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난 3월 3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 등 민주당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보궐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난 3월 31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 등 민주당 관계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20년 4월 15일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에서 얻은 의석은 180석이었다. 과반을 훌쩍 넘겼고 전체 의석(300석)의 60%를 차지했으니 ‘압도적 승리’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정치평론가나 여야 전략가 모두 ‘처음 경험해 보는 총선’이라고 표현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상황도 처음이었고, 여당의 압도적 승리라는 점도 그랬다. 그로부터 딱 1년이 지났다. 분위기는 거짓말처럼 뒤집어졌다. 서울과 부산, 두 곳의 시장을 새로 뽑는 선거에서 여당은 읍소까지 해가며 표를 호소해야 할 정도로 코너에 몰렸다.

보궐선거 여론조사는 4월 1일부터 금지됐다. 지난 3월 31일까지 발표된 여론조사를 보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격차는 상당히 벌어졌다. 리얼미터가 이날 발표한 조사에서 오 후보는 55.8%를 얻어 32.0%를 얻은 박 후보를 크게 앞섰다. 일주일 전인 3월 24일 같은 조사에서는 오 후보 55.0%, 박 후보 36.5%였다. 부산도 비슷한 구도다. 3월 28~29일 실시한 리얼미터 조사에서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는 51.1%, 김영춘 민주당 후보는 32.1%를 얻었다.(이하 모든 여론조사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비록 도시 두 곳에서 벌어지는 보궐선거라지만 인구 1300여만명,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관련된 선거다. 2020년 4월과 2021년의 4월 사이에 일어난 극적인 반전이다.

정권 흥망성쇠 예측한 여당 보고서

반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만한 보고서가 있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2019년 4월 ‘대한민국 중심 정당의 혁신적 포용노선’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21대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에 역량강화용으로 작성됐다. 이 보고서는 총선 뒤 패인을 분석하는 미래통합당 세미나에서도 관심을 모았던 자료다. 여기에는 정권의 사이클을 설명하는 대목이 있는데 지금 현실에 대입하면 꽤 들어맞는다.

‘대통령의 임기 5년은 전고후저(前高後低)의 사이클이다. 임기 초반에는 높은 지지율, 후반의 낮은 지지율을 겪는 건 예외 없이 반복됐다. 초반의 높은 지지도로 정권과 국민은 허니문 기간을 유지한다. 인사나 정책에서 실수가 생겨도 초반이니까 좀 더 기회를 주자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러나 민생이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생활 체감의 이슈가 악화된다면, 집권 3년 차부터는 지지도가 하락한다. 이런 가운데 정부·여당의 오만과 독선이 국정운영으로 나타나고 권력형 스캔들이 터진다면 지지도가 급락할 수 있다.

특히 생활 체감 이슈는 증폭형 이슈다. 스피커의 볼륨 같은 역할이다. 여권에 유리한 이슈의 소리는 작아지고 불리한 이슈의 소리는 더욱 크게 만든다. 민심은 생활 체감 이슈가 증폭되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집권 3년 차부터 현 정부에 책임을 묻기 시작하고 민생의 기저효과로 지지도가 떨어지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중간평가 격인 전국 선거를 앞두고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예외 없이 패배와 레임덕이 온다.’

이 보고서가 ‘매력적’인 건 국내 정치 권력의 흥망성쇠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서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 차는 본격적으로 부동산값 폭등이 일어난 때다. 이런 생활 체감 이슈에 더해 2019년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부정 스캔들이 터졌다. 변수는 코로나19였다. 유례없는 감염병이 세계를 휩쓸자 방역이 중심 이슈로 자리 잡았고 통제에 어느 정도 성공한 정부는 상실해가던 신뢰를 다시 얻었다. 총선이라는 전국 선거에서 승리한 건 그에 따른 보상이다.

착시로 꽃피는 오만

“착시를 조심해야 한다.”

