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서 서울시장 후보적합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박영선 예비후보(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가 내놓은 대표 공약 ‘21분 컴팩트도시’가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21분 컴팩트도시’는 인구 1000만명 서울을 50만명 기준으로 21개 컴팩트도시로 재편해 21분 생활권을 형성하자는 구상이다. 하지만 21개 컴팩트도시는 현행 25개의 서울시 자치구 체제와 차이가 나는 터라 일부 자치구청은 ‘21개 컴팩트도시’가 자칫 자치구 통폐합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처음에는 박영선 전 장관이 ‘21’이란 숫자를 잘못 얘기한 것으로 알았다”고 했다.

박영선 예비후보 측은 일단 “평면적이고 전통적인 행정구역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시공간 개념”이라고 선을 긋고 나선 상태다. 하지만 다분히 보궐선거를 치르는 ‘2021년’ ‘21세기’ 등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21’이라는 숫자의 출처를 비롯해 각종 설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인구 1000만명을 50만명으로 나누면 20개가 나오는데 왜 하필 21개냐”는 산술적인 의문부터, 국민의힘 조은희 서울시장 예비후보의 ‘25개 다핵(多核)도시’, 국민의힘 박형준 부산시장 예비후보의 ‘15분 컴팩트도시’ 등을 표절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국민의힘 조은희 예비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은희의 25개 다핵도시와 박형준의 15분 컴팩트도시를 짜깁기 하면 21개 다핵도시, 21분 컴팩트도시라는 박영선 후보의 표절 공약이 나오는 것”이라며 “21이라는 숫자를 다시 설명하는 박영선 후보의 해명을 보니 역시 서울시 행정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초보운전자라는 생각이 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박영선 예비후보가 지난 1월 31일 ‘21분 컴팩트도시’의 첫 체험지로 서울 도봉구 창동 일대를 찾아 “창동차량기지(서울 노원구 소재) 일대에 평(3.3㎡)당 1000만원대 토지임대부 공공분양 아파트를 짓겠다”고 언급한 뒤에는 노원구를 지역구로 둔 같은 당 우원식·김성환 의원이 발언을 부인하는 등 여진도 끊이지 않는다.

‘21분 컴팩트도시’의 기준인 ‘인구 50만명’이란 잣대도 몇몇 자치구를 긴장케 하고 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지난해 말 기준 인구 50만명(등록외국인 포함)을 웃도는 곳은 송파구, 강서구, 강남구, 노원구, 관악구 등 5개구에 불과하다.<표 참조> 나머지 20개구는 모두 인구 50만명 미만으로 금천구와 용산구는 20만명대, 종로구와 중구는 10만명대에 불과하다. 가장 적은 중구(13만명)는 가장 많은 송파구(67만명)의 5분의 1 수준이다. 지방 대도시보다 못한 인구 10만~20만명대의 이들 4개 자치구를 주변 자치구에 흡수통폐합시키면 공교롭게도 ‘21’이란 숫자가 딱 떨어지는 셈이다.

중구·종로구 인구 10만명대

특히 인구 13만명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가장 인구가 적은 중구는 지난 총선 기준 선거구 인구획정 하한선(13만9000명)을 밑도는 서울시 유일 자치구다. 이에 2016년 20대 총선 때부터 인근 성동구와 함께 ‘중구·성동구갑(甲)’ ‘중구·성동구을(乙)’ 식의 기형적 선거구를 꾸리고 있다. 선거구 획정 시 인위적인 시군구 분할을 금지하는 원칙에 위배된다. 이에 중구와 종로구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개편 추진위원회가 전국 36개 지자체를 16개로 통폐합하는 방안을 내놨을 때 서울시 자치구 중 유일하게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중구와 종로구 양 지역의 반발에 밀려 통합은 성사되지 못했다.

2012년부터 10년 가까이 불발된 중구와 종로구 행정통합은 오는 4월 보궐선거로 선출된 서울시장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22년이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종로구에서만 3선 구청장을 지낸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오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3선 연임 제한에 걸려 더 이상 출마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종로구의 현역 지역구 의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차기 지방선거와 같은 해 치러지는 20대 대선에 뜻을 두고 있다. 행정통폐합의 최대 걸림돌은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지역정치인들의 반발이기 마련인데 최대 걸림돌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셈이다.

2012년에도 행정통합 불발

행정통합이 불발된 2012년과 달리 현재 중구와 종로구는 모두 민주당 소속 서양호 중구청장(초선)과 김영종 종로구청장(3선)이 이끌고 있다. 2012년 당시 중구는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최창식 전 구청장, 종로구는 민주당 김영종 구청장이 이끌고 있어 의견을 한데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2012년 당시 최창식 중구청장과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모두 초선 구청장이었다. 전직 서울시 관계자는 “당선과 동시에 차기 구청장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초선 구청장 입장에서 구청장 자리를 걸고 행정통합에 찬성할 사람이 누가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중구와 종로구의 정서적 차이로 통합이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청계천을 경계로 북쪽에 있는 종로구는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주로 거주하던 북촌, 남쪽의 중구는 일본인이 거주하는 남촌을 중심으로 형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이 한강 이남으로까지 팽창한 지금 중구와 종로구는 나머지 자치구들보다 정서적으로 더 가깝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서울시는 박원순 전 시장 재임 때인 2012년부터 한양도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중구와 종로구 일대를 ‘역사도심’으로 지정해 특별관리 중이다. 한양도성 안 건물 높이를 90m로 제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중구와 종로구의 지난해 기준 재정자립도도 각각 53.5%와 47%로 비슷하게 양호한 편이라 통합에 따른 걸림돌이 덜하다는 평가다. 중구과 종로구 통합 시 인구 29만명으로 단일 선거구를 꾸릴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불거지는 문제는 구자춘 전 서울시장 때인 1975년 각각 종로구와 중구에 편입된 일부 동들을 원상회복하는 식으로 미세조정을 꾀할 수도 있다. 종로구 창신동과 숭인동의 경우, 한양도성 밖으로 원래 동대문구에 속했으나 1975년 종로구에 편입됐다. 중구 신당동, 약수동, 청구동 등도 한양도성 밖으로 원래 성동구에 속했으나 1975년 중구에 편입됐다.

특히 동대문구의 경우 동대문(흥인지문) 바로 앞의 창신동, 숭인동이 1975년 종로구에 편입되면서 동대문과 전혀 상관없는 구가 되어버린 역사성 상실 문제도 있다. 전직 서울시 관계자는 “한 건물이 아래위로 중구와 종로구 두 개 구(區)에 속한 서울 광화문빌딩(동화면세점)처럼 중구와 종로구 통합이 이뤄지면 불필요한 행정비용이 줄어드는 등 실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