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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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주인공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뛰는데 수백 명의 사람들이 따라 뛰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 그만 뛰려 했더니 따라 뛰던 사람들이 ‘이제 나는 어떡하냐’고 해요. 조국 전 장관과 부인 정경심 교수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라 봅니다. 자기가 죄를 인정해버리면 같이 죄가 없다고 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새가 되어버리는 거잖아요. 근데 죄를 계속 인정 안 하니 형량은 더 커졌죠.”

지난 1월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서민(54) 단국대 의대 교수를 만났다. 기생충 전문가인 서 교수는 본래 진보진영의 논객으로 활동하다 2018년 조국 사태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렸다.

서 교수는 비교적 일찍부터 ‘문빠’(문재인 대통령 강성 지지자)들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비판해온 사람이다. 그는 이른바 ‘조국 사태’가 터지기 이전인 2017년 12월 자신의 블로그에 ‘문빠가 미쳤다’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면서 친문 지지층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당시는 문재인 정부 집권 초로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이어가던 시점이었다.

문빠들이 여타의 다른 정치인 강성 지지층과 구별되는 지점은 온라인 공간에서 나타나는 지지자들의 공격성이다. 문 정부를 비판하는 정치인이나 논객 등에게 직접 전화하거나 메시지를 보내 원색적인 욕설을 하는 등 공격을 가한다. 그래서 문빠들과 상대하는 것을 부담으로 느끼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서 교수는 “제가 이름이 SM(서민)인데 저는 M(마조히즘) 쪽이라 욕을 해주면 굉장히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며 “일부러 대깨문(문재인 강성 지지자들을 비하하는 표현)이 많이 출몰하는 데 가서 욕하고 싸우고 한다”고 했다.

그에게 ‘불특정 다수와 싸우는 게 부담되거나 힘들지 않냐’고 묻자 그는 “대깨문은 저를 살게 하는 에너지”라며 “축 처져 있다가도 대깨문 전화가 오면 반갑다”고 했다. 메일로 욕설이 날아오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 교수는 ‘깨문아 일 없냐’며 친절하게 답을 한다고 한다.

서 교수는 문빠를 두 종류로 분류했다. 하나는 클리앙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이나 댓글을 다는 ‘비교적 정상인’ 유형이고, 다른 한 종류는 정치인이나 교수에게 문자테러를 하고 온라인 공간에 몰려다니면서 공격하는 ‘행동형 문빠’다. 서 교수는 “행동형은 보면 되게 모자라다. 논리가 없고 주로 하는 게 기껏해야 외모 공격”이라며 “외모 공격은 내가 되게 좋아하는 소재”라고 했다. 예컨대 ‘그걸 얼굴이라고 달고 다니냐’고 공격하면, 서 교수는 “그럼 갖다 버리냐”고 받아치는 식이다. 서 교수는 “이들의 행동에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아주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며 “문빠들의 조직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뉴스공장은 그래서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공장을 폐지하면 다른 데 가서, 예컨대 유튜브 방송을 하더라도 영향력이 이전만은 못할 것이고, 무엇보다 뉴스공장 운영에는 서울시민 돈이 들어간다는 점이 가장 문제라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문빠들의 무서운 점은 온라인 공간을 장악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오프라인은 그냥 그 자리만 피하면 되는데, 문빠는 인터넷에 상주해 있고 언제 어디든 항상 있기 때문에 무섭다는 것이 서 교수의 분석이다. “새벽 네 시에 글을 올려도 문빠들이 옵니다. 사람 몇 명 안 들어오는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도,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올려도 테러를 해요.” 서 교수는 문빠들의 숫자에 대해 “200만명에 달한다는 설도 있다”고 말했다.

“내실 없는 정부, 쇼에만 치중해”

서 교수를 만난 날은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던 날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자화자찬 성격이 강하다는 비판이 있다’고 서 교수에게 질문하자 그는 “내실이 없는 정부라 그렇다. 사기 치는 애들이 원래 외제차 타고 다니고 렌트한 집을 자기 집이라 그러고 다니지 않냐. 허술한 분을 띄워서 위대한 왕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라며 “이 정부에서는 탁현민이 제일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겁니다. 윗사람은 매는 자기가 맞고 공은 아랫사람한테 돌려야 해요. ‘얘네 박수 좀 쳐 줘라’고 말이죠. 근데 문재인 대통령은 불리할 때는 말 안 하고 숨어 있다가 생색 낼 게 있으면 나타나죠.”

서 교수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말과 올 초를 달궜던 백신 부족 논란을 들었다. “‘백신 2월부터 무료 접종한다’ 이 발표는 자기가 해요. ‘근데 어느 백신 맞을지는 선택할 수 없다’, 이건 정은경이 하죠. 그럼 정은경이 욕을 먹을 수밖에 없죠.”

서 교수는 “모더나 백신 못 구한 책임은 ‘백신은 원래 걔(질병관리본부)가 하는 거다’ 이러다가 계약 체결할 땐 갑자기 전화를 한다”며 “저는 그 전화가 계약에 정말 아무런 영향을 못 미쳤다고 보는데 그 전화 땜에 뭔가 된 것처럼 연출하는 쇼, 그게 너무 한심하다”고 비판했다.

“사람이 무능한 건 욕해야 하지만 안쓰러울 때도 있잖아요. 열심히 하는데 능력이 없구나. 근데 문재인 정부는 무능한 데다 뻔뻔스러워요.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는데, 법무부 장관에 비리 혐의자를 임명 강행하는 걸 보면서 아, 저 인간 진짜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문 대통령은 조국 사태를 계기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었어요. ‘무능해도 이 사람은 거짓말은 안 한다, 도덕적이긴 하다’, 이걸 잃어버린 거죠.”

서 교수가 문 정부로부터 결정적으로 등을 돌린 계기는 조국 사태다. 본래 진보진영 논객이었다가 조국 사태를 계기로 등을 돌린 이는 서 교수 외에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 권경애 변호사 등이 있다. 이들은 지난해 의기투합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저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일명 ‘조국 흑서’)를 펴내기도 했다. 서 교수는 “아무튼 저는 조국이 두렵다”며 “왠지 꺼림칙한 꺼진 불 같은 존재”라고 했다. 조 전 장관처럼 자신의 편에는 관대하고 비리행위에 무감각한 사람이 집권을 하면 그야말로 나라가 거덜 날 것이라는 게 서 교수의 걱정이다.

“조국이 제일 무서운 점이 얼굴이 잘생겼다는 거예요. 82쿡(인터넷 커뮤니티)에 가 보면 아직도 조빠(조국 지지자)가 많은데 이유가 사실 얼굴이 대부분이에요. 볼 게 뭐 있습니까. 얼굴이 잘생겨서 여자들 표를 다 먹고 들어가요. 젊은층에서도 문재인 지지율 높은 걸 보세요. 왜 그렇겠습니까. 이 세상은 그렇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항상 느끼죠.”

농담처럼 말했지만 서 교수는 실제로 정치인을 외모에 따라 평가하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문빠 현상이 민주주의의 허점과 연관이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우리 국민들이 생업이 바빠 정치 뉴스를 일일이 챙겨볼 수 없다 보니 선전선동에 취약하고 이미지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높은데, 이 같은 허점에서 문빠와 같은 맹목적인 팬덤현상이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나치도 선거로 집권했고 민주주의 정부가 포퓰리즘에 휘둘릴 수 있다는 약점은 언제나 있다”며 “앞으로도 저는 조국을 주시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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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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