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9일 부산 서면역 인근 부산시장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만난 박성훈 후보. 그는 부산 경제부시장직을 사임하고 지난 1월 14일 부산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photo 류열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지난 1월 19일 부산 서면역 인근 부산시장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만난 박성훈 후보. 그는 부산 경제부시장직을 사임하고 지난 1월 14일 부산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photo 류열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박성훈(50)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는 최근 부산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선거 경험이 전무한 정치 신인이지만, 몇몇 부산 정치권 원로들이 그를 돕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정치인은 아니다. 때문에 여론조사에서도 4% 안팎의 지지율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지지율과는 별개로 부산 정계에서는 그를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낙점’을 받은 인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1970년대생의 경제전문가’라는 김 위원장의 인재상과 일치한다는 이유에서다.

김종인이 ‘낙점’한 인물?

1971년생인 박 후보는 22살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1999년부터 기재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2001년에는 사법시험에도 도전해 합격했다. 당시 상사였던 김동연 전 기획재정부 장관 덕에 ‘주경야독’의 동기부여를 얻었다고 했다. 사법연수원까지 수료했지만 그는 기재부에서 공직 생활을 이어나갔다. 2008년에는 세계은행에서 금융선임전문가로 일하는 경험도 얻었다.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는 청와대 파견근무도 했고, 2019년에는 더불어민주당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도 파견됐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주요 보직마다 등용된 셈이다.

지난 1월 19일 서면역 인근 부산 캠프 사무실에서 주간조선과 만난 박 후보는 자신이 법조인의 길을 걷지 않고 기재부에 남은 이유에 대해 “돈 버는 것보다는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무엇보다 먹고사는 문제를 획기적으로 바꿔보고 싶었다. 나만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선 기재부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부산시장의 꿈을 갖게 된 건 2019년 말 부산 경제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다. 전임이었던 유재수 전 부시장이 비위 의혹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오거돈 전 시장이 기재부에 부산 경제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부산 출신 인사 추천을 요청했다. 박 후보가 부산시로 직을 옮긴 뒤 채 4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는 오 전 시장이 여직원 성추행으로 시장직을 사퇴했다.

“딸 가진 아빠로서 인간적으로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렇고 가족들도 많이 놀랐다. 비서들은 안타까움에 눈물까지 흘렸다. 오 전 시장과 개인적 인연은 없다. 내가 부산 경제부시장직을 맡은 건 정파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부산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오 전 시장이 사퇴한 뒤 권한대행 체제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단편적인 예로 북항 재개발 사업의 경우 행정부시장 라인에 있는 도시재생·도시계획 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권한대행 체제로 가면서 태스크포스팀의 팀장을 맡게 됐고, 그 인력들을 모두 내 밑으로 끌고 와서 일을 추진했다. 만약 시장이 있었으면 못 했을 일이다”라고 했다.

박 후보는 시장 부재 시 이룬 또 하나의 성과로 해외 금융기관 유치를 들었다. “BIFC(부산국제금융센터)에 해외 금융기관을 10년 동안 유치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든지 하고 싶어 했지만 못했다. 시장직이 공석인 상황에서 내가 팀을 만들어 홍콩, 싱가포르, 미국의 금융기관들과 수없이 화상회의를 하면서 그들을 설득했다.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할 때 무슨 장점과 혜택이 있는지, 부산의 비전과 당신들의 비전이 다르지 않다는 걸 계속해서 보여줬다. 만약 시장님이 계셨다면 내가 이 정도로 주도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 후보는 ‘시장’의 꿈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실제 결과도 바뀌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정치 경험이 없지만, 그만큼 ‘구태’와도 거리가 멀다고 그는 자부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젊은 리더’ ‘경제전문가’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강점을 강조하기 위함일 테지만, 그가 가진 문제의식과도 일치했다.

“젊은 경제전문가가 시대정신”

“10년 동안 해내지 못한 일인데, 리더가 바뀌니 몇 개월 만에 만들어낼 수 있었다. 부산은 첫째도 둘째도 경제가 살아나야 하는 도시다. 과거 화려했던 부산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줘야 한다. 말 그대로 ‘부산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해달라는 많은 분의 요청도 있었다. 새로운 리더십의 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다,젊은 경제전문가가 나타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는 요구였다. 이게 시대정신이라는 정치인분들도 많았다.”

그는 기재부에서 일할 당시에는 현 정부가 추진하던 ‘소득주도성장’과 관련해 우려를 숨기기 어려웠다고 한다. 박 후보는 “주 52시간과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조절 등에 관해선 기재부 선후배들도 대부분 비슷한 생각이었다. 기존 경제 관점에서 봤을 땐 위험성이 너무 많은 정책이었다”고 지적했다. “실리를 위한 정책을 펴야 하는데, 이념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부산시민들도 그것들을 느끼고 있다. 지금 정권의 편가르기, 국민이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의사결정 구조 등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고 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김동연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한때 상사로 모신 인연이 있다. 그런 인연 때문에 이번 선거를 준비하면서 김 전 장관에게 후원회장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지만 “내가 처한 상황이 좀 그렇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대신 “열심히 해보라”며 격려해 줬다고 박 후보는 전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부산 전포동에서 자랐다. 중학교 때는 화장실 없는 2층 집에 세들어 사느라 1층 주인집의 화장실을 빌려 써야 했을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었다고 한다. 지금 미국 변호사로 일하는 아내는 남편이 정치에 도전하려 하자 처음엔 반대했지만 “당신이 고향 부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에 응원하겠다”고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박 후보는 부산 서면역 한복판에 있는 빌딩에 선거캠프를 차렸다. 예비후보 선거캠프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큰 규모였는데, 캠프가 공식 출범한 지 채 며칠 되지 않았지만 벌써 자원봉사자들과 캠프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박 후보는 하얀 얼굴에 나긋나긋한 서울말씨를 사용하는데 사투리가 거의 묻어나지 않았다. 흔히 떠오르는 ‘부싼 남자’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인상이었다.

‘정치인을 하기에는 샤이한 성격이지 않나’고 묻자 그는 “나를 아는 이들은 내가 얼마나 ‘깡’이 있는 사람인지 잘 안다. 한번 마음이 서면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결단력은 누구 못지않다. 인상이 그럴지는 몰라도 ‘샤이’와는 거리가 멀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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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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