21대 총선이 끝나고 나온 여러 가지 평가 중 하나였지만 지금 상황에서 보면 민주당이 반드시 되새겼어야 했을 교훈이었다. 21대 총선이 끝나고 얻은 양당의 의석수는 선거의 모든 걸 말해주지 않는다. 의석비로 단순하게 보면 민주당은 180석으로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기에는 의석수 아래 담긴 민심이 매우 복잡다단했다.

서울만 떼내 보자.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에서 얻은 의석수는 49석 중 41석이었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고작 8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민심을 더 정확히 산출하는 건 득표수다. 서울에서 민주당은 304만9272표를 얻었다. 미래통합당은 238만9379표를 얻었다. 52.8%를 득표한 민주당은 의석수의 83.7%를 차지했다. 41.4%를 득표한 통합당의 의석수는 16.3%였다. 의석수에 담기지 못한 서울의 보수 표심이 상당하며, 이 때문에 대다수가 사표가 됐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가 만든 ‘착시 효과’였다.

여당의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타깃은 ‘정권심판 부동층’이다. 양당제인 국내 선거판에서 유권자는 양 진영 지지자와 양 진영 중 양자택일(兩者擇一)하는 부동층으로 갈린다. 이 중 여당이 못해서 야당을 지지하는 정권심판 부동층이 어디로 향하는가는 정권 유지 혹은 교체를 결정하는 잣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사람들이다. 대선에서는 현직 대통령을 지지했더라도 지금은 실망해 지지를 철회하는 유권자가 대표적이다. 이들을 정권심판 쪽으로 흐르게 놔두면 총선에서는 여당이 타격을 입는다. 반면 이들을 우군으로 확보하면 야당에 갈 표를 가져오기 때문에 두 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21대 총선에서 이들은 각 지역구에서 여당 후보와 절묘하게 결합해 여러 곳에서 신승을 이끌어냈다. 적은 표차로 이기는 후보가 많아지면서 여당 의석수와 득표수의 간극은 커졌다.

의석수와 득표수 중 전자에 방점을 찍으면 민심의 저류(底流)를 읽기보다는 강자의 독주에 취하기 쉽다. 180석의 공룡 여당이 등장하면서 경계의 언어로 자주 등장한 게 ‘오만’이다. “이런 착시효과를 근거로 절대 오만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계속됐다. 국무총리직에서 막 내려와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이낙연 의원은 해단식에서 낮은 자세를 강조하며 “조금이라도 오만·미숙·성급함·혼란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미 왜소해질 대로 왜소해진 야당은 협치를 요구했고 여당 독주의 입법을 경계했다. 이런 민주당 지도부와 달리 국회에 입성한 청와대 출신 친문 인사들은 판단을 달리했다.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출신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당선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협치보다도 180석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주신 이유는 속도감 있게 실천적 대안을 만들라는 데 우선 방점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이소영 등 21대 국회 민주당 당선인들이 워크숍을 마친 뒤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5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이소영 등 21대 국회 민주당 당선인들이 워크숍을 마친 뒤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 대통령에 표 던진 오른손을 후회한다”

청와대의 승인과 여당의 독주 속에 가장 속도감 있게 이끌었던 부동산 정책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2021년 2월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0억8192만원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6억708만원이었다. 4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4억원이 넘게 뛰었다. 전셋값도 같은 기간 동안 1억7000만원 정도가 올랐다. 생활 체감 이슈인 주거비가 서민에게 너무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다.

21대 총선이 끝난 뒤부터 정부와 여당은 6·17대책, 7·10대책, 임대차3법 등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지만 매매가와 전세가 모두 제대로 잡지 못했다. 무수히 떨어지는 일방적인 규제 폭탄과 그걸 정당화하는 정부 여당의 논리는 서울에 내 집을 갖겠다는 사람들의 욕망을 죄악시했다. 부동산은 정치가 아닌 세밀한 정책 능력이 요구되는 주제이지만, 오히려 집권 세력의 신념을 구현하는 오기의 장으로 변질됐다. 그러는 새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조원 전 민정수석,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대통령의 측근들은 부동산 문제로 구설에 오르며 내로남불의 주인공이 됐다.

