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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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인천 서구청장은 ‘환경전문가’로 통한다.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줄곧 환경부에서 근무하다 2015년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7대 사장 등을 역임한 이력 때문이다. 그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재개정 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이런 이 서구청장이 최근 공개서한문을 통해 수도권매립지 유지를 시사한 오세훈 서울시장을 공개 비판하고 나섰다. 이 구청장은 오 시장 취임 한 달 만인 지난 5월 3일 보낸 서한문에서 “쓰레기를 선진화하지 못하면서 서울을 글로벌화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라며 “인천 서구민을 희생양으로 삼지 마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기초자치단체장이 광역자치단체장을 상대로 서한문을 보내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수도권매립지는 서울·인천·경기와 환경부가 폐기물 처리를 위해 1992년 인천 서구 일원에 설립한 시설로 오는 2025년 사용 만료를 앞두고 있다. 환경부에선 현재 대체부지를 물색 중이지만, 이렇다 할 대안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기존 매립지를 연장해 사용하자고 주장해 인천시 등의 반발을 샀다.

지난 5월 11일 구청장실에서 만난 이 구청장은 수도권매립지를 대하는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의 안일함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쓰레기, ‘빅딜’ 수단으로 삼지 말아야”

우선 이 구청장은 이번에 공개서한문 발송을 결심한 것이 오 시장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어서였다고 했다. 오 시장은 지난 서울시장 후보토론회 등에서 “쓰레기매립지가 그동안 잘 운영돼왔는데 인천시가 난색을 표하면서 지금 상황이 매우 급박해졌다. 인천 매립지를 계속 쓸 수 있도록 협의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구청장은 이에 대해 “수도를 책임지는 지자체장이 인천·경기와 수십 년간 이해관계를 함께하면서도 쓰레기 처리 문제에 대해선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은 채 지역주의적 입장에서 판단하는 듯했다. 기존처럼 입장문 발표 형식으론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없을 거라 봤다. 지자체장 간 토론장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오 시장 측에선 아직 별다른 회신이 없지만 적어도 실무진은 귀 기울이지 않았겠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구청장은 2015년 수도권매립지 사용이 한 차례 연장되던 당시에도 이번에 오 시장이 보인 태도가 이해당사자인 서울·경기·인천·환경부 측에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당초 매립지는 2016년 사용 만료를 앞뒀으나 모두 대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결국 2025년까지 사용을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서울·인천·경기·환경부는 매립지 사용 만료를 앞두고 본질적 대안을 찾기보다 쓰레기 처리를 통한 부차적 수입에 더 집중했다. 쓰레기를 받아내거나 보내는 대가로 인프라 지원, 가산금 인상, 인센티브 지급 등 이른바 ‘빅딜’에 집중한 것이다. 매립지 사용 연장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번에도 지난 전철을 밟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다. 그대로 두고만 볼 순 없었다.”

이 구청장이 수도권매립지의 대안으로 거론하는 건 ‘발생지 처리원칙’에 입각한 지자체별 소규모 매립지 조성이다. 각 지자체가 발생 쓰레기를 자체적으로 처리하자는 이야기로 오 시장에게 보내는 서한문에도 관련 내용을 담았다. 주민수용성과 관리 비용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지금의 수도권매립지 같은 대규모 매립지 조성은 더이상 불가하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인천 서구만 해도 매립지 조성 후 지난 수십 년 동안 각종 폐기물처리업체 등 유해 환경시설이 우후죽순 늘면서 지역민들 피해가 극심해졌다. 그 어떤 지자체도 이를 반기지 않을 것이다.”

환경부가 지난 1월 실시한 수도권 대체매립지 후보지 공모에 단 한 곳의 지자체도 참여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환경부는 5월 10일 수도권매립지 재공모에 나섰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이 구청장은 “국내 수도권매립지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땅은 작은데 매립지 크기는 일등인 셈이다. 바꿔 말하면 쓰레기 선진화가 안 됐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 시장이 말한 것처럼 서울 등 수도권을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등을 능가하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선 후진적인 쓰레기 체계부터 개선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구청장은 쓰레기 감량 및 재활용 정책 강화를 강조한다. 매립률을 줄이고 앞서 언급한 지자체별 소규모 매립지를 조성하기 위한 전제 조치라는 점에서다. “지금의 정부와 지자체는 쓰레기매립에만 관여할 뿐 감량·재활용은 민간시장에 맡기고 있다. 이 때문에 재활용업체들은 돈 되는 것만 처리한다. 성상(종류)별 분리가 어려운 쓰레기는 인건비 부담 등으로 그대로 매립지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쓰레기 매립 규모를 줄이기 어렵다. 정부가 쓰레기 선별장치 건립 등으로 책임지고 지원해야 한다.”

재활용 기술은 있으나 정부의 재정·인프라 미지원으로 실현하지 못하는 것들도 상당수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폐비닐·폐플라스틱 열분해를 통한 경유 및 수소 생산, 소각 잔재물을 활용한 벽돌 제작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5월 6일 박남춘 인천시장은 “서울도 매립지를 조성할 부지가 있다”라고 밝혔는데, 이 또한 쓰레기 감량·재활용을 전제로 한 분석이었다.

유럽은 국내와 달리 쓰레기매립률 1%

유럽은 일찍이 쓰레기 감량·재활용으로 매립률을 1%대로 낮췄다. 인천 서구청이 유럽연합 통계청인 유로스타트 자료를 취합한 내용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벨기에와 덴마크, 독일, 스웨덴 등은 매립률 1%대를 기록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경우 이런 낮은 매립률을 바탕으로 도심 속 폐기물 처리시설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같은 기간 9.4%를 기록한 국내와 대비되는 점이다. 이 구청장은 “매립지만 공모할 것이 아니라 감량·재활용 정책에 대한 공모 사업도 필요하다”며 “환경부가 2026년부터 쓰레기 직매립을 금지한 만큼 이와 관련한 논의가 더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수도권 쓰레기 문제를 둘러싼 지자체 간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될 수 있느냐는 내년 지방선거에 달렸다고 본다. “매립지를 기피시설로만 보고 표심을 생각해 ‘우리 지역에선 안 된다’고 반대만 외치면 궁극적 대안이나 논의의 장이 형성될 수 없다. 무엇보다 광역자치단체장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중요 의제로 인지할 수 있도록 강조해야 한다.”

현재 서구청은 자치구 최초로 광역소각시설인 ‘서구 자원순환센터’ 건립에 나서는 등 발생지 처리원칙 실현의 본보기가 되고자 노력 중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주민수용성 확보 방안을 실험하고 있다. 쓰레기 처리와 주민수용성 확보는 떼놓을 수 없다. 주민참여단 운영 실효성부터 들여다보고 있다.”

이 구청장은 매립지가 계획대로 종료되면 서구 환경을 과거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매립지 사용이 만료되는 2025년이면 청라국제도시, 검단신도시가 모습을 갖추면서 서구 주민이 100만명으로 늘어난다. 인천 자치구 중 가장 많은 인구다. 주민들이 예전처럼 개선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서구의 오랜 숙제다. 수천 평에 이르는 매립지에 대한 사후관리, 구체적으로는 스마트팜, 시민공원, 태양광 발전시설 유치 등으로 친환경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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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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