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9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제4지구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을 방문해 조합관계자들과 재개발구역을 둘러보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지난 1월 19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제4지구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을 방문해 조합관계자들과 재개발구역을 둘러보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결국 변수를 걷어내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상수가 됐다. 지난 1월 17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10년 전 빚이 있다”며 정치적 부채를 걷어내기 위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기로 했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군 중 지지율 선두를 다투던 그다. 입소스(IPSOS)가 SBS의 의뢰로 지난해 12월 31일부터 1월 1일 사이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오 전 시장은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적합도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26.9%)에 이어 2위(12.1%)를 차지했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 의뢰로 1월 2〜3일 사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안철수(28.5%), 나경원(12.9%)에 이어 3위(12.6%)였다.(자세한 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은 4월 7일이다. 출마 시점으로 보면 채 3개월도 남지 않았다. 오 전 시장은 보궐선거 얘기가 나올 때마다 차출 대상으로 언급되던 정치인이었다. 선거 필승을 위해서 ‘빅네임’이 필요하다는 국민의힘 내부 여론은 매번 오 전 시장을 1순위로 불러냈다. 그때마다 오 전 시장은 손사래 치며 “대선으로 직행하겠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결국 서울시장으로 급을 낮췄다.

그가 합류하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2011년의 기억을 불러냈다. 당시의 출연자들이 10년 뒤 모두 뭉쳤다. 과거 출마를 선언했다가 박원순 전 시장을 지지하며 물러났던 안철수 대표, 박 전 시장과 단일화 후보 경선에서 져서 분루를 삼켰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박 전 시장에게 본선에서 패했던 나경원 전 의원 등이 2021년 서울시장을 향해 또 한 번 달린다. 당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연계해 시장직에서 내려오며 이들을 시장 후보로 불러냈던 오 전 시장까지 등장하며 무대는 완성됐다.

대선 직행 접고 체급 낮춘 이유

대선으로 직행하겠다는 오 전 시장의 생각에 변화의 기류가 읽힌 건 11월께부터였다. 후보적합도에서 1위를 기록하는 여론조사들이 나오던 때다. 서울시장 필승카드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당 안팎에서 돌았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밖에서 후보가 될 만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오 전 시장은 자신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면 곧바로 이어질 대선에서 당내 후보군이 없어진다는 걸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언론 인터뷰에서 비슷한 뉘앙스를 밝힌 적이 있다. 그가 서울시장으로 향하면 국민의힘에는 윤석열 검찰총장 변수를 제외하면 당 밖에 있는 홍준표 의원과 당내 인사인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정도만 남는다. 강력한 차기가 없다. 오 전 시장 입장에서 반대로 얘기하면 대중 인지도만을 고려했을 때 대선에선 해볼 만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결국 막판에 그는 서울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울시장 출마 회견에서 오 전 시장이 강조한 건 “대권 도전은 안 하겠다”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번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번에 당선되는 서울시장은 1년짜리 시장이다. 보궐선거에서 꿰찬 서울시장을 대선을 위한 징검다리로 삼지 않겠다는 선언이 필요했다. 과거 서울시장 때 그는 시장직을 대권으로 가는 지렛대로 삼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오 전 시장이 치르게 된 다음 서울시장 선거는 정치인생에서 무조건 이겨야 할 선거다. 1961년생인 정치인 오세훈은 더 이상 참신하지도 젊지도 않다. 이번 출마는 양인지검(兩刃之劍)의 결심이다. 경선을 통과하지 못하거나, 단일화 과정에서 밀리거나, 본선에서 여당 후보에게 패한다면 체급을 낮춰 기회를 보려던 선택이 오히려 ‘악수’가 될 수 있다.

이미 그는 2016년 종로, 2020년 광진을 낙선으로 생채기를 입었다. 지역구조차 이기지 못하는 정치인에게 대권 도전에 힘을 실어달라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만약 지난해 4월 치러진 총선에서 광진을에서 생환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 있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험지에서 살아 돌아와 원내로 진입했다면 대선에 직행했을 거다. 낙선하면서 스텝이 제대로 꼬였다”고 말했다. 원외에서 맴돌다 보니 과거 서울시장 첫 등판 때와는 사뭇 다른 환경에 처했다. 2006년 정치자금 개혁의 총아에서 야인으로 머물던 오 전 시장을 선거판에 복귀시킨 건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었다. 이들이 중심이 된 새정치수요모임은 ‘서울시장 오세훈’의 당내 기반이 됐다. 반면 15년이 지난 지금, 당내 입지는 좁아졌고 외연 확장이 필요했다. 그는 원내 진출에 실패한 뒤 당내 의원들과 스킨십이 어려운 점을 종종 아쉬워했다.

중도 확장에 마땅한 카드 못 찾아

선거 패배가 쌓이는 상황에서도 그를 여전히 호출하는 건 정치 구도의 문제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정권심판론이 우세하다. SBS·입소스 여론조사에서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응답이 50.5%로 과반을 넘었다. 여권 후보를 원하는 응답(32.5%)보다 야권후보를 원하는 응답(43.7%)이 훨씬 높았다. 그런데 서울시민들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25.9%)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33.9%)을 더 지지한다. 여당은 반대하지만 야당을 대안으로 삼지 않는 지금의 구도는 제3후보를 불러오기 좋다. 그래서 지금의 구도 덕을 보는 건 안철수 대표다. 전체 후보군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오 전 시장의 재등판은 보수가 숙제를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중도 확장은 대선 패배 후 보수가 이뤄야 할 숙원사업이다. 당의 자강론을 강조하는 김종인 위원장은 중도 확장이 보궐선거나 대선에서 필요조건이라고 본다. 그래서 중도 확장이 가능한 후보를 계속 탐색했지만 결국 발굴하지 못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건 또다시 오 전 시장이다. 서울은 전통적으로 스윙보터(swing voter)인 중도층이 많은 곳이다. 오 전 시장은 이 지점에서 유연함을 가진다. SBS·입소스 조사 중 야권후보 적합도에서 민주당 지지자 중 12.1%가 오 전 시장을 꼽았다. 국민의힘 후보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두 자리 숫자를 기록했다. 확률 높은 카드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지자 승부수를 던지기 수월해졌다.

한 전직 서울시 고위공무원은 “오 전 시장은 정치인치곤 기업가적이고 효율을 중시하는 도시 행정을 추구했다. 개인의 자산이 중요한 시기에 서울의 이익을 보전하는 데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현 시점 서울시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공약은 부동산 분야다. 출마 선언 직후 그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에는 용적률 규제 완화와 비강남권의 상업 지역 확대 등이 포함됐다. 만약 시장에 당선될 경우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다음 서울시장에게 정치적으로 폭발력 있는 소재이며 서울의 이익, 나아가 수도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문제다. 어떻게 풀어가느냐, 또는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서울의 표심을 응집시킬 수 있다. 이런 구도가 만들어준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 풀어가는 건 정치인 오세훈의 역량에 달렸다.

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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