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1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야권단일화 관련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 경선플랫폼을 야권 전체에 개방해줄 것을 제안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1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야권단일화 관련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 경선플랫폼을 야권 전체에 개방해줄 것을 제안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달도 차면 기운다고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문재인 정권도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에 대한 부정평가는 긍정평가를 압도하고 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정권심판을 위해 야권후보를 찍겠다는 흐름은 어느덧 대세가 되었다.

큰 선거 4연패의 수렁에 빠져 있던 국민의힘에도 간만에 활기가 돌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선언자만 12명이나 된다. 모처럼 서광이 비치니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우상호가 나홀로 출마 선언을 한 민주당과 대비된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김종인은 무르익어가던 안철수와의 단일화 및 국민의당과의 합당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국민의힘 입당을 거부한 안철수를 평가절하한 후 “우리 당에 가장 적합한 후보를 만들어내는 것이 내 책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단일화에 실패해 3자 구도로 선거가 치러지더라도 승리할 수 있다고 호기를 부렸다.

정치공학의 알파요 오메가는 다수파 만들기

이렇게 조기 단일화가 무산될 조짐을 보이자 안철수가 승부수를 던졌다. “공당의 대표에게 소속 당을 탈당하고 우리 당에 입당하라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한 이야기다. 다만 국민의힘 경선플랫폼을 야권 전체에 개방해주면 기꺼이 참여하겠다.” 그러나 김종인은 안철수의 파격적(?) 제안을 “뚱딴지 같은 소리”라며 일언지하에 걷어찼다. 잔말 말고 국민의힘에 입당하든지, 아니면 국민의힘 후보가 선출된 후 3월에 단일화를 하자는 것이다.

책사를 넘어 경세가(經世家)라는 평가까지 받는 김종인은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언행을 이어가는 것일까?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렇다. “명색이 제1야당인데 불과 3석의 안철수에게 끌려 다닐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렇게 되면 제1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하고 ‘불임정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일단 치열한 경쟁을 통해 내부 후보를 선출하게 되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고, 이 기간 중 안철수에 대한 주목도는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3월 안철수와의 단일화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

당리당략적 관점에서는 일리 있는 발상이다. 자기주도성이 강한 김종인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당장 의문이 생긴다. 그렇게 안철수를 제압해서 얻는 게 무엇일까. 야권 대표주자의 위상 재확인 및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의 주도권 강화? 만일 국민의힘의 목적함수가 그것이라면 수권정당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현실정치공학의 알파요 오메가는 다수파 만들기다. 여러 부족함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누가 뭐래도 안철수는 한국 중도정치의 아이콘이다. 그런 그를 보수정당이 다수의 위력으로 제압하면 어떻게 될까. 안철수가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 할지라도 단일화에 따른 시너지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안철수의 개인 경쟁력이 높았다 할지라도 103석 거대정당이 3석 미니정당에 이기는 것은 별 감동 없는 시나리오다. 약육강식이라는 비판도 제기될 것이다. 보수 후보가 중도 후보를 꺾은 것이기에 확장성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야권분열 3자 구도가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이 경우도 해볼 만한 게임이라 인식할 것이다. 만약 본선에서 민주당에 패배하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책임은 오롯이 국민의힘 몫이 될 것이다.

이상은 그래도 단일화 경쟁에서 국민의힘이 안철수를 꺾는다는 가정의 시나리오지만,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당 대표가 직접 나서 안철수를 그렇게까지 흠집 냈는데, 3월 단일화에서 안철수에 밀리면 국민의힘은 체면 구기는 것을 넘어 세간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철수를 경계하고 때릴 게 아니라 그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안철수와의 연합은 단순한 외연확장을 넘어 ‘보수+중도’라는 정치지형의 중대한 변화를 의미한다. 어떻게 하면 연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나경원의 지적대로 안철수는 문재인 정권 탄생에 기여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래서 안 된다고 시비 거는 것은 속 좁은 정치다. 김대중은 김영삼 정권 탄생에 기여한 김종필을 끌어들여 정권 획득에 성공했다.

합리적 진보층을 안철수 지렛대로 견인해야

양당 구도에서 집권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념정당의 모습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양한 색깔을 포용하는 ‘포괄정당(catch-all party)’이 되어야 한다. 국민의힘에 이런 전략적 마인드가 있다면, 주저함 없이 안철수와 창조적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 현 정권 들어 반(反)정부로 돌아선 최장집, 한상진, 강준만, 진중권 등 합리적 진보 인사들을 안철수를 지렛대 삼아 견인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에 성공하면 명실상부한 수권 국민정당이 돼 정권교체에 성공할 수 있다.

지금 국민의힘이 제1야당으로서 그려야 할 것은 위와 같은 그랜드 디자인, 즉 집권 청사진이다. 서울시장 보선 전략 또한 이 큰 그림 안에 집어넣어야 한다. 안철수 입당 요구 같은 작은 한 컷에 연연해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태도다.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지는 우를 범하기 십상이다. 자기중심적 단일화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큰 그림 완성에 보탬이 되는 확장형 단일화를 이룰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고, 정권교체의 필승공식인 DJP연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1년 전부터 김대중은 분주히 움직였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무소속을 고집하는 박원순에게 입당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흠집 내기도 하지 않았다. 큰 선거 4연패라는 오욕의 기록을 남긴 국민의힘은 그 어떤 처절한 노력을 했는가. 최근의 당 지지율 상승은 추미애의 광란의 칼춤에 대한 국민적 반감에서 비롯된 반사이득의 성격이 짙다. 반사이득은 기본적으로 불로소득이다. 국민의힘은 ‘추윤대전’이라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윤석열을 응원했을 뿐이다. 이 불로소득에 취해 소수야당 무찌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인가.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吳)나라의 부차(夫差)는 월(越)나라 구천(勾賤)에게 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가시 많은 섶나무 위에 누워 자는 와신(臥薪)을 했고, 회계산(會稽山)에서 포위당한 후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고 조아려 목숨을 부지한 구천은 치욕을 잊지 않으려고 항상 쓸개를 곁에 매달아 두고 맛보는 상담(嘗膽)을 하였다. 국민의힘이 와신과 상담의 반의반만 했더라면, 최소한 ‘3자 필승론’과 같은 헛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