의 여객수요를 커버한다는 특수성을 인정한다 해도 인구가 50만명이 채 안 되는 중소도시에 KTX를 두 번씩이나 세우는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 코레일 내부에서도 나온다. 인구 2만8000명에 불과한 군(곡성군)에까지 KTX를 정차하니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구례구역과 곡성역의 승하차 인원은 각각 20만명과 30만명에 그쳤다.

전라선 고속화에 앞서 여전히 단선(單線)으로 돼 있는 구간을 복선으로 바꾸기만 해도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라선 여천~여수엑스포(역) 구간의 경우, 2012년 여수엑스포를 앞두고 대대적인 선형 개량이 이뤄졌으나 여전히 단선으로 남아 있다. 오동도 등 여수 일대 관광지와 직접 연결되는 여수엑스포역의 경우, 지난해 승하차 이용객이 176만명으로 여천역(73만명)보다 많다.

정작 전라선 철도가 여수공항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도 역이 없는 것도 난센스다. 청주공항 옆에 간이역을 신설한 충북선, 노선을 기형적으로 비틀어 무안공항과 연결한 호남고속철과도 많은 대조를 이룬다. 철도계의 한 관계자는 “당초 수요 부족을 염려해 여수(엑스포)역을 없애고 여천역으로 통합하려고 단선 구간으로 남겼는데, 지역 민원에 밀려 둘 다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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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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