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지방선거 때 사전투표 체험에 참가한 외국인 유권자들. ⓒphoto 뉴시스
2018년 지방선거 때 사전투표 체험에 참가한 외국인 유권자들. ⓒphoto 뉴시스

오는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등록외국인들의 표심이 주목된다.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과 달리 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지방선거에서는 영주자격(F-5)을 취득한 지 3년 이상 경과한 등록외국인도 우리 국민과 동일하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국내에 90일(3개월) 이상 거주하는 등록외국인 114만명 가운데 서울시에 등록된 외국인은 모두 24만여명. 이 중 영주자격을 가진 등록외국인은 4만5283명이다.

영주자격(F-5)을 갖춘 등록외국인의 지방선거 참여는 외국인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주권침해 논란이 많지만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야가 일대일로 맞붙을 경우 팽팽한 접전을 이루는 상황에서 투표권을 가진 등록외국인은 무시할 수 없는 표 집단이다.

특히 서울시 등록외국인 24만명 가운데 흔히 ‘조선족 동포’로 통칭되는 한국계 중국인은 9만여명에 이른다. 또 한국계 중국인을 제외한 중국인(주로 한족)은 5만여명, 주로 화교(華僑)들로 구성된 대만 국적자는 7837여명이다. 결국 서울시 등록외국인의 절반 이상이 중국 국적자이고, 영주자격을 갖춘 외국인 대부분도 중국 국적으로 추정된다. 중국 국적 영주권자들의 표심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른 셈이다.

대선·총선과 달리 영주권자 투표권

영주자격(F-5)을 갖춘 중국 국적 등록외국인의 투표권 행사에 따라 직접 수혜가 예상되는 쪽은 더불어민주당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3불(不)약속’(사드 추가배치, 미사일방어체제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부터 거듭된 친중(親中) 행보는 말할 것도 없고, 지역적으로도 민주당 후보와의 접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일 우상호 의원을 제치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박영선 후보(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옛 지역구인 구로구에 등록된 외국인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가장 많은 약 2만8080명에 달한다. 이 중 영주자격을 갖춘 등록외국인은 7887명으로, 대림동이 속한 인근 영등포구(8038명) 다음으로 많다.

4선 의원 출신인 박영선 후보는 조선족 동포가 집중 거주하는 가리봉동 등이 포함된 구로구을(乙) 지역구에서만 3선(초선은 비례)을 지냈다. 자연히 다른 후보들에 비해 조선족 동포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인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등 서울 서남권 3구에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등록외국인이 집중돼 있다. 이들 대부분은 소위 ‘조선족 동포’로 불리는 한국계 중국인이다. 이 지역에서 영주자격을 갖춘 등록외국인 숫자도 영등포구 8038명을 비롯해 구로구(7887명), 금천구(4492명) 등 서울시 다른 자치구에 비해 압도적이다.

중국 국적을 갖고 있다가 귀화 또는 국적회복 과정을 거쳐 한국 국적을 취득한 중국인들 역시 무시 못할 변수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매년 귀화 또는 국적회복을 거쳐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외국인도 1만명이 넘는다. 이들은 주로 서울 등 수도권에 정착하는데, 엄연히 한국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방선거는 물론 대선과 총선에서도 자유롭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이들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계 중국인(조선족 동포)은 한국말과 글이 자유로운 관계로 국내 정치에 가지는 관심도 다른 집단에 비해 월등히 높은 편이다.

오세훈 ‘조선족’ 발언에 숨은 고민

지난 3월 4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오세훈 후보의 ‘조선족’ 발언은 이 같은 우려를 대변한다. 오세훈 후보는 지난 1월 27일 한 유튜브 채널에서 “광진구에는 결정적으로 조선족 중에 귀화하신 분들이 몇만 명 살고 있다. 양꼬치거리 들어보셨을 거다. 조선족 출신 분들이 거의 90% 이상 친(親)민주당 성향이다”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실제로 오세훈 후보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낙선한 광진구의 경우, 지난해 12월 기준 등록외국인 숫자가 1만3427명으로 이 중 한국계 중국인(조선족 동포)이 4779명에 달한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반면 국민의힘의 주된 지지기반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서울 강남 3구 일대는 등록외국인 자체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서남권 3구(영등포구·구로구·금천구)에 비해 현저히 적다. 지난 3월 1일 금태섭 전 의원을 꺾고 제3지대 후보로 선출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재선을 한 옛 지역구 노원구 역시 한국계 중국인(조선족 동포)의 숫자가 489명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서도 최하위권에 속한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노원구(489명)보다 조선족 동포가 적은 자치구는 도봉구(427명)가 유일하다. 노원구는 영주자격을 갖춘 등록외국인도 546명에 그친다.

그간 국민의힘 등 야권은 등록외국인 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조선족 동포’ 표심을 잡기 위한 노력에 비교적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반면 민주당은 수년 전부터 국내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한국계 중국인의 표심을 잡기 위한 행보를 거듭해 왔다. 2019년 1월에는 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을 떠올리게 하는 ‘더불어동포연합회’라는 조선족 동포 단체가 사단법인으로 출범했는데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영등포에서 열린 창단식에 직접 참석해 축사를 했다. 실제로 해당 단체는 2019년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여권이 주도한 반일(反日) 캠페인에 동참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설날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세균 국무총리, 박병석 국회의장, 이재명 경기지사, 양승조 충남지사, 도종환 의원(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여권 정치인들이 설날과 같은 날 쇠는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의 ‘조선족’ 발언 다음 날, 광진구를 지역구로 하는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광진구 자양동의 ‘양꼬치거리’를 방문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여권에서는 재외동포청 설립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편도 현재 추진 중이다.

한 중국 국적 조선족 동포는 “더불어민주당은 공동민주당(共同民主黨)으로 중국 내에서도 잘 알려진 데 반해 ‘국민역량(國民力量·국민의힘)’은 당명 자체가 아직 낯설다”며 “영주권을 취득한 중국 국적 조선족 동포들은 투표권이 허용되는 지방선거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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