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얼마 전 작은 실수(?)를 범했다. “김 위원장이 당 대표로 추대됐으면 좋겠다”는 한 정치권 인사의 페이스북 글을 공유한 것이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이후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누차 밝혀왔던 그가 이런 행위를 하자, 은연중에 당 대표로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돌았다. 김종인은 “글을 읽다가 어찌 된 일인지 공유가 됐다”면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해당 글을 삭제했다.

김종인의 연령(82세)을 고려하면, 조작 미숙으로 인한 우발적 사고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김종인의 ‘페북 놀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1월에는 안철수의 소통 능력을 비판하는 글에 공감을 표시하는 ‘좋아요’를 눌러 이목을 집중시켰다. 글쓴이는 국민의당 대변인이자 안철수의 측근이었던 변호사 장진영이었다. 이보다 3일 먼저 올라온 장진영의 비슷한 글에도 김종인은 ‘좋아요’를 꾹 눌렀다.

이른바 ‘페북 정치’는 정치인의 필수품이다. 김종인은 나이와 다르게 젊은 감각을 뽐내왔다. 그런 그가 ‘공유 버튼 오작동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것도 몇 시간 방치하다가 언론 기사가 나오자 황급히 삭제하였다.

필자는 김종인이 4·7 보선에서 안정적 승리를 이루어낸다면, 그에게 대선 지휘봉을 맡겨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전국선거 4연패의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의힘에 보선 승리는 패배의 늪에서 빠져나와 바닥을 치고 반등하는 변곡점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선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이다. 부산시장 선거는 안정적인 야권 우세 추세가 이어지고 있어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승리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종인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덧셈 정치가 아닌 뺄셈 정치를 하고 있다. 오작동으로 누른 당 대표 추대 공유 버튼은 별문제가 안 된다. 안철수를 깐 글에 누른 ‘좋아요’가 문제다. 피아(彼我) 식별을 못 하는 전형적인 뺄셈 정치다. 문재인 세력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대의(大義)보다 안철수를 누르고 야권 단일후보를 차지하겠다는 소리(小利)에 집착한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종인식 뺄셈 정치의 후과(後果)는 각종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신년 여론조사와 최근 여론조사를 비교해 보면, 우세 국면이 접전 양상으로 바뀌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그 원인을 박영선의 늦은 출마 선언, 24개 구청장과 시의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조직력 가동 등에서 찾고 있는데, 한마디로 궁색하기 짝이 없다.

신년 조사나 최근 조사나 다가오는 보선에서 정권심판을 위해 야권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정권안정을 위해 여권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는 응답보다 오차범위 밖으로 높게 나오고 있다. 반면 후보 지지율은 대혼전 양상으로 확 바뀌었다. 야권 승리를 염원하는 기층(基層) 민심은 여전한데, 구체적 표심은 악화된 것이다.

흔히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한다. 불가능하게 보이던 것도 어느 순간 가능하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 정치의 묘미다. 그런데 기층민심을 실제 표심으로 표출시키는 능력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변시키는 고도의 예술이 아닌 기본기에 해당한다. 국민의힘에는 이런 기본기가 부족하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이는 한국의 유권자들은 제 살 깎아 먹기 식 집안싸움을 싫어한다. 특히 야권 지지자들에게 공천과정에서의 잡음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국민의힘은 이런 민심의 흐름을 못 읽고 있다. 안철수 흠집 내기, 나경원과 오세훈의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 경쟁 등은 기층민심이 중간에 유실되지 않고 지표면 위로 분출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잘못 짚은 민심의 흐름이 또 하나 있다. 안철수와의 단일화 게임에서 시간은 국민의힘 편이라는 착각이다. 조직력이 가동되고 경선 흥행이 이루어지면, 단기필마에 가까운 안철수를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김종인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는 자신하였다. 그러나 자당 후보선출을 코앞에 두고 있는 현재까지 그 누구도 안철수를 넘어서는 수치를 기록하지 못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바로 민심 오독(誤讀) 때문이다. 안철수가 대표로 있는 국민의당 지지율은 불과 한 자릿수로 국민의힘과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 박영선과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 우위를 보이는 야권후보는 안철수가 유일하다. 심지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조차 안철수가 오세훈, 나경원을 제치고 후보 적합도 1위를 달리고 있다. 국민의힘에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필자는 보수성향 유권자들이 이른바 ‘전략적 선택’을 한 결과라고 본다.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후보를 꺾을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3월 광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경남 출신의 노무현은 전남 출신인 한화갑과 전북 출신 정동영을 누르고 1위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다. 지지율 1%에서 시작한 노무현은 광주 경선을 계기로 이른바 ‘노풍(盧風)’을 만들어내면서 대선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호남의 전략적 선택은 이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였다.

보수 또는 영남은 이제까지 전략적 선택을 해본 적이 없다. 전략적 선택은 호남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보수 유권자들이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왜일까? 승리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호남의 전략적 선택이 구조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치열하고도 냉정한 행동이었듯이, 보수의 전략적 선택은 잊혀가는 승리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현재의 야권 지지자들에게 누가 야권 대표선수가 되는가는 부차적 문제일 뿐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목적 지향성이 최우선 덕목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이 흐름에 역류하고 있다. 제1야당 지도부의 정치적 감각이 장삼이사의 소박한 감각을 못 따라가고 있다.

어느 정권이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예외 없이 권력에 취한다. 우리는 다를 것이라는 거대한 착각에 빠져 저잣거리 민심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독특한 상상의 세계에서 현실을 재단한다. 권력중독은 뇌 분비물도 변화시켜 인간의 정신세계를 뒤흔들어 놓는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은 야당 권력에 취해 있다.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민심의 도도한 흐름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전국선거 4연패가 신기록이듯이, 야당 권력 도취 또한 초유의 현상이다. 이런 정당은 창조적으로 파괴되어야 한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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