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월 20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율이 좀처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새해 이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에 이어 ‘코로나19 이익공유제’ 등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논쟁적 의제들을 연속으로 던졌지만 정국의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나 정치컨설팅 전문가들은 이 대표의 지지율 하락세 원인으로 보통 ‘친문이 아니면서도 친문과 차별화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꼽는다. 하지만 당내 관계자들의 설명은 좀 다르다. 한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표의 지지율 하락세가 본격화한 계기는 지난해 하반기 국정감사가 끝난 뒤 발생한 백신 미계약 사태였다고 한다. 지난해 8월 취임한 이낙연 당대표-한정애 정책위의장 조합은 전임 이해찬 대표-조정식 정책위의장 조합에 비해 당정 간의 소통이나 정책 준비 등에서 미흡한 모습을 여러 번 노출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당원들 “이해찬 지도부에 비해 무능”

특히 지난해 하반기 백신 부족 사태가 발생했을 때 청와대가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국정감사 때 민주당 의원들은 이런 걸 체크하지 않고 무얼 했냐”는 성토가 권리당원들을 중심으로 나왔었다고 한다. 정부가 백신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지는 야당이 아닌 여당이 챙겼어야 할 사항인데, 그러지 못해 정부가 질타를 받았다는 불만이 당 지도부를 향해 제기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친문, 비문 이런 계파와 상관없이 이해찬 대표 시절 지도부는 굉장히 유능했고, 지금 지도부는 상대적으로 무능하다는 인식이 많다”며 “이해찬 대표 때는 당정이 코로나19 방역을 잘해냈고 그 결과가 총선으로까지 연결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환경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친문 의원 중 한 명인 홍익표 의원이 민주당 정책위의장에 취임하면서 이 대표와 당의 메시지가 충돌하는 모습도 연출되고 있다. 홍 정책위의장이 이 대표가 화두로 던진 ‘코로나 이익공유제’와 관련해 최근 “은행권의 이자도 멈추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냈는데, 이 대표가 “이자까지 정치권이 관여하는 것은 몹시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제동을 건 것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전임 한정애 정책위의장 같은 경우는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홍익표 의원의 경우 친문인 데다 색깔이 강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당 대표와는 결이 다른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책위의장은 당 정책을 심의하고 입안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통상 3선 이상의 중진이 맡는다. 특히 집권 여당의 정책위의장은 정부 정책, 예산안과 관련한 당정 협의를 주관하는 중책이다.

이 대표의 흔들리는 리더십은 국무총리로 인기를 끌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여기에는 환경적 요인도 있다.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로 재직했던 이 대표는 국무회의에서 준비가 미진하거나 회의에 늦는 장관이 있는 경우 따끔하게 질책하는 모습으로 조명받았다. 반면 당에서는 대표이긴 하지만 행정부에서처럼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소속 의원들에 대해 총리 시절처럼 질책이나 지적을 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당에 들어와서 보니 의원들끼리는 굉장히 수평적인 분위기라 놀랐다”고 했다.

결국 이 대표의 지지율 하락세는 흔히들 관찰하듯 친문·비문 계파 탓이라기보다는 ‘유능한 집권당’을 원하는 여당 지지자들의 불만이 누적된 결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설명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이 대표는 텃밭인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빠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아시아경제가 지난 1월 1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대표는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맞대결에서 39% 대 46.8%로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

±3.1%)를 넘어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내 경쟁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같은 조사에서 윤 총장과 양자대결 시 42% 대 45%로 오차범위 내에서 경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의 지지율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꾸준히 하락해 최근에는 각종 여론조사 3자 대결에서 윤 총장, 이 지사와 상당한 격차가 나는 3위로 하락했다.

여당 지지자들의 누적된 불만이 원인

이 여론조사를 수행한 박시영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 역시 앞서 언급한 여권 관계자와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이 대표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이유는 야권이나 중도층에서의 불만이 아닌, 여권 지지층에서의 불만 누적이라는 설명이다. 민주당 지지층이 원하는 ‘민생 개혁’에 지나치게 머뭇거리면서 당정 지지율이 동시에 하락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해 절박해진 계층을 위한 당정의 과감한 민생 드라이브 움직임에서 총대를 메지 않고 머뭇거리는 이낙연 대표의 최근 움직임이 지지율에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이번 윈지코리아컨설팅 조사에서 야권 후보로 윤석열 총장이 나왔을 때 이낙연 대표는 이재명 지사에 비해 4.8%포인트 낮은 지지율을 받았는데, 박 대표는 이 같은 격차에 대해 “당 대표가 절박한 처지에 몰린 계층을 위해 과감한 민생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데 은행권의 이자 멈춤이나 제한에 대해 총대를 멘 정책위의장과는 달리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런 분석은 최근 여권 지지층이 이 대표에게 주문하는 사안들을 봐도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업손실보상제, 임대료 부담 줄이기, 은행권 이자제한, 대출확대 기간연장 등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 추경에 반영하고, 이를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해 범여권의 지지기반을 더 넓히고 단단히 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 여권 지지층의 주문이다.

이 대표의 지지율은 새해 들어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제기하면서 더욱 하락하는 양상이다. 특히 이 대표의 고향이자 그동안 이 대표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빠지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 대표는 호남에서 지지율이 빠지는 걸 보면 앞으로 지지율이 다시 오르기는 힘들 것”이라면서도 “그간 호남 지지율이 너무 높았는데 어찌 보면 지금 내려가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제기한 사면론이 정치부 기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동교동계와의 교감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사면권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만큼 청와대와 사전에 논의되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청와대는 사면론이 제기되기 전에 시나리오별로 여론조사를 다 돌려봤을 것”이라며 “사면론은 길게 보고 던진 카드이고 올해 내내 여파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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