최근 현 정부의 속성을 비판한 책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인물과사상사)를 출간한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어떤 한 분야의 정책 실패 이상의 뼈아픈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본다. 그는 “부동산 정책이 반복적으로 실패했으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성찰 능력을 가진 사람의 태도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성찰적 태도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자신들의 실패한 정책을 고집스럽게 사수할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정책 속에서 독선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LH 투기는 이른바 트리거(trigger)가 됐다.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정부는 참여연대와 민변이 LH 투기 의혹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하기 전까지 그 무엇도 파악하지 못했다. 지난 대선에서 비문계 대선후보를 도왔던 한 관계자는 “지금의 고전이 전부 LH 때문이라고 말하면 변명하기에는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난해 하순부터 민심의 이반이 있다는 징조가 있었다. 정권심판론으로 기울듯한 유권자들에게도 당당히 야당에 표를 주겠다는 명분이 필요했는데 LH 문제는 등을 밀어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정책의 결과에 유감을 표명했다. 실패를 인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년9개월이었다.

총선이 끝나고 난 뒤 줄었던 무당층이 점점 증가했다. 총선 직전에 실시된 2020년 4월 셋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서울시민 중 무당층이 22%였는데 같은 해 9월 셋째 주 조사에서는 37%로 증가했다. 그리고 올해 3월 넷째 주에 발표된 조사에서는 무당층이 22%로 감소했다. 줄어든 무당층이 향한 곳이 여당일 리는 없다. 박영선 후보가 열세에 놓인 건 이들 중 대다수가 정권심판론으로 향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부나방처럼 ‘영끌’ ‘빚투’에 뛰어드는 세대다. 지난 3월 30일 오세훈 후보의 서울 영등포 유세장에서 깜짝 등장해 즉석으로 마이크를 잡은 한 대학생은 깜짝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이 오른손이 너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대학생과 같은 정치적 포지셔닝의 이동이 다수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연대구조 만들어낸 ‘반문연대’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정권심판론의 역사는 오래됐다. 이 정부 탄생 때부터 등장한 ‘반문(反文)’이 정권심판론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반문연대는 지금껏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모두 야권에서는 반문연대를 주장했지만 제대로 된 구성조차 해내지 못했다. “반문연대를 하자고 말했지만, ‘반문’이라는 목표 달성에 필수적인 ‘연대구조’조차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각자 자신의 이해관계를 투영해 연대를 시도하다 그것이 반영되지 않으면 이탈하는 사람이 적잖았기 때문이다”(이종훈 정치평론가)라는 지적은 이전에 주창했던 연대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런데 반문연대가 실체가 있는 정치세력이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권심판론을 가속화할 수 있느냐 여부는 변화한 야권 지지층과 결합할 수 있는 세력이 있느냐에 달렸다. 일단 두 진영이 룰에 따라 합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증명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오세훈·안철수 야권단일화 과정이 반문연대와 같은 것 아니겠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합류한다면 대선에서도 이런 과정을 되풀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대선후보도 생겼다. 지금 반문연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건 문재인 정부와 대립했던 인물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지금의 정권심판론은 이렇게 실체 있는 대안과 대중의 불만이 결합하면서 한결 커졌다.

대선 전초전이라고 불리는 서울시장 선거는 오른쪽으로 한층 기울어진 채 진행 중이다.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선거 후반부로 가면서 민주당에서는 ‘반성’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청와대부터 여당 지도부까지 늦은 반성을 하며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혼선이 함께 드러나며 반성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낙연 의원이 “부동산 때문에 화나신 것 잘 안다. 반성하면서 고칠 것은 고쳐나가겠다”고 말할 때 노영민 전 실장은 라디오에 출연해 하위직 공직자로 재산등록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반발이 있다는 기사를 두고 “신뢰하지 않는다. 정부 정책에 흠집을 내기 위한 의도적인 기사”라고 말하는 식이다. 민심과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모두에게 수월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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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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