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이 지난 6월 1일 서울 중구 MBN 스튜디오에서 열린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 참석해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주호영·조경태·홍문표·나경원 후보. ⓒphoto 뉴시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이 지난 6월 1일 서울 중구 MBN 스튜디오에서 열린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 참석해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준석·주호영·조경태·홍문표·나경원 후보. ⓒphoto 뉴시스

친문 전재수가 쏘아 올린 민주당의 대선 경선 연기론은 잠잠해지는 모양새다. 완전히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지만, 예정대로 9월 8일까지 대선후보를 선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결정타는 조국의 책 출간이었다. 책 제목대로 ‘조국의 시간’이 다시 오면서 민주당은 두 동강 났다. 이런 판국에 경선 연기 찬반 논쟁이 불붙으면 이리 찢기고 저리 찢기게 된다. 송영길이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할 리가 있겠는가.

야당보다 먼저 후보를 선출하면 선거전략상 불리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모두 상대 당 후보보다 먼저 선출되어 본선에서 승리하였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흥행이 저조할 것이라는 우려 역시 근거가 빈약하다. ‘미스트롯’ 등 랜선 콘서트의 흥행 대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준석 돌풍’에 대해서는 또 뭐라고 둘러댈 것인가.

시장(market)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듯이, 정치에서도 불확실성은 엄청난 위협 요인으로 작용한다. 먼저 선출된 후보가 본선에서 대부분 승리한 것이 단순한 우연일까. 어떤 경선이든 후유증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사람과 사물’의 관계에서는 사람의 의지로 목표달성 시점을 앞당길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경선 패자 쪽의 묵은 감정을 푸는 것은 고난도 심리기법뿐만 아니라 은근과 끈기가 요구되는 매우 고된 작업이다. 이럴 땐 시간이 약이 된다. 치유의 과정은 더디게 진행된다.

불확실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여권보다 야권이 훨씬 위험하다. 여권에는 추미애의 열린민주당 대선후보 출마 정도를 빼고는 이렇다 할 불안정 요인이 없다. 이해찬, 한명숙의 이재명 진영 가세는 친문의 이재명 견제가 의외로 싱겁게 끝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재명 대세론이 더욱 탄력을 받아 큰 격차로 승리하게 되면, 이재명은 비교적 수월하게 경선 후유증을 치유하며 원팀의 온전한 복원에 진력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야권이다. 윤석열의 국민의힘 합류, 안철수 국민의당과의 합당, 홍준표 복당 등 불확실 요인이 다수다. 다행히 유력주자인 윤석열이 국민의힘 입당을 강력히 시사함으로써 안개는 상당 부분 걷혔지만,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처럼 국민의힘 후보가 뽑히고 당 밖의 유력주자와 단일화 협상을 하는 상황 전개다. 4·7재보선에서 성공한 모델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하는 것은 난센스다. 오세훈-안철수 단일화는 매우 예외적인 성공 사례였다. 그 예외를 반복한다는 것은 무모할 뿐이다. 역대 대선에서 성공한 단일화는 DJP연합이 유일하다.

우여곡절 끝에 윤석열, 안철수, 홍준표 등이 국민의힘에 합류하여 유승민, 원희룡 등과 함께 단일 무대에서 경쟁을 시작한다 해서 우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9월 민주당 후보 선출 후 11월 국민의힘 후보 선출까지 두 달간의 예상도를 그려보자. 민주당은 경선 후유증을 치유하며 정기국회에서 문재인과 차별화되는 이재명표 법안과 예산을 선보이며 민심 잡기에 열중할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선 레이스가 가열되면서 상호 비방과 인신공격 등 국민의 눈을 찌푸리게 만드는 네거티브 캠페인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야권에 이 기간은 내년 3월 대통령선거에 이르는 과정에서 최대 시련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련기를 지혜롭게 헤쳐나갈 묘안은 없는 것일까? ‘천만 국민경선’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의 현행 대선후보 선출 룰은 당심 50%, 민심 50%다. 당심 50%는 30만명 정도의 책임당원과 5만명 이상의 일반당원으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민심 50%는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로 구성될 것이다. 참고로 민주당의 선출방식 역시 당심 50%, 민심 50%다. 그런데 민주당 권리당원의 수는 70만명을 넘는다. 민주당보다 늦게 하면서 스케일도 작다면, 너무 밍밍하지 않겠는가.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당적을 불문하고 원하는 유권자들에게 모두 투표권을 부여하는 ‘완전국민경선제’를 과감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프랑스 사회당은 위기에 빠졌다. 니콜라 사르코지의 재선을 막을 유력 후보였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2011년 5월 미국에서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그 후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프랑수아 올랑드다. 프랑스 정치엘리트의 산실로 불리는 국립행정학교와 파리정치대학을 졸업한 뒤 판사와 변호사, 대학교수를 지낸 화려한 스펙의 정치인으로 ‘이웃집 아저씨’라고 불릴 만큼 서민적인 풍모였지만 카리스마가 약해 사르코지를 꺾기에는 역부족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이때 전격 도입된 것이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다. 서유럽 좌파정당은 전통적으로 당원 투표로 공직 후보자를 선출해 왔는데, 그 관행을 깨고 당원이 아닌 일반인도 1유로만 내면 투표할 수 있도록 문호를 완전히 개방한 것이다. ‘원 유로(One Euro) 원 보트(One Vote)’ 캠페인은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 대박을 일궈냈다. 1차 투표에 246만명, 2차 투표에 280만명이 참여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2011년 10월 결선투표에서 57%의 지지를 받은 올랑드는 43%에 그친 마르틴 오브리를 꺾고 2012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사회당 후보에 선출되었다. 그리고 2012년 5월 6일 51.67%의 득표율로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사르코지를 꺾고 당선되었다. 올랑드의 승리로 사회당은 프랑수아 미테랑(1981~1995년 재임) 이후 17년 만에 대권을 거머쥐었고, 사르코지는 1981년 지스카르 데스탱 이후 31년 만에 연임하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국민의힘은 이 사례를 벤치마킹해 ‘천만 국민경선’이라는 담대한 계획을 수립, 실행해야 한다. 70만〜80만명의 참여로 뽑힌 민주당 후보와 500만〜1000만명의 참여로 뽑힌 국민의힘 후보는 민주적 정당성 면에서도 그렇고 무게감이 확 다를 수밖에 없다.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유권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국민경선 축제를 통해 본선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문재인 후보는 1342만3800표로, 박근혜 후보는 1577만3128표로, 이명박 후보는 1149만2389표로 당선되었다. 국민경선 축제 참여 인원이 500만을 넘어선다면, 이를 밑천으로 1500만표를 만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한 작업이 될 것이다.

공직선거법 제57조의 4는 ‘보조금의 배분 대상이 되는 정당은 당내 경선사무 중 경선운동, 투표 및 개표에 관한 사무의 관리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비용도 국가가 부담하도록 돼 있다. 이 좋은 제도를 활용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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